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랄 만한 품위와 우아함, 파리가 모델"
건축물로 황제의 권위 세우려 했던 고종
완공 후 가림막 거치면 화려함 드러날 것
일제강점기 훼철 후 100년간 폐허 속에
석조전은 엄숙절제, 돈덕전은 여유 파격
건축물로 황제의 권위 세우려 했던 고종
완공 후 가림막 거치면 화려함 드러날 것
일제강점기 훼철 후 100년간 폐허 속에
석조전은 엄숙절제, 돈덕전은 여유 파격
![[이규화의 지리각각] "화려함의 극치" 정동 돈덕전으로 놀러 오세요](http://contents.dt.co.kr/images/202210/2022102102109969660001[1].jpg "[이규화의 지리각각] \"화려함의 극치\" 정동 돈덕전으로 놀러 오세요")
"이 자랑스러운 건물은 완전히 유럽식으로 지어졌다. 실내 장식은 놀랄 만한 품위와 우아함을 뽐내는데, 파리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접견실은 황제의 색인 황금색으로 장식되었다. 황금색 비단 커튼과 황금색 벽지, 이에 어울리는 가구와 예술품들, 이 모든 가구는 황제의 문장인 오얏꽃으로 장식되었다."
"웅장하고 위엄 있는 러시아 공사관저도 깊은 인상을 주지만 정동의 새 궁궐 바로 옆 해양 관세청이 들어설 부지에 러시아 관저를 모델로 현재 많은 비용을 들여 궁전을 새로 짓고 있다. 더 화려하고 위엄 있게 짓는다고 한다.(…)유럽인들의 궁궐 방문이 아시아 여행에서 가장 흥미로운 경험이 된다면 바로 왕의 덕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의 글은 1905년에서 1906년 사이 한국을 방문했던 엠마 크뢰벨이 쓴 회고록의 일부다. 뒤 발췌문은 1901년 6월 경 서울을 다녀간 지그프리트 겐테의 기록이다. 두 글은 모두 돈덕전(惇德殿, '덕(德) 있는 이를 도탑게(惇)하고 어진 이를 믿는 집'이라는 의미)에 대해 적고 있다. 앞의 글은 완공된 후 내외부를 살펴본 것이고 뒤의 글은 돈덕전의 공사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그 돈덕전이 100년의 폐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낼 참이다. 돈덕전은 덕수궁 내 석조전 뒤편, 영국대사관과 중명전 사이에 있었다. 정동교회 앞 로터리에서 미국대사관저 길로 들어서 옛 구세군회관쪽으로 넘어가다보면 오르막 끄뜨머리에 위치했다. 문화재청이 지난 5년간의 복원공사를 마무리하고 이달 말 완공할 예정이다. 돈덕전이 완공돼 시민에 개방되면 정동 산책은 풍미가 더해질 것이다. 문화재청이 발간한 '덕수궁 돈덕전 복원 조사연구'를 토대로 돈덕전 복원의 의미를 짚어본다.
◇고종은 근대건축물 수집가였다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인 고종은 흔히 국제정세에 어두웠고 아관파천에서 보듯 겁 많은 군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평가를 제쳐두고 고종이 한 일을 살펴보면, 그는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복궁에 전기를 가설한 시기는 놀랍게도 일본보다도 앞섰다.
특히 고종은 '건축물 수집가'였다. 고종은 많은 서양식 건축물을 건립해 황제와 국가의 위엄을 높이려 했다. '대한제국도 당신들 만큼 갖출 건 갖췄다'는 말을 건축물을 통해 하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황제가 기거했던 덕수궁은 황궁으로서 석조전을 비롯해 중명전, 정관헌 등 적잖은 서양식 건축물을 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나중에 일제에 의해 훼철된 돈덕전이었다. 덕수궁 서양식 건축물 가운데 석조전과 돈덕전은 백미를 다투었다. 석조전은 엄숙하고 공식적인 공간으로서 황거의 역할을 맡았다면, 돈덕전은 여유롭고 사교적인 공간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
◇돈덕전의 건축양식과 규모, 훼철 과정
돈덕전은 대한제국의 외교 공간으로 기획된 건물이었다. 고종은 즉위 40주년 칭경예식(稱慶禮式)에 맞추어 국외 주요 인사들을 돈덕전에 초빙할 계획이었다. 각국 공·영사를 초청한 자리에서 주권 수호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 고종의 의도였다. 그러나 칭경예식은 성사되지 못했다.
