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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 전쟁` 승리는 진흙탕, 라스푸티차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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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 전쟁` 승리는 진흙탕, 라스푸티차 몫


우크라이나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전쟁이 언제 터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외신들은 2월과 3월 두 달을 주목하고 있다. 3월 말이면 우크라이나 땅이 온통 진흙탕로 변하는 '라스푸티차'(Rasputitsa)가 찾아오기 때문에 그 전에 러시아의 침공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즉 라스푸티차가 우크라이나에 있어 '최고의 방어수단'이란 얘기다.

◇치명적 병기 '라스푸티차'

라스푸티차는 러시아 말로 '진흙의 계절'이란 뜻이다. 겨울과 봄의 온도 차가 크고, 비가 많이 내리는 냉대 습윤 기후 지역에서 나타난다. 3월의 해빙기, 10월의 가을 장마 시기에 모습을 드러낸다. 봄과 가을에 한 번씩 발생한다. 봄이 되어 얼었던 흙이 녹으면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대지는 완전히 진흙탕이 된다. 가을 장마가 내리면 평원은 또 '진흙의 바다'로 변한다.

이런 라스푸티차는 적을 방어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모든 길이 진창으로 바뀌기 때문에 적군의 발이 모두 묶이기 때문이다. 몽골군을 물러나게 만들었고,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당했다. 라스푸티차는 '동(冬)장군'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몽골군 철수시킨 '진흙장군'

몽골 2대 칸 우구데이의 명령을 받은 바투와 수부타이는 1235년 유럽 원정길에 나섰다. 이듬해 볼가강 중류의 불가르 왕국, 킵차크초원의 패자(覇者) 킵차크족(쿠만족)을 정복했다. 다음은 여러 개의 공국으로 분열돼 있던 러시아 차례였다. 몽골군은 공국 중 가장 강력했던 블라디미르 공국을 무너뜨렸고, 이어 가장 부유했던 노브고로드 공국을 공격했다. 몽골군은 노브고로드를 향하던 중에 '토르초크'라는 조그마한 도시를 지나게 되었다. 몽골군은 토르초크 쯤이야 쉽게 점령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토르초크 주민들이 죽기 살기로 방어하면서 함락에 두 달이 걸렸다.

그 사이 계절은 봄으로 접어들었다. 봄과 함께 라스푸티차도 왔다. 얼었던 대지가 진창으로 변했고, 쌓였던 눈은 녹아 하천으로 유입되어 격류(激流)를 만들었다. 말들이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몽골군의 기동은 정지됐다. 몽골군은 노브고로드의 진흙탕과 범람하는 하천 사이에서 갇히면 포위당해 전멸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말 머리를 돌려 철수했다. 노브고로드는 살아났다.

사실 몽골군에겐 러시아의 '동장군'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몽골의 겨울이 러시아보다 훨씬 추웠기 때문에 러시아의 겨울은 위협이 아니었다. 진짜 위협은 '진흙장군'이었다.

◇나폴레옹도 당했다


나폴레옹의 60만 대군은 1812년 6월 여름에 모스크바를 향해 출발했다. 광대한 벌판을 가로질러 동진했다. 곧바로 어려움이 닥쳤다. 수시로 비가 내리면서 벌판이 진흙탕으로 변했다. 마차와 대포는 진흙 속에 빠졌다. 길이 수렁으로 변하면서 진격에 애를 먹었고 보급과 수송도 지연되기 시작했다. 진흙탕 물을 먹다보니 수인성 전염병까지 돌았다. 병사와 말이 죽어나갔다.
나폴레옹은 진흙이 큰 장애가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만 점령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해 9월, 나폴레옹은 간신히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하지만 도시는 텅 비어 있었고, 게다가 불타고 있었다. 굶주린 프랑스군은 개, 고양이를 잡아먹기 위해 시내를 온종일 돌아다녔다. 이어 엄청난 추위가 닥쳤다.

프랑스군은 여름과 가을 모스크바를 향해 강행군하면서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군과 전투 한 번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이미 전투 병력의 절반 가까이가 소실된 상태였다. 나폴레옹의 패인을 따져보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진흙'이 주요한 패배 원인임이 드러난다.

◇독일군을 가둬버린 '늪'

라스푸티차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독소전쟁이다.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독일군의 전격전에 소련군은 4개월 남짓 동안 일방적으로 밀렸다. 독일군은 9월 2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점령했고, 여세를 몰아 소련의 심장부인 모스크바로 진격했다. 10월 2일 독일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 전투의 서막을 올렸다. 소련군의 피해는 극심했다. 히틀러의 공보 담당인 오토 디트리히는 외신기자들을 불러놓고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꼴이 됐다.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10월 중순부터 가을비가 내리면서 온 땅이 '진흙의 늪'이 되어버린 것이다. 독일이 자랑하는 기갑사단은 멈춰섰다. 탱크와 대포는 물론이고 보급트럭도 진창에 빠져 꼼짝할 수 없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탕에서 발을 빼면 군화가 발에서 쏙 빠졌다. 많은 독일군이 군화를 잃어버렸다. 병사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는데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독일군은 보급에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몽골군을 철수시켰고 나폴레옹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겼던 라스푸티차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래도 독일군은 필사적으로 전진했으나 결국 10월 말 진격은 저지됐다. 스탈린은 크렘린을 사수하기로 결심했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져있을 때 겨울이 시작됐다. 11월에 이미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전세는 소련군에게 유리해지고 있었다.

이렇듯 라스푸티차는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쟁의 양상을 바꿔버리면서 적에게 대재앙을 내렸다. 러시아에 이런 말이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쓸모가 없는 세 가지는 추운 날씨, 라스푸티차, 러시아 남자다." 그렇다면 러시아에서 전쟁이 나면 가장 쓸모가 있는 세 가지는 무엇일까. 추운 날씨, 라스푸티차, 러시아 남자다. 이번에는 러시아가 라스푸티차로 발목을 잡힐 판국이 됐다. 부메랑이 된 라스푸티차, 역사의 아이러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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