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있다. 윤 후보자가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에 입장을 밝히지 않자 경찰의 독립성·중립성을 지킬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명백한 이유없이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윤 후보자를 향해 "부러진 민중의 지팡이에 다름 아니었다"며 "경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낼 확고한 소신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어 "윤 후보자는 시종일관 눈치만 살피며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며 "위법적인 경찰국 설치에 대해서는 비겁하게 답변을 회피했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교흥 원내부대표 역시 "유감스럽게도 윤 후보자는 14만 민주경찰의 수장이 아닌 윤석열 정권의 하수인이 될 것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윤 후보자는 대다수 경찰 조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찰국 신설을 통한 경찰 장악 시도에 대해 맞설 의지와 리더십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김 원내부대표는 "윤 후보자는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라 민중의 지팡이로 남고자 하는 경찰 조직 전반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조직의 건강한 목소리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윤 후보자는 경찰의 수장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윤 후보자 청문 보고서 채택에 협조할 수 없다고 국민의힘에 통보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청문 보고서 채택을 하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이 윤 후보자 임명을 강행해 갈등을 유발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행안위원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야당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 채택 거부는 법과 상식에 반하며 의회의 기본책무조차 저버리는 행태"라며 "민주당은 제대로 된 명분과 부적격 사유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소모적 정쟁과 국정 발목잡기에만 혈안이 된 비상식적 정치 행위를 중단하고 청문 보고서 채택에 협조해달라"고 했다. 박형수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주당은 청문회가 별다른 부적격 사유의 발견 없이 무난하게 끝났는데도 '후보자의 소신이 명확하지 않다'는 애매모호한 이유로 또 다시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민주당은 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후보자가 임명되면 이를 빌미로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려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이전에도 국세청장 청문회 개최에 협조하지 않다가 정작 청문회 없이 청장이 임명되자 '청문회 패싱', '국회 패싱' 운운하며 윤석열 정부를 공격한 전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사청문회는 국회의 권리이자 의무"라며 "인사청문회를 했으면 응당 '적격' 혹은 '부적격'을 가린 뒤 상임위 의결을 거쳐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는 것이 당연한 책무"라고 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특별히 하자와 흠결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겠다는 것은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더 이상 몽니를 부리지 말라"고 했다. 여야는 전날인 8일 윤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했으나 청문 보고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아직 윤 후보자 임명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윤 후보자 청문 보고서 재송부 시한은 지난 5일이었기 때문에 국회의 청문 보고서 채택없이도 임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가 잇따르자 대책을 논의하느라 윤 후보자 임명을 후순위로 미룬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윤 대통령은 새벽부터 수해 상황을 점검하고, 피해 현장에 대해 여러 지시를 내리는 상황"이라며 "아직 윤 후보자 임명에 대해 내부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지난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