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문화집기] 오징어게임·BTS·임영웅 `정점 한류`](http://contents.dt.co.kr/images/202112/2021122202102269660002[1].jpg "[하재근의 문화집기] 오징어게임·BTS·임영웅 `정점 한류`")
90년대에 '사랑이 뭐길래'부터 한류 열풍이 시작됐고, 그후 드라마가 가요와 더불어 한류의 양대 축이었다. 2000년대엔 '겨울연가', '대장금' 등이 잇따라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며 우리를 놀라게 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사랑의 불시착', '킹덤' 등이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높여왔다.
올해 옥스퍼드 영어사전 측에서 한국 단어 26개를 한꺼번에 추가했는데 여기에 한류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번에 추가된 단어 중에 '치맥'이 있는데 이 단어는 "맥주와 영어 단어에서 빌려온 튀긴 닭을 뜻하는 치킨의 합성어. 프라이드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K-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한국 밖에서 대중화됐다"라고 풀이됐다. 우리 드라마에서 비롯된 현상이 영국 영어사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렇게 인기를 모아온 한국드라마가 마침내 올해 '오징어 게임'이라는 세계 최대 히트작을 배출하며 정점에 섰다. 골든글로브는 '오징어 게임'을 TV 시리즈 부문 작품상 후보로 지명했다. 비영어권 작품이 골든글로브 TV 작품상 후보에 오른 건 사상 최초다.
미국 NBC는 "지난해 '기생충'으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정점을 찍는 듯했으나 올해 '오징어 게임'으로 위상이 더 올라갔다"며 "한국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오징어 게임' 이후 '마이 네임', '지옥' 등이 잇따라 히트하며 한때 넷플릭스 세계 순위에서 한국 드라마 4편이 동시에 10위권에 진입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90년대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시도할 때만 해도 한국 문화가 일본 문화에 잠식될 거란 우려가 컸다. 하지만 현 시점에 일본 대중문화의 위상은 한국 대중문화와 비교조차 안 될 지경이다.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 중에서 마지막까지 영향력을 유지한 것이 만화와 만화영화였는데 요즘은 만화시장에서도 한국 웹툰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드라마와 더불어 한류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한 가요계에서도 세계 최고의 스타가 나타났다. 바로 방탄소년단이다. 올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3관왕에 올랐는데, 그 안에 대상이 포함됐다. 한국 가수가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 중 하나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대상 수상은 모든 팝스타들을 제쳤다는 뜻이고 이건 방탄소년단이 최고의 아이돌에서 최고의 팝스타로 격상됐다는 걸 의미한다.
방탄소년단은 연말에 미국 LA의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4회에 걸친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경기장은 2028년 LA올림픽 개막식이 예정된 곳이다. 올림픽 주경기장급이란 얘기다.
팝의 심장부에서 그런 대형경기장을 무려 4회에 걸쳐 연속 매진시키며 올해 한 장소에서 개최된 단독 콘서트로는 세계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블랙핑크도 세계 최고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하며 한국 가요계의 위상이 사상 최고 수준에 올랐다.
이렇게 한국 드라마와 가요가 초대형 히트를 기록하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측이 "한국 스타일은 이제 쿨함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한민족 역사상 우리 문화가 이렇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안 그래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컸었는데 올해 나타난 한류의 성과로 인해 그런 자부심도 정점에 달했다.
국내에선 임영웅 신드롬이 거세게 일어났다.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가 올해 국내 유튜브 사용자들의 최다 시청 뮤직비디오 1위, 지니 올해의 노래 1위에 올랐고, 연말엔 KBS에서 임영웅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큰 화제를 모았다. 10월과 11월에 연속으로 임영웅이 국내 스타 브랜드 평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과거 같았으면 해외에서 인정받은 스타가 무조건 국내에서도 압도적인 스타가 됐을 것이다.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 인정욕구가 컸기 때문에 서구인의 인정에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인기와 별개로 우리만의 취향을 향유할 정도로 문화적으로 성숙했고 자신감도 커졌다.
방탄소년단과 임영웅 신드롬이 공존하는, 보다 풍성하고 다변화된 시장이 된 것이다. 다만 저예산, 인디, 지역, 기층문화가 여전히 빈약하다는 점이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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