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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 예견된 건 `참사 정치`뿐… 기본 잊히게 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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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참사"라며 예견 주체 없는…이태원 참사 정쟁화
사태 직후 "대통령 때문" "처벌 안하냐"…세월호 데자뷰
'전지자 행세' 야권, 진상규명 보탬 없이 '용어전쟁' 골몰
정부도 졸렬, 책임규명 회피 말아야…정상화 과제 수두룩
[한기호의 정치박박] 예견된 건 `참사 정치`뿐… 기본 잊히게 해선 안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11월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진보단체의 반발 움직임을 담은 경찰 정책 참고자료를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



"예견된 참사(慘死)", "예견된 인재(人災)", "예고된 비극(悲劇)"…지난 10월29일 저녁 이태원 핼러윈 인파에서 사망자만 156명을 낸 대규모 압사 사고에 줄곧 따라붙는 말이다. 사고 수습으로 가장 분주하던 30일 새벽부터 "예견된 참사"라는 보도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전까지 압사 사고를 누가 '예견'했는지는 모르겠다. '3년 만의 노 마스크', '영업제한 없어 기대감 상승', 범죄 단속을 위한 '경찰 200여명 배치' 등 핼러윈 전야 분위기를 앞다퉈 전하던 주요 매체들은 있었다.

실제로 예견된 건 참사가 아닌 '참사 정치' 아닌가 싶다. 사망자 집계도 다 끝나지 않았던 30일 아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지낸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페이스북에 참사 원인을 '청와대(대통령실) 이전', '대통령 출퇴근'으로 단언했다. 난데없는 전지자(全知者) 출현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윤석열 대통령 다 물러나라는 주장부터 했다. 이태원 참사에 머릿속이 하얘졌던 이들도 이 발언에만큼은 '역시나…' 했을 것이다.

같은날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인파를 통제하는데 실패한 정부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이튿날(31일)엔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것에 "책임자 처벌도, 진상규명도 없는 애도가 가능하냐"고 따졌다. 양립 가능한 것을 불가능한 것처럼 설정한 논리에서 '위화감'이 들었다. 사태 진상을 파악하기도 전에 정부를 '가해자' 위치에 놓고, 어느 당 정권인지를 가리며 '전능한 국가'를 소환하는 논리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 그것과 닮았다.

남영희 부원장은 4일 현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경호차량 행렬을 '윤 대통령 출퇴근 행렬'로 둔갑시킨 주장으로 또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애초 진실을 중시했다기보단 '답은 정해져 있다'는 태도가 묻어난다. 논란 첫날 민주당 지도부가 "부적절하다"는 이야기는 꺼냈지만, 어떤 조치를 예고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돌출행동같지도 않다.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를 위한 노력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던 이재명 대표의 입장도 그 이튿날(지난달 31일)부터 사실상 뒤집혔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은 "주최측이 없는 행사였다고 말하지 말라"고 서울시와 정부를 겨냥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2016년말 탄핵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광장 일대 지하철 무정차 조치 사례를 들며 현 정부에 "이해가 안 된다"고 질타했다. 이 대표도 참사 현장에서 "왜 이번엔 진입 통제나 차도·인도 분리도 없고, 일방통행 관리도 안 했는지"라고 탓했다. 공영방송에서 친민주당 활동 중인 김어준씨는 과거 이태원 인파가 일방통행 관리를 받아왔다는 가짜뉴스를 꺼내며 "정치 문제가 맞다"고 가세했다.

"안전 때문에 눈물 짓는 국민이 단 한명도 없게 만들겠다"더니 수사권·치안력만 조각내놓은 국정 반성은 없고, 일부는 법무부의 마약수사 강화를 문제 삼기까지 하니 정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정작 참사 직전 서울경찰의 112 신고 부실대응, 대통령-행정안전부 장관-경찰청장 순으로 사태를 알았다는 '역순 보고', 인파 3만명 과소추산 등 백태가 드러나는 데 정치권 역할은 있었나. '주최측 없는 행사'라도 모든 인파를 통제대상에 넣자는 천편일률적 재난안전법 개정안이 쏟아져나온 게 역할부재를 자인한 게 아닌가.

기여할 부분이 없으면 조용히라도 있어야 하지만 소음만 키운다. 여야정 참여 사고조사특위 제안은 공전하고 국정조사·특검 문제로 비화한다. 망자 책임이 아니란 논리를 누군가가 죽였다는 주장으로 교묘히 치환하는 움직임도 있다. 사고를 일일이 '참사'로 부르지 않는다니, 사망자를 '희생자'로 바꿔 부르라는 우격다짐에 역량을 쏟는다. 희생(犧牲)의 첫번째 사전적 의미엔 '바침, 빼앗김'의 뉘앙스가 들어 있다. 세월호 사건처럼 '학살자 정부'를 만드려는 용어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전례를 모를 리 없는 정부 측에선 '독기'와 '겁'이 동시에 느껴진다. 참사 이튿날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나,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는 말부터 꺼낸 박희영 용산구청장이나. 침묵만도 못한 졸렬함이 어차피 할 사과의 진의마저 의심케 했다. 보고·행정 실패까지 드러난 이 장관의 면피 시도로 인한 내상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도 닷새째 조문으로 침묵을 대신하는 모습이지만, 매듭을 손수 풀어야 할 위치에 있다.

참사의 안타까움이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지만, 모든 것을 덮어선 안 된다고 본다. 19년 만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연계된 대장동-화천대유 사건 수사처럼, 사법절차를 막아서고 반(反)정부 투쟁 소비재로 전락시킬 일도 아니다. 정부·정치권은 사상 첫 북방한계선(NLL) 이남 미사일도발을 자행한 북한에 '말'뿐이 아닌, 한·미·일 결속 강화와 비대칭전력 해소 등 전과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할 상황이다. 유엔 인권이사국 낙선으로 표면화한 인권문제와 외교 신뢰도 정상화 역시 남은 과제다.

정치적인 청소년 동원집회를 부추기거나 얹혀갈 것이 아니라, 사실상 반년째인 교육수장과 정책 공백을 메워야 한다. 법정 시한이 한달도 남지 않은 639조원 규모의 정부예산안도 처리해야 한다. 국가채무 1000조원 시대에 고금리·고환율 위기, 레고랜드 채무 부도로 불거진 돈맥경화와 중앙·지방 '빚잔치' 부실 구조조정도 급하다. 사회 곳곳에서 무너져 있을지 모를 '기본'을 되찾는 게 정치의 진짜 역할이다. 정부도 스스로 걸림돌이 될 요소가 있다면 치우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한기호의 정치박박] 예견된 건 `참사 정치`뿐… 기본 잊히게 해선 안돼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오른쪽)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지난 11월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조문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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