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전쟁의 비극을 부른 러시아… 오를 수 있는 무대가 없다

우크라 침공후 침체된 러시아 음악계
서방진영 '대러 문화 제재' 하반기 이어질 전망
유럽 오페라하우스는 건물외관에 '반대' 표명
영국은 발레투어 방문 취소에 수석무용수 이적
親 푸틴 관련그룹 소속·후원받은 예술인 축출
국가 스타일 인재 양성한 교육기관 위상 저하
현지 거물급 음악가 대부분도 거리두기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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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전쟁의 비극을 부른 러시아… 오를 수 있는 무대가 없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옹호냐 반대냐. 러시아 음악가들의 시선과 자세에 따라 러시아 음악계의 위치와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그들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진영의 대러 문화 제재는 올 하반기로 이어질 전망이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로마 오페라를 비롯한 여러 유럽 오페라하우스가 건물 외관에 우크라이나 국기색을 비추며 전쟁 반대를 표명했다. 영국 로열 오페라는 올여름 볼쇼이 발레의 런던 투어를 취소했고, 러시아 스타니슬랍스키 극장의 발레감독 로랑 일레어는 바이에른 주립 발레단 감독으로 옮겼다. 볼쇼이 발레 수석무용수 올가 스미르노바는 아예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했다. 러시아계 후원자를 둔 함부르크 엘프 필하모니, 린츠 브루크너하우스를 비롯한 여러 공연장이 그들과 거리를 두었고, 친 푸틴 자본이 후원하는 그룹에 속한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1972~)의 앙상블 에테르나 역시 다수의 서방 공연이 취소됐다.



◇전세계가 동조하는 게르기예프 축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서방 공연계가 주적으로 삼은 건 마린스키 극장의 예술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1953~)이다. 그를 정기적으로 고용한 라 스칼라 극장, 뮌헨 필, 로테르담 필, 베르비에 페스티벌, 게오르그 솔티 재단이 전쟁 직후 모두 '차르'를 퇴출했다. 공연 성사를 대가로 수임료를 챙기던 펠스너 에이전시도 그를 손절했다. 돈보다 중요한 대의를 알린 동시에, 평소 시간 약속을 가볍게 여기던 게르기예프의 태도를 참고 참던 곳이 대다수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반 푸틴 성향의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1976~)는 러시아 기득권자들의 EU(유럽연합) 내 자산 동결을 주장하며 대표적 인물로 게르기예프를 들었다. 나발니는 "정권 비호로 러시아에서 축적한 부를 베를린·런던으로 이전해 고가 아파트를 사고 유흥을 즐긴다"고 게르기예프의 행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게르기예프가 자산 동결을 대비해 급히 매각한 부동산은 예상과 달리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처리됐다. 나발니를 따르는 영상팀의 마리아 페브치흐는 지난 2월 23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야, 스칼라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온 게르기예프에게 다가가 신분을 숨기고 사인을 받았다. 스테이지 도어에서 받은 사인은 그동안 나발니 영상팀이 수집한 이탈리아 내 게르기예프 자산 계약에 쓰인 서명과 비교됐고, 영상팀은 동일성을 주장했다.

영상팀은 게르기예프가 최소 1억 유로의 자산을 이탈리아 전역에 보유 중이라고 폭로했다. 산 마르코 카페, 베니스 운하의 부틱 호텔, 밀라노의 고급 저택, 소렌토 빌라의 소유자 사인에 모두 게르기예프가 들어갔다. 게르기예프의 이탈리아 보유 자산은 그가 음악 사업으로 벌어들인 게 아닌, 자신의 오랜 후원자였던 요코 나가에 체스키나 백작(1932~2015)의 유산을 상속받은 것이다. 일본에서 하피스트로 활동한 요코는 양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 부대에 붕대과 거즈를 군납한 렌조 체스키나의 미망인으로 부군 사망 이후 각종 메세나 사업에 매진하다가 게르기예프를 만났다. 마린스키 극장의 신증축 자금을 댄 것도 요코였고 푸틴은 '러시아 문화 홍보에 막대한 공헌'을 명분으로 요코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요코 사망 이후 자산 상속이 실제로 게르기예프에게 이뤄진 점도 이번 전쟁통에 드러났다. 게르기예프 축출을 주장한 나발니를 경시했던 공연계가 전쟁과 폭로로 뒤늦게 게르기예프 비토에 나선 셈이다.



