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우선순위는 언제나 대중… 음악이 없는 곳에 찾아가겠다

벨기에 출신… 악단 첫 외국인 지휘자
친근한 클래식·음악 인재 양성에 팔 걷어
한국 전통악기 관심… 소통 능력도 뛰어나
"국립심포니 장점은 장르 넘나드는 유연성
일관성 유지하되 새로운 곡 선보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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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우선순위는 언제나 대중… 음악이 없는 곳에 찾아가겠다
다비트 라일란트 국립심포니 예술감독 [객석 제공]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다비트 라일란트' 국립심포니 예술감독


다비트 라일란트는 국립심포니의 7대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 악단의 첫 외국인 지휘자이기도 하지만, 코리안심포니가 국립심포니로 명칭을 바꾼 뒤 맞이한 첫 지휘자이기도 하다. 메츠 국립 오케스트라와 국내 투어(4.29-5.3)를 앞둔 라일란트를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에 위치한 국립심포니 사무실에서 만났다. 먼저 파란 눈의 이방인이 '국립'을 내건 한국의 악단을 이끌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를 위한 질문지 분량은 다섯 페이지를 넘어갔다.

예술감독 취임을 축하하며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국립'에 힘을 주어 묻자 그는 "영광스러우면서도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답했다. 영광과 책임, 여기까지가 기자가 예상한 '소감'이었다면 라일란트는 확고한 '꿈'을 더한다.

"더 많은 꿈을 꾸게 된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사실 더 많아졌어요. 대중이 생각하는 국립의 무게와 기대를 알기 때문에 저와 단원들이 함께 해나가야 할 새로운 과제 중 하나는 국립에 걸맞은 성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라며 눈을 반짝였다.

그 역시 '국립'이라는 상징성과 책임의 무게를 알고 있다. 라일란트는 자크 메리시에의 뒤를 이어 2018년부터 메츠 국립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오고 있다. 메츠 국립 오케스트라 역시 2002년에국립 오케스트라로 승격된 바 있다. 그는 최근 '국립' 명칭 사용을 두고 불거진 다른 악단과의 논쟁에 대해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프랑스에는 12개의 국립 오케스트라 있고, 각 악단은 정부의 지원뿐만 아닌 소속된 도시와 지방의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한 나라를 대표하는 것을 넘어 지역에 음악적 기여를 해야 하는 책임도 커진다.

"최근에는 2개의 악단이 추가로 국립 승격을 앞두고 있어, 기조의 오랜 역사를 지닌 국립 오케스트라 간 차이를 두기 위한 호칭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객석] 우선순위는 언제나 대중… 음악이 없는 곳에 찾아가겠다
다비트 라일란트국립심포니 예술감독 [객석 제공]



◇국립의 무게를 알기에

서울시의 음악발전을 위한 서울시립교향악단(1957년 창단), 방송교향악단인 KBS교향악단(1956년 창단), 그리고 나라의 사명을 부여받는 국립심포니(1985년 창단)의 역할은 달라도 국내 교향악단을 대표한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세 오케스트라 중 국립심포니만의 차별화된 역할이 무엇인지 묻자 라일란트는 의자에서 등을 떼고 목을 가다듬었다. "저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대중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느끼는 대중에게 더 친근히 다가가고 음악이 없는 곳에도 찾아갈 겁니다."

"하지만 그 역할은 다른 오케스트라도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라고 반문하니, 고심 끝에 준비한 듯한 답을 꺼낸다. "맞습니다. 모든 단체가 클래식 음악 저변화에 힘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립 단체로서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미래 음악 인재양성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음악적인 모든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KNSO 국제오케스트라아카데미를 열어 오케스트라 단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국제지휘자콩쿠르를 개최해 젊은 지휘자들에게 무대의 기회를 만드는 것 등은 국립심포니가 맡은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그의 말처럼 국립심포니는 젊은 음악가를 위한 무대들을 꾸준히 마련해 왔다. 이를 위한 초석으로 지난해 제1회 KSO국제지휘콩쿠르 우승자인 미국 출신 엘리아스 피터 브라운(1995~)을 이번에 부지휘자로 발탁했다. 라일란트는 한국에 오기 전 그에 대한 궁금증을 못 참고, 베를린에서 그를 만나 3시간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엘리아스는 리허설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지휘자이고, 본인이 어떤 길을 가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것이 그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국립심포니는 지난해 개최한 '작곡가 아틀리에' 1기 출신 전예은(1985~)을 상주 작곡가로 임명했다. 라일란트는 "저는 작곡으로 음악을 시작했기에 작품과 작곡가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오는 11월 전예은의 '장난감 교향곡' 초연을 앞두고 그도 미리 만났다고 한다. 전예은은 "이토록 꼼꼼히 작품을 연구해 준 지휘자는 드물다"고 전했다.

