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회가 불법을 조장하는 법을 만들겠다니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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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회가 불법을 조장하는 법을 만들겠다니
국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이를 몰라서가 아니라 법을 만드는 국회가 불법을 부추기는 법을 만들겠다고 해서 던지는 질문이다.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정의당과 손잡고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한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쌍용차 불법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이 손해배상 판결을 받자 이들을 도우려는 성금이 노란봉투에 담겨 전달된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에는 '폭력·파괴 행위가 노조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면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과 '소송으로 노조 존립이 불가능하면 소송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폭력과 파괴행위가 계획된 것이라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법이 세상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노조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손해배상 소송인데 기업에게 이런 소송을 못하게 하면 강성노조에 불법을 저지르라고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조 활동이 폭넓게 보장되는 어느 나라에서도 불법이 용인되는 경우는 없다.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고의든 과실이든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잘못을 사과하고 또한 보상을 해야 한다. 굳이 법을 따질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노동자의 권익은 보호돼야한다는 걸 누가 반대하랴. 하지만 어떠한 주장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언젠가 윤희숙 전 의원은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고 했다. 노조의 과도한 기득권을 깨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청년들에게 더 넓은 취업의 문이 열릴 것이라며 한 말이었다. 이 말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노조가 불법으로 사업장을 점거하고 조업을 방해하는 행위를 해도 공권력은 투입을 주저했다. 그러니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의 유일한 대항수단은 손배소 청구 소송이지만 그것도 쉽게 행사하지 못했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가 노사화합이라는 명분을 붙여 취소하는 사례도 많았다. 상생과 협력을 들먹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관행처럼 치부되기도 했다. 비정상을 비정상적으로 마무리를 하는 게 정상적인 것처럼 돼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친(親)노동·반(反)기업·반(反)시장 정책은 어느 정부 때보다 두드러졌다. 그 결과 경제성장 엔진은 식어갔고 제대로 된 일자리는 줄었다.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노란봉투법과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19·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더욱이 거대의석으로 '검수완박' 법 같은 걸 밀어붙이면서도 노란봉투법은 추진하지 않았다.

문제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민주당이 야당이 되고나서 밀어붙이려고 한다. 손배소의 거의 전부가 민노총 사업장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 법은 민노총을 위한 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산업현장 곳곳에서 집단적 불법행위가 계속됐다. 화물연대 파업이나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 노조의 파업은 물론 택배노조의 태업과 업무방해 등은 모두 불법이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하이트진로 노조의 파업 때도 그랬다.

세계 각국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을 펼치면서 해외기업 유치는 물론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돌아오게 한다. 우리는 기업을 옥죄는 정책과 각종 규제 등으로 해외기업 유치는커녕 국내기업의 해외탈출을 부추긴다. 노사갈등 리스크가 크고, 강성노조의 행태와 적자 운영을 해도 성과급을 달라고 파업하는 한국에 해외기업이 투자하겠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라.

현재 각국이 치르고 있는 경제전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고 경제도 민생도 산다'는 확신, 그리고 그 실현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런 노력 없이 폭풍이 휘몰아치는 세계시장에서 우리가 살길을 어디서 찾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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