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나훈아 새 앨범의 충격](http://contents.dt.co.kr/images/202203/20220302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나훈아 새 앨범의 충격")
서구와 다른 우리 대중문화계 특징 중의 하나는 조로 현상이 있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이 지나면 급격하게 창작 에너지가 줄어든다. 뭔가에 도전하는 모습도 드물어진다. 그래서 중년 이상 가수들은 과거 히트곡들을 내세워 익숙한 행사나 디너쇼 같은 형태로 활동할 때가 많다. 반면에 나훈아는 계속해서 창작을 하고 있다. 새 앨범을 지속적으로 내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그 앨범을 자작곡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번 앨범도 '맞짱', '체인지', '누망', '친정 엄마(아내의 엄마)', '사랑의 지혜', '매우(梅雨)', '끈(미련 곰탱이)' 등 수록곡들이 모두 자작곡이다.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의 창작 열정이 흔치 않다.
나훈아의 자작곡이 더욱 놀라운 것은, 시장에서 히트한다는 점이다. 단지 창작을 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으며 다른 최신곡들과 상업적으로 각축을 벌인다. 2017년엔 자작곡 '남자의 인생'을 히트시켰고, 2020년엔 '테스형' 열풍을 일으켰다. 그해에 '명자'와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도 명곡으로 자리매김했다. '명자'는 이찬원이,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는 임영웅이 방송 중에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젊은 후배들이 잇따라 부른다는 것은 노래가 그만큼 현재 정서에 부합한다는 이야기다. 원로 가수가 된 후에도 핫한 노래들을 지속적으로 창작해내는 뮤지션은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나훈아의 행보가 놀라울 뿐이다.
창작은 깊은 고통을 수반한다. 나훈아는 그런 창작의 고통을 자청해온 셈이다. 창작뿐만 아니라 도전도 역시 고통을 수반한다. 나훈아는 그런 도전의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다. 원로가수가 디너쇼가 아닌 체육관 콘서트 투어를 하는 것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다. 이번 앨범 작업도 역시 도전인데, 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에도 도전했다.
흔히 트로트 부문의 뮤직비디오는 노래 부르는 모습 위주로 간소하게 만들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나훈아의 이번 신곡 뮤직비디오는 마치 한류 아이돌의 영상처럼 제작됐다. 처음 공개한 '맞짱' 뮤직비디오는 판타지 액션 드라마처럼 만들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엑스칼리버 같은 칼을 뽑아서 악마와 대결하는 액션이 담겼다. 이 영상 속 나훈아의 모습이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 '더 위쳐'의 게롤트 같다면서 누리꾼들이 나훈아를 코리안 게롤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뮤직비디오의 나훈아 모습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밈으로 퍼져나갈 조짐이다.
두 번째로 공개한 '체인지' 뮤직비디오도 파격적이다.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EDM 스타일을 도입하면서 국내 최고의 팝핑 댄스 크루인 '월드 페임 어스(WORLD FAME US)'와 협연했다. 나훈아 스스로 포인트 안무도 선보였다. 물론 능숙한 춤은 아니지만 시도 자체가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렇게 도전을 멈추지 않는 노장의 모습에 젊은 세대가 열광하고 있다. 윗자리에 앉아서 세태만 탓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전의 일선에 나서는 원로의 모습을 젊은 세대는 기다려왔다. 나훈아가 바로 그런 뮤지션이다. '2020 KBS 나훈아 콘서트' 때 신드롬이 나타났던 것도 나훈아의 도전하는 열정이 전달됐기 때문이었다.
나훈아가 과거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현재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노랫말에도 나타난다. 최근 침체된 뉴노멀의 사회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남자의 인생'이 그랬고, 시대를 한탄하는 대중 정서와 공명을 일으킨 '테스형'도 그랬다. 이번 앨범에서도 요즘 인터넷 언어를 도입하는 현재적 감각을 보여줬다. 이런 음악활동을 55세도 아닌 데뷔 55주년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나훈아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역사다. 그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우리 대중음악계의 지평이 확장된다. 많은 후배들이 나훈아가 앞서간 그 길을 따라 가게 될 것이다. 나훈아의 도전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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