◇진실함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을 떠나고, 아바도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아바도의 소통형 리더십에 단원들은 환호했다. 국립심포니 전임 지휘자 정치용은 "소통형 지휘에는 설득의 과정이 필연적이기에 한 작품을 만드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인내심'을 지휘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뽑은 바 있다. 라일란트 역시 소통형 지휘자로 알려졌지만, 그는 그것이 "본인의 천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태어난 벨기에는 프랑스·룩셈부르크·네덜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다양한 국적과 언어가 섞이는 만큼 하나의 공통된 의견에 이르기 위해 자연스럽게 소통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수직적인 방식이 좀 더 원하는 목표를 빨리 얻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으냐고 묻지만, 저는 빠른 성과보다 장기적인 신뢰와 긴 호흡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리허설 때 제가 원하는 상세한 음악적 해석이 있지만, 그것을 구현해달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항상 제가 추구하는 것은 단원들이 자유롭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제약 없이 자기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를 할 수 있게끔하면 결국은 제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그는 리허설 중에 단원들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음향의 균형이 어떠한지, 서로의 소리가 들리는지 등을 체크하며 객석과 무대를 뛰어다니고 꼼꼼히 살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원뿐만 아니라 사무국 직원들과의 소통도 원활하다. 하지만 모든 소통이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아닌다. 때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단원들과 한 몸처럼 붙어 있다가도 차원이 다른 현실적인 문제를 사무국과 논의하게 됩니다. 또는 사무국과 공연 기획에 대해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단원을 대표해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도 있죠. 그러다 보니 마치 두 세계와 그 사이를 오가는 느낌을 받기도 하죠. 한쪽은 예술적인 것을 대표하고 또 다른 한쪽은 행정적인 것을 대표하기에 그 사이를 자유롭게 떠다니며 잘 연결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일관성과 진실(Truth)을 잃어서는 안되죠."

그는 진실함이 믿음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악단과의 첫 만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인간적인 연약한 모습 덕분에 관계가 잘 풀렸던 경험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첫 순간이 중요하긴 중요하지만, 저의 멘토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셨던 마리스 얀손스(1943~2019)는 '우리는 지금 인기 경쟁을 하는 게 아니다. 누가 더 효과적인지 그게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지휘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가르쳐준 스승이 얀손스라면,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는 음악가의 신념을 가르쳐 준 스승이다.

"현대 음악을 작곡하며 지휘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음악만 하다보니, 음악적 균형점이 필요했고, 당시 18세기 음악에 완전히 푹 빠져 지냈습니다. 그때 아르농쿠르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요. 그분과의 만남은 강렬했습니다. 그분이 가진 음악적 신념은 어마어마하셨어요. 음악적인 가르침도 받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흔들리지 않고 지켜온 음악적 신념들로 어떻게 음악을 대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객석] 우선순위는 언제나 대중… 음악이 없는 곳에 찾아가겠다
2022년 국립심포니 예술감독 취임 연주회 [국립심포니 제공]



◇유연함과 이상주의를 무기삼아

국립심포니는 코리안심포니로 창단한 지 2년만인 1987년, 당시 문화부 소속 국립극장과 계약을 맺었고, 국립극장 산하 단체였던 국립오페라단·합창단·발레단의 반주를 오늘날까지 맡아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향악단으로서의 독립적인 정체성 또한 지켜오고 있다.

라일란트는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경험과 역사를 이룩한 이 악단의 '유연성'을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국립심포니와 인연을 맺은 것도 두 편의 오페라 덕분이었다. 2018년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로 처음 만났고, 이듬해 쿠르트 바일(1900~1950)의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을 국내 초연했다.

