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尹 `자유` 35회, 文 `대통령` 34회…극과극 취임사

'자유' 가치 호소, '국민' 높인 이례적 취임사
與, 철학 채울 기회…'反지성주의' 對野 경종
자기홍보 없는 尹, '대통령' 최다언급 文과 대조
투박하게 할말 한 尹, 이중언어 논란 키운 文
좋은 말보단 실천으로 평가받는 정치 복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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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공식 취임과 함께 그의 취임사가 비상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정식 대통령 취임사 치고는 짧으면서도, 굵직한 선을 남겼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30분 이상 분량의 백화점식 나열 방식으로 쓰인 초안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쳐내고 다듬어 16분 분량으로까지 줄였다고 한다. 윤 대통령 본인의 언어로 채우면서 드러난 특색도 다양하다.

'자유'를 무려 35차례 강조한 게 괄목할 만하다. 과거 보수정치인들의 '쉬운 선택'이던 반공(反共) 레토릭 대신 자유의 가치 그 자체를 호소했다. '자유는 공기와 같다'는 클리셰를 넘어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는 직접 화법을 구사했다. 기회주의에 찌들어 투사(鬪士)와 정론(正論)을 멀리해 온 기득권 보수에선 보기 드물고, '정치신인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문법으로 보인다.

취임사 이슈에 힘입어 윤 대통령이 지난 3월 대선후보 신분일 때 대한출판문화협회의 문의에 '인생책'으로 꼽은 밀튼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등 저작들도 회자되고 있다. '자유론'에서 밀은 "개인의 자유는 자신의 사고와 말, 행위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모든 범위에서' 절대적"이라는 본질적 통찰을 제시한다. '선택할 자유'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각각 국가(정부)의 자의적 규제와 독점적 정치권력의 확대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개인의 후생(厚生)을 좀먹는지 논한다. 국민의힘은 이벤트성 자격시험에 매달리기보다, 이런 양서들을 '석열학' 교재 삼아서라도 펼쳐보는 게 낫겠다.

취임사에 '국민'과 '시민'이 각각 15회, '우리'가 14회('우리나라' 제외) 등장한 것도 특징적이다.

'국민' 앞에는 '존경하는' '사랑하는' '위대한'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해 주신' 등 높임 표현이 주로 붙는다. '시민'은 국민들을 향한 '자유 시민', 나라 밖을 향한 '세계 시민'으로 나뉘며 함께 갈 운명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보편적 국제 규범을 적극 지지",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 등의 언급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동기화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함께 꺼낸 '반(反)지성주의'는 그 대척점에 있다.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했다. 취임 직전까지 '검수완박법' 강행 등 전임 정권이 보인 철저한 진영논리, 다수 의석과 권력의 기계적 활용, '양념단'으로 대표된 동원 정치를 겨눴으리란 해석은 어렵지 않다. 공교롭게도 취임 전야 '한동훈 청문회'에서도 반지성이 판을 쳤다. 구한말 '개화파와 척사파' 간 대립의 재현을 알린 것처럼도 보인다.

이외에도 윤 대통령 취임사는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것과 대조되는 특징을 지닌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한 '저는' 이외에는 본인을 내세운 표현이 드물다. '대통령'이 단 4차례 등장하는데 그마저도 취임식에 참석한 '문재인·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현직 해외 정상 3명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윤 대통령의 것과 비슷하게 3000자(字) 초반대 분량으로 쓰인 문 전 대통령의 취임사에선 '대통령'이 34회 등장하며, 어떤 가치관을 드러낸 표현보다도 훨씬 높은 빈도를 나타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상기시키거나 대통령선거를 언급한 대목을 제외하면 문 전 대통령 자신을 중심에 놓은 것이 대다수다. '국민 모두의' '따뜻한' '친구같은' '깨끗한' '공정한' '소통하는' '솔직한' '광화문 시대'…'대통령' 앞에 자신이 실현하겠다는 이미지를 수식했다.

임기말 '잊혀지겠다'더니 이내 특집 인터뷰·다큐를 방송하고, 후임자를 공개 저격하고, 5년 만의 정권교체에도 지지자들 품에서 "제가 성공한 대통령이었나" "다시 출마할까요" 되묻고, 귀향 이틀 만에 또 근황을 전하는 모습은 그 연장선같다. 대아(大我)와 소아(小我)의 차이가 이런 것일까.한기호기자 hkh89@dt.co.kr

[한기호의 정치박박] 尹 `자유` 35회, 文 `대통령` 34회…극과극 취임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한기호의 정치박박] 尹 `자유` 35회, 文 `대통령` 34회…극과극 취임사
지난 2017년 5월 10일.19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오른쪽) 여사가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치고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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