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고급술 시장까지 바꾸는 MZ세대](http://contents.dt.co.kr/images/202204/20220413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고급술 시장까지 바꾸는 MZ세대")
이게 의외인 것은 그동안 고급 술과 젊은 세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보통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적은 액수로 취할 수 있는 값싼 술을 선호해왔다. 그런 젊은 세대가 값비싼 위스키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것이다. 과거에 위스키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아재'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더욱 젊은 세대가 기피하는 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GS25 편의점의 2021년 위스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0.8% 증가했고, 올 1~2월엔 127.5% 늘었다. 위스키 구매자 중 MZ세대인 2030세대의 비중이 2020년 51.3%에서 올해 70.8%로 확대됐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선 위스키 연매출 신장률이 2020년 91.5%, 2021년 140.9%를 기록했는데 구매자의 절반 정도가 2030세대였다고 한다.
이렇게 위스키 구매량이 늘어나자 위스키 총 수입액도 2021년에 1억7534만 달러(약 2099억원)로, 전년 대비 32.3% 늘었다. 위스키는 접대문화와 연관이 깊은 술이어서 김영란법 이후 접대문화가 위축되자 판매량이 하락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2030세대가 대거 시장에 진입하면서 위스키의 부흥을 이끄는 모양새다.
판매업체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정우성, 이정재 등 중년남을 내세우며 홍보했었는데 요즘엔 샤이니 민호, 위너 송민호 등 아이돌을 내세운다. 젊은 배우 류준열도 위스키 모델로 발탁됐다. 요즘 젊은이들의 상품 구입 문화 중의 하나가 '오픈런', 즉 아침부터 줄을 섰다가 개장하자마자 뛰어가서 사는 것인데 2030세대의 진입으로 위스키 시장에도 오픈런이 나타났다. 일부 위스키들은 가격도 뛰고 있다.
너무 비싸서 젊은이들이 아예 마실 생각조차 안 했던 증류식 소주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아이돌 출신 래퍼 박재범이 증류식 소주를 출시하자 오픈런 현상이 등장했다. 두 번째 팝업스토어에선 최장 대기자가 17시간 동안 기다렸는데 대기자의 대부분이 2030세대였다고 한다. 증류식 소주 출고량은 2020년에 2015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처럼 술을 많이 먹지 않는 추세인데 이렇게 주류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한 것이 놀랍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많이 먹지 않기 때문에 더욱 비싼 술 소비의 문턱이 낮아진 측면이 있다. 과거처럼 끝장을 보는 음주문화였다면 싸고 양 많은 술을 찾았겠지만, 지금은 적당한 양을 즐기기 때문에 특별한 술을 찾는 것이다.
SNS를 통한 인증과 인정받기는 MZ세대에게 대단히 중요한 활동이다. 그래서 MZ세대는 항상 특이한 상품, 특이한 풍경을 찾는다. 그걸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이다. 이런 용도로도 값싼 대중주보다는 비싸고 흔하지 않은 술이 어울렸다.
그리고 요즘 젊은 세대는 고급스러운 느낌도 중시해서 프리미엄이라는 단어가 도처에 나타날 정도이기 때문에 술도 프리미엄을 찾게 됐다. 불황이라고 해도 부동산, 주식, 가상돈 등 각종 재테크로 고수익을 올린 MZ세대가 많다. 그러다보니 소비여력이 증가한 것도 프리미엄 소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빈곤도 비싼 소비에 한몫을 했다. 번듯한 집을 살 수 있을 정도까지는 돈을 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 대규모 소비를 아예 포기하는 대신 소소한 취향에 대한 소비에 과감해졌다. 과거엔 향후 집을 사기 위해 취향을 억누르고 내핍했다면 지금은 당장의 만족과 행복에 지출한다. 그래서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는 소확행이 확산됐다. 당장의 소소한 행복이 중요해지자, 소유보다 경험이 대두됐다. 지금 나에게 만족한 느낌을 주는 경험에 흔쾌히 돈을 쓰는 것이다. 과거엔 물질적으로 남는 것이 없는 경험에 큰 돈 쓰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요즘 MZ세대는 여행에 거액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싼 술도 흔한 싼 술과는 다른 각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그것이 파티 분위기도 더 띄워주기 때문에 소비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우리 경제가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이제 전 국민이 희석식 '쏘주'를 '코가 비뚤어지도록' 퍼부으면서 애환을 달래던 시대는 저물어간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MZ세대에 의해 술시장은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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