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서태지, 시대를 만든 음악인](http://contents.dt.co.kr/images/202203/2022033002102269660002[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서태지, 시대를 만든 음악인")
흔히 사람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기존 가요계 인사들로부터 혹평을 들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혹평이라기보다는 반신반의, 미지근한 반응 정도였는데 이것이 일반 대중들의 반응과 격차가 너무나 컸다. 그래서 서태지가 기성 가요계 인사들로부터 혹평을 들었다는 신화가 생겨났다.
우리는 압축성장을 했기 때문에 세대차이가 극심하다. 그렇게 급격하게 변화하며 서구문화를 추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80년대 3저 호황과 민주화를 거쳐 90년대에 나타난 젊은이들은 서구문화를 거의 동시기에 향유하게 됐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사고방식이 확연히 달랐고, 그런 젊은이들의 등장에 충격 받은 한국사회엔 세대론이 등장했다. 신세대의 특이점을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들이 넘쳐났다. 마침내 이 젊은이들에겐 X세대라는 이름이 부여된다.
이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문화, 보다 서구적인 문화를 찾고 있었다. 바로 그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난 알아요'가 지상파에 등장한 초기에 젊은이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10대들도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10~20대 사이에서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이후 한국 가요계에선 10~20대가 가장 핵심적인 수요층으로 굳어졌다. '미스터트롯'의 등장으로 중장년층의 반격이 전개되기까지 그 구도가 30여 년간 이어졌다. 90년대 가요계는 10~20대 중심의 댄스음악이 완전히 점령했고 마침내 아이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에 열광했던 한국 젊은이들이 한국 아이돌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초전성기 속에서 이들의 경쟁력이 날로 고도화됐고 결국 케이팝 한류가 나타난다. 서구 아이돌 퇴조기 이후 한국 아이돌이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게 됐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에 이르러 세계 최고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제 케이팝은 지구촌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언어가 됐다. 이 거대한 흐름의 출발점이 서태지와 아이들인 것이다. 이 팀을 설계한 서태지가 바로 90년대 한국 신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90년대에 한국 대중문화는 놀라운 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대거 현대화, 서구화했고 그 흐름이 현재도 계속된다. 그래서 케이팝 제작자들이 대부분 엑스세대다.
서태지는 뮤지션의 지위 상승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 뮤지션은 '딴따라'라고 해서 그렇게 존경 받는 위상이 아니었고, 방송사 앞에서 철저한 을이었다. 하지만 서태지는 자신의 권리를 찾았고 방송사에 대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 했다. 그래서 많은 매체나 방송계 인사로부터 '거만하다' '유난을 떤다'는 등의 비난을 들었지만 결국 서태지가 앞서 간 길을 후배들이 따라가고 있다.
사전심의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때 나타난 '시대유감' 파동과 그에 따른 서태지 팬들의 반발 그리고 정태춘 등의 운동이 합쳐져서 마침내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인기 스타는 많았지만 이 정도로 한 시대를 대표하고, 후대까지 이어진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사회적 영향까지 미친 연예인은 없었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타나기 힘들어 보인다. 상상을 초월하는 서태지 신드롬과 그 영향력은 농업사회에서 급격히 서구화 현대화하던 한국의 특수한 조건 속에서나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서구화와 현대화를 완료했기 때문에 과거처럼 신문화 수입으로 한 시대를 가르는 사태는 또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바로 그래서 서태지가 유일무이한 문화대통령이다.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들은 연예인은 오직 서태지 뿐이다. 서태지 문화대통령 호칭이 정당한가에 대해서 100여 분 정도의 TV토론까지 있었다. 일개 연예인 호칭에 대해 토론이 진행됐다는 것 자체가 서태지가 왜 문화대통령이라 불리는 지를 말해준다.
그랬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제 30주년을 맞은 것이다. 그때 한국의 현대 대중문화가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 현대 대중문화 30주년이라고도 할 만하다. 올해 만약 앨범이나 공연 등 서태지의 30주년 기념 이벤트가 있다면, 후배들이 대거 참여해서 케이팝의 뿌리를 되새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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