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우영우는 어떻게 마음을 사로잡았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207/20220727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우영우는 어떻게 마음을 사로잡았나")
과거 한국 드라마는 멜로물 일색이었다가 최근 서구 드라마의 영향으로 장르물이 대세가 됐다. 장르물은 보통 거대한 권력비리나 극악무도한 강력사건을 소재로 한다. 일단 어느 드라마가 악인을 내세워 성공했으면 다른 드라마는 그보다 약한 악당을 내세울 수가 없다. 여러 작품들이 경쟁적으로 더 강력한 악인 만들기에 나선 결과, 드라마 등장인물이 점점 흉악해졌다. 현실이 그렇지 않아도 답답한데 드라마까지 답답해진 것이다.
분위기를 무겁게 가져가기 위해서 요즘 드라마들은 조명도 잘 안 비추는 경우가 허다했다. 공간 전체를 밝히지 않고 스탠드 등으로 부분 부분만 밝히거나 형광등 빛 같은 현실적 조명을 했다. 이러면 시각적으로도 답답하다. 사극도 과거 '이산' 등을 하던 시절엔 밤이나 낮이나 환하고 화사했지만 요즘엔 많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가 처음엔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너무 많은 작품들이 비슷한 분위기를 답습하니 이젠 식상해졌다.
또,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엔 한계가 있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를 권력자도 어차피 대통령 이하 국회의원이나 재벌 등 그 수가 정해져 있다. 그러다보니 드라마 속 악인들의 수법이나 악인의 사회적 위상 등이 비슷비슷해지면서 식상함이 더욱 심화됐다.
이때 '우영우'가 등장했다. 이 작품은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여성 변호사의 이야기다. 사건을 해결하는 법정물이지만 소시오패스 권력자나 연쇄살인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네 이웃들이 겪을 법한 소소한 사건들을 우영우 변호사가 새로운 시각과 헌신으로 해결해나간다는 설정이다.
모두가 사건의 강도를 경쟁적으로 높여가는 속에서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작품은 따뜻하다. 주인공이 사회적 약자인 경우 으레 등장할 법한 왕따, 차별 설정이 없다. 동료는 우영우를 뒷받침해주고 상사도 합리적으로 이끌어준다. 우영우와 경쟁하는 동료 변호사도 있긴 하지만 악인 수준은 아니다.
이렇게 따뜻한 분위기 속에 주인공이 밝게 묘사됐다. 자폐 스펙트럼으로 인한 특이한 말투, 손짓, 몸동작,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머뭇거리는 모습 등이 만화 캐릭터처럼 귀엽게 그려져 시청자가 작품을 유쾌하게 보도록 했다.
날로 무거워져가는 드라마들 속에서 이런 작품이 등장하자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이다. 세상이 이미 충분히 무겁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밝고 따뜻한 이야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요즘 경쟁 낙오의 공포나 사회적 고립의 두려움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우영우' 속에서 장애인이 주위 사람들의 지지 속에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 외국도 경기침체 속에서 마음이 무겁고 열패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작품에 반응이 크게 나왔다.
이 작품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더 강화할 수도 있다. 자폐 '스펙트럼'이라 할 정도로 증상이 다양한데 우영우는 그 중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다.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도 있으며 천재적인 지적 능력까지 있다. 그렇지 못한 일반적인 장애인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과 비교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 작품으로 인해 사회가 자폐 스펙트럼 증상자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우영우 같은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조금만 받아주고 이해해주면 자리를 잡을 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특이한 말투나 몸짓 때문에 무조건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드라마를 통해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
그렇게 보다 포용적인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시청자들이 바로 그런 사회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기 때문에 드라마에 열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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