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장
![[DT현장] `법과 원칙` 희망고문 당하는 기업들](http://contents.dt.co.kr/images/202206/2022061602102269781001[1].jpg "[DT현장] `법과 원칙` 희망고문 당하는 기업들")
당시 재계 인사들은 "그냥 원론적으로 한 얘기니 그렇게까지 의미 부여를 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권 초반이니 좀 더 지켜보시죠"라며, 윤 정부를 아직 믿겠다고 말했다. 물가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윤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
그러나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과 합의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재계의 기대감은 점차 실망감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매번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윤 정부가 '중재자'라며 협상 과정에서 한 발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지난 14일 밤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및 품목 확대'를 골자로 파업 철회에 합의했다.
지난 7일부터 시작한 화물연대의 총 파업으로 산업계가 입은 피해 규모는 지난 12일 기준으로 최소 1조6000억원에 이른다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밝혔다. 물류 차질에 따른 간접적인 피해와 파업으로 기업들이 추가 부담해야 했던 물류비용 등을 고려하면 최소 2조원은 넘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그렇잖아도 공급망 차질과 원재료값 상승 등으로 고전 중인 산업계는 노조라고 할 수도 없는 개인사업자들 모임의 파업, 그리고 불법적인 사업장 점거와 폭력 행사 등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개시 명령으로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피해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 합의에서 일체의 불이익이 없도록 약속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화물연대는 이날 합의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현장 복귀 이후 화물연대 조합원에 대한 일체의 불이익이 없어야 함을 요구했고, 국토부도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화물연대가 했던 불법 행위를 모두 눈 감아주겠다는 약속을 정부가 직접 했다는 뜻이 된다.
경찰이 이번 파업과 관련해 운송방해 등 불법행위를 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한 화물연대 조합원은 지난 13일 기준 44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2명을 구속했다. 추가로 30여명을 대상으로 입건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화물연대는 이들에 대해 정부가 불이익을 안 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고, 만약 이 약속이 안 지켜질 경우 또 다시 실력행사를 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재계는 이대로면 오는 7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본격적인 '하투(夏鬪)'에서도 정부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윤 정부가 또 타협한다면 경제 살리기를 위한 규제완화를 기대하던 재계의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으로 우려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법과 원칙'이 '법 때문에 못한다'가 아니라,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정신에 따라 책임있는 자세로 국민들의 고통을 해소해 주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법과 원칙은 '안전운임제 일몰제는 입법 사항이다' 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따르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윤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전 정부의 비상식적인 부동산 등 경제정책을 바로잡고, 법과 원칙이 바로 선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는 바람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정치인 출신이 아니었기에 이해관계에 휩쓸리지 않는 과감하고 명확한 정책을 펼쳐주기를 기대했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보여준 과감한 결단은 굳이 꼽자면 청와대 개방과 용산 집무실 이전 정도다. 옳고 그름을 떠나 본인이 공약한 바를 그대로 실천했다는 점에서는 높게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치가 바뀌고 경제가 회복되고 사회가 안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윤 정부는 이 같은 국민들의 염원을 받들어 역대급 경제위기를 과감한 규제개혁과 원칙으로 정면 돌파해야 할 것이다.
박정일 산업부장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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