돈덕전 부지는 1901년 3월 해관자리에 마련되었으며, 6월경 공사를 시작했다. 돈덕전의 규모는 길이 127척 가량, 폭 95척 가량으로서 건평 약 350평, 연 700평의 결코 작지 않은 건물이었다. 구조는 석재 섞인 붉은색 벽돌 조(造) 2층, 함석지붕으로 앞뒤 3개 곳에 각기 다른 크기의 튜렛(turret, 탑처럼 생긴 망루)을 세웠다. 이는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을 절충한 형태였다. 남측 부분은 상하층 모두 아케이드(arcade)로 뚫린 발코니로 장식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전면의 양식은 창의 배치, 모양 및 지붕 구성 등을 볼 때 손탁호텔(1902년 건립)과 매우 흡사했다.
돈덕전이 완공된 시기는 1903년으로 추정된다. 돈덕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04년 4월 14일 경운궁 대화재 이후다. 화재 후 고종이 수옥헌으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에 수옥헌과 가까운 돈덕전은 고종을 만나기 위한 대기장소 또는 고종이 주로 외국 사신과 접견하는 장소로 활용됐다.
돈덕전은 당시 가장 화려한 양관이었기 때문에 1905년에 후시미노미야와 엘리스 루스벨트 등 국빈급 외국인 방문 때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 이후에 돈덕전은 일본 경관(警官)이 상주하며 궁궐 내외 출입을 통제하는 거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황제가 관리를 폐현하거나 외국인과 함께 하는 연회장 및 예식 공간으로 활용됐다.
1907년 순종은 즉위 직후 돈덕전으로 이어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즉조당으로 이어했다. 대신 돈덕전은 영친왕의 숙소로 잠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침실은 순종이 이어를 준비하면서 갖추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어침실 사진은 영친왕의 숙소를 촬영한 것으로 추측된다.
돈덕전은 순종의 황제 즉위 이후에도 일본 관리의 접견 및 회식, 각종 집회 장소로 많이 활용되었다. 그리고 고종의 생일인 만수성절과 순종의 생일인 건원절에 서구식 연회장으로 쓰였으며, 영화 상영회가 2회에 걸쳐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의 서거 이후 관리의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급속히 퇴락하기 시작했다. 돈덕전의 정확한 훼철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덕수궁이 공원화되기 이전인 1921년에서 1926년 사이로 추정된다. 돈덕전이 있던 자리는 아동유원지가 들어섰다.<덕수궁 돈덕전 복원 조사연구에서 발췌>
◇언제쯤 돈덕전을 방문할 수 있나
문화재청에 따르면 아직 건물의 용도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개방될 것임은 분명하다. 전시관이나 기념관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돈덕전이 고종을 알현하려던 외국의 왕족과 고관대작들의 대기 장소로 쓰인 점을 보면, 당시에도 황제와 황족만 사용하던 공간이 아니고 비교적 개방된 공간이었을 것이다.
문화재청은 준비 과정을 거쳐 내년 하반기에 개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공사가 완공되면 주변의 가림막이 제거되면서 그 화려하고 위용 넘치는 자태를 뽐낼 것으로 보인다. 덕수궁 내를 포함해 정동 일대의 많은 근대건축물 중에서도 돈덕전은 건축양식과 장식적 외양으로 인해 군계일학이 될 것이다. 석조전이 엄숙하다면 돈덕전은 화려하다. 석조전이 정형화돼 있다면 돈덕전은 파격이다. 돈덕전의 완공으로 우리 근대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풍부해지고 있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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