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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 대통령이 野후보 때리다… 안전보장 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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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수사, 해야죠" 尹에 "분노"했다는 文
87체제후 초유의 대통령-야당 대선후보 충돌
미뤄둔 사법리스크 고려한 정권교체 저지인가
'내로남불'에 먹혀 대선 유불리 자체는 불분명
어쨌든 文에 빚진 李…패배 시 청산론 어디로
[한기호의 정치박박] 대통령이 野후보 때리다… 안전보장 묘수?
지난 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 초청 오찬 간담회에 참석, 인사말을 마친 뒤 마이크를 내려놓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한 획을 더 그으며 차기 대선판에서 영향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례적 임기말 40%대 지지율의 대통령이 제1야당 대선후보에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대통령과 야당 대선후보의 충돌은 '87 민주화' 이후 들어선 정권 중 초유의 사태라는 평가다. 대통령이 직접 '정권교체 저지 총력전'을 주도하는 건지, 다른 노림수가 있는지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기도 하다.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9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집권 시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건가'라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돼야죠"라며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느냐"고 호기로운 답변을 한 것이 사태의 시작이었다. 윤 후보는 자신감에 찬 듯 최측근 검사장의 최고위직 기용 여부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일제 독립운동하듯 수사한 사람'이라는 평가와 함께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이에 당일부터 당·청에서는 '정치보복 선언' '매우 불쾌하다' 등 메시지로 핏대를 세우며 전초전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틀째인 10일 느닷없이 문 대통령이 참전했다. 윤 후보를 특정해 "현 정부를 근거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 이 정부의 적폐가 있는데도 못 본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라며 답변을 요구한다고도 했다.

대통령의 공세에 윤 후보는 "저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면서도, "'우리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늘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사정을 강조해 왔다"며 "그런 면에서는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과 저와 똑같은 생각"이라고 대응하는 데 그쳤다. 일견 지난 2019년 7월25일 문 대통령이 자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면서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도 엄정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되친 듯하나,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을 연발한 모습에서 윤 후보가 '움찔'했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그저 기세 싸움일 수 있지만, 정치인들의 최대 동인(動因)인 유불리 측면에서는 명확히 읽히지 않는다. 문 대통령 쪽이 그렇다. 윤 후보의 경우 '반(反)이재명' 성향의 극성 친문(親문재인) 지지층을 고려한 듯 '민주당 정권'과 문 대통령을 분리 대응하던 노선을 잠시 일탈했다 황급히 수습하게 된 꼴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와 야권단일화에도 '빈말'만 던지다가 확장성만 불안해진 가운데, 침묵하던 문 대통령이 느닷없이 윤 후보를 1대1 결투장으로 불러세우면서 당황한 기색도 보인다.


문 대통령의 동인은 뭘까. 사법 리스크를 '미뤄 온' 입장에서, 정권교체 저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을 수 있다.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기관장들의 사표를 종용해 받아낸 '환경부 블랙리스트'만 해도 의혹 제기 3년여 만에야 현 정부 장관급 인사 첫 실형으로 귀결된 터다. 2018년 한국납세자연맹에서 문 대통령 부부의 의전·의상 등 비용 사용 내역을 밝히라는 정보공개 청구가 행정소송을 거쳐 최근 법원의 대통령비서실 특수활동비 내역 공개 명령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로 인한 '두려움'과 '조급함'이 작용했을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 후보의 말에 화난 것 아니냐'는 1차원적 평가도 나오지만, 승부사 기질을 지닌 문 대통령이 친문 지지층의 발걸음을 되돌리고 정치인들의 결속 계기를 만드는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화끈하게 도운' 것으로 보인다. 친문 주자였던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가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등판하며 '막판 원팀'을 연출한 것의 연장으로도 풀이된다. 마침 각종 커뮤니티나 SNS 상에서는 조국 전 법무장관마저도 내치고 반이재명 '외길'을 걷던 친문 네티즌들의 혼란상도 엿보인다.

그러나 이게 '승리의 열쇠'가 될지는 의문이다. 일단 만 5년도 지나지 않은 민주당의 무수한 '말'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지난 2016년 11~12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소추 추진과 함께 '조기 대선론'이 떠오를 때, 민주당 유력 잠룡으로서 "대통령은 범죄자이고 퇴진하는 것만이 진리" "가짜보수를 횃불로 불태워버리자" 공언한 인물이 문 대통령이다. 애초 적폐청산론의 주창자 격이기도 했다. 이 후보도 또 다른 잠룡으로서 적폐청산에 "재벌해체"를 얹을 만큼 선명성 경쟁에 몰두한 데다, 검찰총장감으로 국가정보원 댓글·국정농단 특검 수사 주역인 '검사 윤석열'을 지목했던 시기다. 문재인 정부 3개월차인 2017년 7월에는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보복'이라면 그런 정치보복은 맨날 해도 된다"고 했었다. 현재 어떤 말로 윤 후보를 규탄하든 '내로남불' 4글자에 갈수록 힘을 잃는 상황이다.

대선 승리가 고려 대상이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을까. 청와대는 10일 문 대통령이 윤 후보의 '적폐청산 발언 사과 요구' 이후에도 고위관계자를 통해 "이런 사안으로 대통령을 선거판으로 불러낸 것에 정말 유감"이라며 "선거 전략이라면 저열하고, 소신이라면 위험하다"고 질타했다. '저열, 위험' 이면에 윤 후보의 발언 진의가 '선거 전략인지, 소신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와중 이 후보는 '박스권 탈출'이 급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에게 큰 '빚'을 진 격이 됐지만,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지게 됐다. '무능한 복수자가 아니라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필요하다'는 변화구를 던진 것은 왜일까. 만일 여당 지위를 내려놓게 된다면 대표적 '적폐'이자 '청산'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느냐도 궁금해진다. 문 대통령이 '하필 이때' 나선 게 아니라 '이때라서' 나섰을 수 있지 않을까.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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