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DT현장] 안철수, 과학계에서도 철수하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204/2022041202102269731001[1].jpg "[DT현장] 안철수, 과학계에서도 철수하나")
요즘 과학계에서 가장 회자되는 질문들이다. 유독 이런 질문들이 과학계 주변에서 빈번히 오르내리는 것은 그만큼 새 정부의 과학기술 거버넌스 변화에 관심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전 정권 출범에 앞서 이와 비슷한 질문들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정권 교체 영향 때문인지 과학계에서 나오는 질문과 궁금증의 강도와 횟수는 이전과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돌이켜 보면, 역대 대선 중 후보들이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역할을 이처럼 강조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과학이 주목받는 분야로 신분 상승한 느낌이 들 정도다. 예컨대,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 과학기술 전담부처인 과기부는 항상 끌려가는 '을' 입장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교육부가 과기부를 흡수하는 형태로 '교육과학기술부'가 탄생했고, 박근혜 정부 때도 과기부가 미래창조과학부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정부조직 개편이 추진됐다.
하지만, 새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과기부는 '갑'이 된 듯 보인다. 과기부에 방점을 놓고 교육부를 합치냐, 마냐 등을 논의하는 신세로 180도 역전된 것이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기술 안보와 기술 주권 등의 중요성이 커진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과학자 출신인 안철수 위원장의 역할이 컸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안 위원장은 대선 후보 당시 과학기술 분야를 '제1 공약'으로 채택하고, 후보 가운데 가장 과학친화적 행보를 보이며 과학계 대표 후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왔다. 대선 기간에 보여준 안 후보의 이런 '과학 중시' 행보와 진정성에 과학계도 호응했다. 일선 연구현장에선 예전과 달리 그를 포용하고 지지하는 움직임이 차츰 많아졌다. 이 즈음, 안 후보의 지지율이 최대 15%까지 치솟을 정도로 안 후보의 기세가 대단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지율이 10% 아래로 다소 시들해졌지만, 선거 막판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대선에 승리한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으며 새 정부의 2인자로 부활하는 듯 보였다. 정권 교체기라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과학계는 안 위원장이 든든한 우군이 돼 줄 것인냥 대선 후보일 때보다 더 뜨거운 기대와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대선 후보 사퇴로 정치권에선 '안철수의 철수(撤收)정치가 또다시 시작됐다'는 비난과 멍에를 썼지만, 과학계로선 '철수의 귀환'으로 존재감을 키우게 된 것이다. 심지어 과학자 출신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최측근 인사인 신용현 전 의원을 인수위 대변인으로 앉혔고, 인수위 구성에서도 안 위원장이 추천한 전문성과 명망 있고, 젊은 과학계 인사가 대거 합류하면서 그의 막강한 영향력과 위세에 과학계가 거는 기대는 날로 커졌다.
그렇지만, 얼마 안 돼 안 위원장은 과학계의 기대를 저버리고 또 한번의 철수 움직임이 감지됐다. 지난달 30일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히며 권력 중심부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겠다고 선언했다. 과학계 일각에선 이를 두고 "안철수가 선거판에 이어 과학계에서도 철수하려고 하네" 등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 조금 넘게 인수위원장을 맡으면서 안 위원장의 존재감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의 주요 공약인 과학기술부총리제, 과학기술수석비서관, 교육부 폐기 등은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뤄져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오리무중이다. 심지어 지난 10일에 있었던 8개 부처 장관 인선 때도 안 위원장 측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지명받지 못해 그의 권세가 서서히 기울고 있는 느낌이다. 벌써부터 새 정부가 '안철수 지우기'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술 대변혁과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서 과학기술은 과거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에서 국가 안보는 물론 국가 생존까지 책임져야 하는 레버리지(지렛대) 역할을 해야 한다. 과학계 대변자로 인식됐던 안 위원장의 계속된 '철수 정치'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가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 중심에 두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다. 윤석열 당선인도 이 같은 점을 인식하고, 후보 시절 우리나라가 당면한 저성장 극복과 역동적 성장을 위해선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젠 오롯이 대통령의 의지와 행동만 남아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과학기술 구하기' 역할을 대통령이 할 수 밖에 없음을 잊어선 안 된다.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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