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한기호의 정치박박] 절묘한 대선 민심, 여야 협량정치 경고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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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겪은 보수정당에 5년 만 재집권 허용한 민심
윤석열 최소득표차 당선,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
尹 역대 최다득표·재보선 싹쓸이, 집권 명분은 확인
'심판' 당한 민주, "지지자들"에 울음 터진 靑대변인
겨우 이긴 국힘, 지분싸움 눈앞…이준석 "젊은세대 功"
全국민 아닌 지지세력만 보는 정치 반성했나 의문
[한기호의 정치박박] 절묘한 대선 민심, 여야 협량정치 경고했건만
3·9 대선 이튿날인 지난 10일 윤석열(왼쪽)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권영세 당 선대본부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내어주고 궤멸 수준까지 갔던 보수정당이 5년 만에 재집권하는 것으로 제20대 대선이 결판났다. 야당은 직전 대통령을 탄핵 전후 범죄혐의로 수사하던 검사, 현 집권세력에서 검찰 수장을 지낸 인물을 후보로 받아들여 시쳇말처럼 돌던 정권 교대 '10년 주기설'조차 깨고 승리했다.

집권 초기 '80% 촛불 국민통합'과 '50년 집권론'을 과시하던 민주당 정권은 '내로남불' 네글자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검찰·언론 등에 '민주적 통제'를 부르짖다가 중앙권력을 내어주게 됐다.

다만 대선 성적표를 보면 단순 승·패 판정에 그칠 일은 아닌 것 같다. 5년 전 '탄핵 대선' 비상시국과 불과 0.1%포인트 차이의 투표율(77.1%)로, 양대 진영이 대거 결집하는 '절박함'을 드러내며 맞붙었다. 다수결 선거가 기본적으로 승자독식이라지만, 1·2위 대선후보는 헌정사상 최소 득표율 격차(0.73%포인트)·최소 득표수 격차(24만7077표)로 승부를 냈다. 세간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를 입증이라도 하듯 무효표(30만7542표)보다 적은 격차로 승패가 갈렸기도 하다. 선거 전날 당 대표가 10%포인트 이상 득표차 승리를 공언하던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부터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48.56%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1639만4815표를 얻어 역대 최다 득표 당선 기록을 갈아치웠다. 3·9 대선과 한날에 치른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5곳은 국민의힘이 사실상 싹쓸이하면서 '정권 교체론'이 힘을 받은 정황으로 풀이된다. 정권 심판을 현실로 맞이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는 기본적으로 '낮은 자세'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재명 민주당 전 대선후보는 문재인 대통령 득표 수(1342만 3784표)를 넘어서는 1614만7738표(47.83%)를 얻어 '역대 최다 득표 낙선자'라는 묘한 평가를 받게 돼, 민주적 정당성과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갈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이런 성적표를 받아 든 양대 진영의 반응은 어떨까. 권력 이양을 앞둔 청와대에서는 때 아닌 '눈물 사건'이 터졌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10일 오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전화통화 내용 등을 브리핑하던 도중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면서, 5분여간 브리핑이 중단됐다. 대선 기간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공개적으로 사과까지 요구하던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에게 "선거 과정의 갈등, 분열을 씻어내고 국민이 하나 되도록 통합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뒤이어 문 대통령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대독하던 박 대변인은 "당선되신 분과 지지자들께 축하 인사드리고, 낙선하신 분과 그 지지자들께…"라는 대목을 잃던 중 울음을 터뜨렸다.

공교롭게도 '당선되신 분과 지지자들'까지 차분하던 목소리가 '낙선하신 분과 그 지지자들'에서 무너졌다. 5분 가까이 브리핑을 멈춘 박 대변인은 감정을 추스르고 문 대통령의 나머지 메시지를 읽어나갔다. 끝까지 민주당 지지자들을 배려한 '연출'이었든, 침통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든 위화감을 지우기가 어렵다. '민주당 대변인'도 아닌 행정기구 청와대의 대변인 브리핑에서 눈물이라니, 표면적으로라도 전(全) 국민의 대변자여야 할 공직자는 여전히 보기 어렵다.


'검찰총장 윤석열'과 '감사원장 최재형'이 검찰개혁·탈원전에 반기를 들자 '정치적 중립'과 '민주적 통제'를 내세워 압박하고 '민주당 통제'라는 비판까지 듣던, 지지세력만 바라보는 정치를 내려놓지 못한 것 같다.
승자 쪽도 불안하다. 일단 윤 당선인은 10일 당선 인사 기자회견에서, 30% 돌파를 장담하던 호남 득표율이 10%초반대에 그친 데 대해 "선거 결과에 대해 뒤돌아볼 이유도 없고, 오로지 국민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그는 이대남(20대 남성) 여론에 힘입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세대포위론'을 채택했으나 이재명 전 후보에게 결국 20대 종합 우위를 내어줘 '젠더 갈라치기 전략이 주효하지 않았다'는 질문으로 꼬집히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젠더 갈라치기를 한 적도 없고, 집합적 평등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는 취지로 항변하면서도 득표 성적에는 "투표 결과를 보고 다 잊어버렸다"고 말을 아꼈다. 이에 일각에선 "젠더갈등 편승에 반성하는 코멘트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반면 이 대표는 같은 날 '외연확장'을 강조하면서도 '이대녀' 득표 부진에 관한 언급 대신 "20·30세대와 당의 취약지역인 호남에 대해 꾸준한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 기간에 젊은 세대가 자발적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네거티브 대응 및 홍보물 제작 등에 기여한 공이 매우 크다"거나, "광주에서 역대 가장 많은 투표를 해주신 광주시민들"에 감사를 전했다. 자신의 지지세력과 연결된 공로를 에둘러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당 안팎에서는 그의 전략을 '젠더 갈라치기'라고 거듭 꼬집거나, 윤 당선인에게 야권 단일후보 양보를 결단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향했던 '조롱'과 '당권 견제' 발언을 문제 삼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대표는 11일 SNS에 정치 상황과 비행기 착륙을 빗댄 듯 "보통 조종석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글을 썼다. 절묘한 격차로 포상과 채찍을 동시에 선사한 민심과 괴리되는 여야 정치권을 계속 보게 될 것 같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한기호의 정치박박] 절묘한 대선 민심, 여야 협량정치 경고했건만
지난 3월 9일 오후 7시 30분 국회 의원회관과 국회도서관에 각각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 상황실을 차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왼쪽)와 국민의힘 지도부(오른쪽)가 양당 대선후보가 소수점 격차 초박빙이라는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접한 뒤 각각 자축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상 지지율 격차와 득표 예상 대비 적은 격차에 민주당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고, 국민의힘에서는 '이기긴 이겼다'는 말과 함께 박수를 보냈으나 이내 긴장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연합뉴스

[한기호의 정치박박] 절묘한 대선 민심, 여야 협량정치 경고했건만
3·9 대선 이튿날인 지난 3월 10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통화와 관련한 브리핑 도중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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