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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호 칼럼] 가슴 먹먹한 `이태원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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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호 전략기획국장
[우인호 칼럼] 가슴 먹먹한 `이태원 블루`
"원자들은 대부분 죽은 상태로 있다가 어느 날 우연한 이유로 모여서 생명이 되는 거예요. 생명이라는 정말 이상한 상태로 잠깐 머물다가 죽음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돼요. 반대로 죽음을 맞이한 가까운 누군가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난 게 아니라 내 주위에 원자 형태로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위안을 주더라고요"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지난 주말에 이론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의 글과 강의 영상을 관심있게 보다가 무릎을 친 대목이다. 철학자처럼 느껴지는 물리학자의 죽음에 대한 깨달음에 탄복을 하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모든 말, 글, 생각들이 갑자기 허망해졌다. 서울 한 복판에서 소중한 생명들이 또 어이없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울하다. 분노의 대상이 없어 더 답답해진다. 뉴스보다 더 빠른 SNS 소식에 중앙정부, 지방정부라는 분노의 대상이 생성됐다. "어떻게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무고한 젊은이들이..."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사로 인한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이 기록되는 문자와 영상이 마음을 헤집는다. 뉴스와 SNS로 전해지는 현장의 영상은 그날의 상처를 불특정 다수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지 이십 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식의 무덤조차 찾지 못하는 노모를 가까이 모시기에, 그 어떤 말도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알면서도 명복을 빌고 위로의 말씀을 건네고 싶다.

그래도 허망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젠 좀 극복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시점에 다시 터진 참극으로 우리 사회가 또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어야 할 듯하다. 세월호 유족들은 아직까지도 심리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원인 규명은 반드시 해야 한다. 토끼 머리띠든 뭐든간에. 국가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게 형사든, 민사든간에.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보다 앞서는 것은 지독한 슬픔에 통곡하고 있을 유가족의 마음을 보듬는 일일 터이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공간을 함께 했던 부상자, 목격자, 구조인력은 2차 대상일 것이고, 뉴스와 SNS를 통해 참사의 현장을 두 눈으로 본 우리 모두의 마음은 3차 대상이다. 함께 슬퍼하고 서로 위로하는 애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다.

적어도 애도의 기간만큼은 정치인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무슨 옳은 말을 해도 허무하다. 헌법을 들먹여도 허망한 죽음 앞에 초라해진다. 안전 당국의 변명은 더더욱 듣고 싶지 않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태원 참사가 경찰과 소방 인력 배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경악할 일이다. 냉정하게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인식하는 건 개인적인 차원에선 가능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당국자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심각한 문제다.

더욱이 '선동적인 정치 공세'를 경계하는 듯한 말을 꺼낸 것은 안전 당국자로서 적절치 못하다. 선동적인 정치 공세가 없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 '무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야 할 안전당국의 책임자인 이 장관이 그런 말을 내비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를 헤집어놓는 댓글 또한 보고 싶지 않다.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향해 도대체 왜 상처 덧내는 글을 갈겨야 하나.

1, 2차 심리적 피해자들에겐 심리적 응급 처치가 먼저다.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가 이번 참사로 큰 충격을 받은 유가족과 부상자, 구호 인력 등의 정신건강을 돌보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보건복지부도 국가트라우마센터에 심리지원단을 설치해 조기 심리상담에 나섰다고 한다.

3차 심리적 피해자들은 당분간 SNS를 안 보기를 권한다. 자극적인 영상에 다시 상처 받고, 왜곡된 정보로 분노와 울분에 몸부림 칠 필요가 없다. 사회적 상처를 함께 보듬는 연대 의식만이 필요하다. 결국 슬픔과 비탄은 개인 몫으로 남겠지만, 슬품과 비탄을 함께 나누면서 잦아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또 다시 사는 것이다.전략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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