◇지금, 러시아 음악가들의 동향

게르기예프의 조력으로 음악계 엘리트 명단에 오른 인물들도 현재 서방에서의 활동이 어렵다. '푸틴의 오른팔'인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1975~)는 고국에서도 공연이 격감했고, 게르기예프 후광으로 무명에서 벗어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1971~)는 러시아의 개전 책임을 거론하며 서방 오페라하우스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음악감독 투간 소키예프(1977~)가 물러난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과 합병하는 계획을 발표하며 친정부 예술가들이 서방에서 잃은 일자리를 통합된 극장에서 보전하고자 한다.

한편 게르기예프와 친분이 없지만, 러시아 정권의 군사 행동을 옹호하는 음악가도 있다.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좁스키(1969~)는 러시아 TV 토크쇼에 출연해 "키이우에 전기를 차단해 우크라이나 압력을 강화하라"고 발언했다. 친러 성향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1973~)는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점령하자,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DPR) 초청으로 러시아 승전 기념 축하공연을 현지에서 벌였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소프라노 알비나 샤기무라토바(1979~)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소프라노가 필요한 자리를 채우며 이름을 알렸다. 2022/23 시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이도메네오'에 출연 예정이었던 샤기무라토바를 두고 운영감독인 피터 갤브는 "가수 계약서 서명자가 푸틴이므로 취소는 정당하다"고 얘기했다. 친 푸틴 성향을 공개적으로 밝힌 샤기무라토바가 마린스키에 입성한 후 마린스키와 볼쇼이 극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줄 서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앞으로 음악가들은 어떠한 선택을 할까?

러시아 스타일의 인재를 배출한 교육기관, 스타 탄생을 알린 콩쿠르의 위상도 불가피하게 저하됐다. 러시아는 서방 국가 대부분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해 모스크바 음악원에 외국 유학생이 체류하거나 신입생으로 입국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4월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고, 현재 흐름대로면 내년 대회는 음악판 '러시아 전국 체전'으로 격하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병무청과 문화체육관광부는 5월 현재,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2위 이상 입상할 시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회임을 인정하고 있다.

푸틴을 지원하는 대가로 독재 정권에 자신의 명성을 빌려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딜레마에서, 게르기예프를 제외한 거물급 러시아 음악가들은 대부분 일정한 거리두기를 유지했다. 1980년대부터 게르기예프와 더불어 필립스(Philips) 앨범으로 각광받은 현 체코 필 음악감독 세미온 비치코프(1952~)는 대표적인 반 푸틴 진영 음악가다. 옴스크 태생의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1972~)는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며 전 세계 평화에 칼을 꽂는 일"이라며 푸틴을 맹비난했다. 모스크바 태생의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1971~)은 전쟁 상흔의 책임이 러시아 정부에 있는 점을 명확히 했고, 유태계 러시아인이 겪는 비애를 시작(詩作)으로 표현했다.

서방에서 환영받지만 푸틴과 직접 교류가 없던 미하일 플레트네프(1957~), 테오도르 쿠렌치스는 정치적 메시지에 관한 표명을 삼가고 음악 활동만 이어가고 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1991~)는 "모든 전쟁은 비극"이라고 코멘트하면서 사실상 반 게르기예프 진영에 섰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들을 회전문 인사로 자신의 공연에 세우던 게르기예프의 관행에 부응하면서 서방 공연을 포기할 음악인은 극소수다.

러시아의 영토 확장은 우크라이나에 그치지 않고 몰도바 영토 내 친러 분리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이어질 전망이다. 쿠렌치스와 한 팀을 이루며 다양한 협업 활동을 벌인 몰도바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시야 코파친스카야(1977~)가 음악과 정치 분리를 내세우며 쿠렌치스와 예전처럼 손을 잡을지도 불투명하다.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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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나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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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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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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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덴부르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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