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장
![[DT현장] 유가 위기가 `제한적`이란 정부](http://contents.dt.co.kr/images/202202/2022021502102269781001[1].jpg "[DT현장] 유가 위기가 `제한적`이란 정부")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 부담 가중 가능성에도,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에도 같은 대답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두 나라에 대한 우리나라의 무역 의존도가 낮다는 이유로 실물경제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간략한 보도참고자료만 냈다.
정부는 수출입의 경우 대체선을 확보하면 되고, 에너지 수급도 비축물량이 충분하니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표면적으로는 그 말이 맞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對) 우크라이나 수출 규모는 6억 달러 수준으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러시아는100억 달러 선으로 우크라이나보다는 훨씬 크지만, 두 나라를 모두 합쳐도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미만이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공급망 상황을 고려하면, 이 같은 단순한 계산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 원유 수입량의 27%, 천연가스 수입량의 41%를 책임진다.
만약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지면 EU 발(發) 국제유가 상승은 불가피하다. 올 초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오는 7월까지 브렌트유가 120달러,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117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후 JP모건 등 주요 기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될 경우 1분기 내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대 EU 수출 비중은 10% 안팎이고, 특히 반도체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등 유망 수출품목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 각국이 자원을 무기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유럽발 전쟁 위기 역시 표면적으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지만, 속내에는 러시아와 서유럽을 잇는 천연가스 송유관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자원을 무기화하는 세계 각국의 움직임은 이제 대세가 됐다. 최근 인도네시아가 자국 수급 불균형을 이유로 석탄과 팜유 수출을 제한한 것이나, 호주가 중국 정부와의 갈등 때문에 석탄 수출을 제한한 것 등이 대표적 사례다.
세계 희토류 채굴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지난 2020년 12월 희토류를 포함한 특정 물품이나 기술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법인 수출통제법을 마련했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 '굴기'를 막기 위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것, 일본이 한국에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을 제한한 것 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경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경제 안보'의 시대가 확실히 다가왔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는 모든 상황이 다 불안요인이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경제외교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밖에 없다. 개발도상국의 자원개발에 참여를 하던가, 세계 최고 수준인 반도체와 배터리를 앞세워 자원외교를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문제도 이 참에 비합리적인 유류세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
이렇게 상황이 심상치않게 돌아가건만 정부는 계속 개별 사안에 대해서만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지금 글로벌 공급망 문제는 단순한 '개별 사안'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르는 지뢰밭과 같다. 집값을 잡겠다고 24번이나 정책을 냈을 만큼 적극적인 정부였다. 이제 와서 글로벌 공급망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진 않기를 바란다.
박정일 산업부장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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