"오페라·발레·교향곡은 비슷한 듯하지만 굉장히 다릅니다. 이 모든 것을 소화하고 있다는 것이 국립심포니의 매우 큰 강점인 것 같아요. 악단이 가진 색채와 얼굴을 작품에 따라 빨리빨리 바꾸는 능력은 아무나 갖고 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발레는 워낙 지휘에 필요로 하는 자질이 다르기 때문에 저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은 능숙한 지휘자님께 맡기고 싶습니다."

그는 '가능한 것'을 이야기하는 '현실주의자'이자, 동시에 꿈을 품은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실'과 '이상'이 상충하며 악단의 '선진(先進)'을 그린다.

최근 안드리스 넬손스는 상임지휘자로 있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음반을 발매해 화제를 모았다. 라일란트 역시 메츠 국립 오케스트라와 국립심포니라는 두 개의 키를 쥐고 있으니 두 국립 오케스트라의 교류를 통한 음반 작업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거야말로 꿀 수 있는 가장 큰 꿈"이라고 이야기하며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두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비행기로 이동할 때 생기는 탄소배출은 환경에 좋지 않아요." 다소 엉뚱하지만,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국립심포니와 메츠 오케스트라의 단원을 교환하고, 상주작곡가를 각자의 나라로 보내 작품을 연주하는 방법도 필요하겠지만 함께 프랑스와 한국의 상징이 될 만한 작품을 남기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창작음악을 연주하는 데에 있어 국립심포니는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 등을 통해 꾸준히 동시대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외국 지휘자가 악단에 처음 임명된 만큼,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해석할까. 한국의 오랜 정서와 역사에 대해 외국 지휘자인 그는 어떻게 공감할까에 대해 물었다.

"두 가지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저는 굉장히 호기심이 왕성합니다. 그래서 늘 배웁니다. 모르는 건 배워야 합니다. 전통악기들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소리가 나는지, 기법은 뭐가 있는지 모두 배울 준비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아는 전문가가 주변에 있어서 저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술감독이라고 해서 제가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기획된 공연을 정말로 잘 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잘 맡기는 것도 예술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악단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

악단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의 얼굴은 발그레해진다. 애정이 묻어났다. 문득 특별히 칭찬하고 싶은 악기군이 있는지 물었다. 오랜 고민 끝, 그의 눈가에 옅은 주름이 패었다. "가족을 보면요. 굉장히 똑똑하고 영리한 사촌이 있는가 하면, 참 견디기가 힘든 삼촌도 계십니다. 그렇지만 두사람 모두 가족이고요. 가족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단원의 수준과 역량을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저의 숙제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현악군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견디기 힘든 삼촌'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그의 예술감독으로서의 최종적인 목표는 "건강한 오케스트라를 다음 후임 예술감독에게 넘겨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국립심포니가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을 할 수 있는 감정의 매개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금방 웃게 했다가 또 1분 후에는 갑자기 울게 만드는 감정의 폭을 다채롭게 느끼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3~4년간 국립심포니가 연주해온 레퍼토리를 모두 살펴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갖게 된 꿈은 "일관성을 유지하되 이제까지 선보이지 않은 곡을 선보이고 싶었다"라는 것.

그동안 그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다니엘 오베르(1782~1871), 뱅자맹 고다르(1849~1895) 등의 작품을 음반으로 남기며 새로운 작곡가 발굴에 앞장서 왔다. "잊혀진 작곡가 중 중요한 이들이 있어요.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음악적 명맥이 이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여성 작곡가 오귀스타 올메스(1847~1903)의 작품을 언급하기도 했다. "생상스와 동시대에 활동했습니다. 때론 올메스의 음악이 생상스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고요."

인터뷰를 마치며 예산과 단원 수의 제약 없이 마음껏 하고 싶은 레퍼토리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쇤베르크의 '구레의 노래'. 아니, 말러 교향곡 8번 '천인'입니다. 하지만 먼저 하고 싶은 작품은 아닙니다." 잠깐의 시간을 달라던 그는 생각 끝에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을 최종적으로 꼽았다. 20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수백 명의 합창과 독창자를 포함해 팀파니만 16대가 사용된다. 대편성의 작품이기에 비용이 많이 들어 프랑스에서도 잘 연주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글=월간객석 임원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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