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논설실장
![[이규화 칼럼] 복합쇼핑몰 정신승리](http://contents.dt.co.kr/images/202202/2022022302102269660001[1].jpg "[이규화 칼럼] 복합쇼핑몰 정신승리")
고려인들은 아랍인들과 거래했고 그들로부터 그 너머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조선은 17세기 중반 하멜이 표류하기 전까지 서양과 서양인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오직 주자학에 찌들어 소중화(小中華)에 매몰됐고 바깥 세상에 무지했다. 도자기법도 그 영향을 받아 화려하고 진취적이기보다는 내향적 내핍적으로 변했다.
조선 백자의 예술적 가치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제멋이 다 있다. 달항아리의 풍요한 선과 은백의 색감은 탁월하다. 하나 자기 기법의 수준, 색의 다양성과 신비감, 조형미에서 달항아리백자는 고려청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을 떠올려보라. 조선 사람들은 백자, 기껏해야 청자를 베낀 청화백자에 만족하며 정신승리를 한 것이다.
그 같은 정신승리가 오늘날 광주광역시에서 벌어져 온 게 드러났다. 복합쇼핑몰 논란이다. 윤석열 후보가 광주 유세에서 "광주 시민들이 복합쇼핑몰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민주당이 유치를 반대해왔다"며 "시민들이 원하는데 정치인들이 무슨 자격으로 쇼핑몰 하나 못 들어오게 막는가"라며 복합쇼핑몰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자 잠자던 민심에 불이 붙었다.
광주광역시는 다른 광역시에는 다 있는 스타필드, 이케아, 롯데몰 같은 복합쇼핑몰뿐 아니라 코스트코, 트레이더스 같은 대형 창고형할인매장이 없다. 신세계그룹 등이 복합쇼핑몰 건설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지역 상인회, 시민단체, 지역정치인과 지역 대변 중앙 정치인들이 나서서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이 후보는 2017년 대선 경선 때 "중소상인들의 밥그릇을 빼앗고 지역 상권을 초토화한다"며 반대했다.
윤 후보의 복합쇼핑몰 유치 발언은 광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소비자이자 주민의 편익은 아랑곳하지 않는 지역상인들과 일부 시민단체, 그리고 지역정치를 지배해온 민주당에 대한 원성으로 가득했다. 어이가 없다는 광주 시민과 타지인들의 댓글이 쏟아졌다. "쇼핑할 데가 없어 대전, 서울로 가는 걸 아느냐." "대한민국이에요? 아님 북한입니까? 광주시민들 대단하네요. 그러고 어떻게 살아들 오셨습니까. 하긴 잡힌 물고기에 떡밥 주는 낚시꾼 없잖아요." "무조건 민주당 찍어준 결과인데 누굴 탓하랴." "쇼핑몰이 없어야 영원한 약자, 피해자 코스프레 가능하니까…." "노년층도 모바일 쇼핑하는 판국에 대형쇼핑몰 없다고 구멍가게, 시골장터가 잘될 거 같냐? 광주사람은 문화생활도 하지 말라는 얘기냐. 그게 광주정신이냐?" "민주당은 조선시대식 5일장에서만 장을 보냐?" 여기에 민주당 선대위 소속 변호사가 '명품시계 찬다고 부자 된 거 아니지 않냐'며 광주시민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서 광주시민을 '가스라이팅' 하냐는 반발이 일었다.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려면 유통산업발전법 등 수많은 법규정에 맞춰야 한다. 지역 상인들과 상생방안 마련은 물론이다. 다른 지역은 다 되는데 왜 유독 광주만은 안 된 걸까. 이해가 맞아떨어진 지역상인, 시민단체, 토착 정치인들이 똘똘 뭉쳐 수는 많지만 조직화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전체 주민의 이익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색의 여론마당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없었다. 이런 게 착취적 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들은 복합쇼핑몰을 물건 사는 곳쯤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쇼핑은 일부다. 몰링은 현대 소비문화다. 광주 시민들은 지금껏 토착정치 카르텔의 정신승리에 의해 문화향유의 기회를 잃어왔다. 그들은 관념에 파묻혀 세련되고 쿨한 문물(文物)이 주는 헤도니즘(편안함과 쾌감)이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요소라는 것을 모른다. 고루한 현대판 조선 주자추종자들인 것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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