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한국전쟁때 美폭격으로 단절… 그대로 보존 후 관광코스로 유명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中 랴오닝성 동부에 위치한 '단둥'
1965년 1월 마오쩌둥 정부가 개명
한반도 진입하는 中의 교두보 역할
애국지사들 항일투쟁에 헌신한 곳
신의주~단둥 철교 1911년에 개통
유럽까지 잇는 국제철도노선 연결
현재 콘크리트 기둥 일부만 남아
70여m 상류에 '조중우의교' 연결
단둥 사람, 국경 너머 북한과 교류
북·중 양국 국가 차원서 관리 안해
한반도와 오랜 역사·문화 맥 공유
\생각만으로도 애잔한 느낌 들어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한국전쟁때 美폭격으로 단절… 그대로 보존 후 관광코스로 유명
한반도(신의주)와 중국 동북지방(단둥)을 연결하는 관문으로서 압록강을 사이에 둔 한·중 국경의 명물 '압록강단교'. 일러스트 윤소영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한국전쟁때 美폭격으로 단절… 그대로 보존 후 관광코스로 유명
정보은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⑦세계문화유산으로 만나는 중국 - 단둥 '압록강단교'의 슬픔과 미래(2)


'동방을 붉게 물들이는 도시'라는 뜻의 단둥(丹東)은 중국 랴오닝성 동부에 위치한 인구 약 245만명(2015년 기준)의 국경 도시이다. 북한과 접경하고 있어 지정학적 중요성이 큰 도시이고 한국인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공간이다.

단동의 옛 이름은 중국 동부지역을 평안하게 다스린다는 의미의 안동(安東)이었다. 단동은 고구려 영토였으나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의 안동도호부 관할에 있다가 발해의 영역으로 포함되었다. 금·원 시기에는 파속부로(婆速府路)에 속하였고,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하고 이주 금지의 무인 공간지대인 봉금지대를 설정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다.

공동기획

한국외국어대학교 HK+ 국가전략사업단

디지털타임스




봉금령이 해제된 이후 1876년에 안동현(安東縣)이 설치되었으며, 1903년에 대외개방 항(港)이 되었다. 1931년에는 만주사변으로 인해 일본군에게 점령 당했고,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진출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1934년에는 만주국에 의해 안동성(安東省) 안동현(安東縣)이 되었고, 1965년 1월 마오쩌둥 정부는 문화대혁명의 기운을 담아 이 도시의 이름을 동방을 붉게 물들이는 최전선의 도시, '혁명의 수출기지'라는 뜻을 담아 단둥(丹東)으로 바꾸었고 현재까지 이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 랴오닝성의 동부 국경지대에 위치한 단둥은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접경하며, 황해로 나가는 단둥항을 보유하고 있다. 철도로 평양에서 약 220㎞, 서울에서는 약 420㎞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반도에서 육로 접근성이 가능한 지역이다. 그리고 북한과의 지리적 접근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단둥은 한반도로 진입하는 중국 측 교두보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중국의 단둥과 북한의 신의주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눈으로 직접 확인 가능할 정도로 가깝게 마주 보며 위치하고 있다.

랴오닝성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단둥은 동북아경제권, 환발해권, 황해 경제권의 중심에 위치하는 지정학적 특성을 가진다. 산업·항만·물류·관광 중심도시로서 방직공업, 전자공업, 농산물이 특히 유명하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중국이 북한의 후방을 지원하는 병참기지로 단동이 적극 활용되었다. 단동은 압록강에서 흘러내린 뗏목이 운집한 곳이어서 '동북의 소주, 항주'라고도 불린다. 1911년 개통된 북한과 중국의 국경 다리인 압록강단교는 1950년과 1951년 두 번에 걸쳐 미군의 공습을 받아 교량이 단절되었다. 단동-신의주로 연결되는 철교는 현재 강 중심에서 신의주 쪽으로 콘크리트 기둥만 남아있다. 그러나 중국은 전쟁에 원조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하여 압록강 유람선과 더불어 단둥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코스를 만들어 냈다.

1909년 일본 제국은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둥으로 연결되는 압록강 철교(압록강 단교)를 착공하였다. 철교는 1911년 준공되었고, 한반도에서 중국의 만주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국제 철도 노선이 연결되었다. 한국전쟁 중 1950년 11월 8일 유엔군의 폭격으로 교량의 중앙부에서 북한 측까지가 파괴되어 단교가 되어 현재까지 역사 유산으로서 잊혀져서는 안되는 슬프지만, 기억되길 원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고스란히 남아져 있고 이 다리의 바로 상류에 1943년 완공된 압록강의 두 번째 다리(압록강 철교)가 현재는 중국 측 이름인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라고 명명되어 이용되고 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중국은 오랜 세월을 갈등과 대립, 화해와 공존, 교류를 거듭해왔다. 역사적으로 또 시대적으로 다양한 지점에서 서로 얽혀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애국지사가 압록강을 건너 단둥을 거쳐 항일투쟁에 헌신했다. 중국의 국경 도시 중 가장 큰 도시인 단둥은 최근엔 북한과의 교역·교류의 중심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북한 중국 간 교역품의 운송은 1943년 복선으로 개설된 압록강철교(944m)를 통하고 있다. 또한 단둥은 북한과 중국 대륙을 잇는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의 첫 구간(AH1)의 중국 내 출발지이기도 하다. 압록강 하구인 황금평일대에 건설한 왕복 8차선의 신압록강대교(3030m)는 황금평 특구개발사업 등 북·중 개혁개방과 경제협력의 상징적인 모델로서 '아시안하이웨이'의 경로가 된다.
중국 정부는 단교를 관광 자원화하면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관광객들은 저마다 입장료를 내고 철교가 끊어진 곳까지 오가면서 북한과 중국 양쪽을 감상한다. 단교 끝에 서면 신의주는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단교 아래로 압록강은 무심히 하염없이 흘러 간다. 밤이 되면 압록강단교는 한낮의 칙칙한 철제 교각 보이지 않고 다리 전체가 빨강, 파랑 등 일정한 간격을 두고 화려한 조명을 입고 환상적으로 변한다.

압록강단교가 있는 공간은 노점상뿐만 아니라 식당 등 다양한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어떤 가게 안에는 태극기와 인공기, 중국의 오성홍기가 함께 보이기도 한다. 가게에서는 북한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매우 밝고 익숙하게 한국인을 포함한 관광객들을 응대한다. 한국과 북한, 중국 삼국이 서로 공존하는 무대가 바로 단둥이었다.

압록강단교를 대신하여 70여m 정도 상류에 위치한 조중우의교는 단동에서 북한 신의주와 연결된다. 철도와 자동차, 사람이 이 다리를 통해 북·중 무역이 이뤄진다. 단둥은 북한을 관광하려는 사람들의 집결지다. 한국인만 제외하고 중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관광객들도 단둥을 통해 북한 관광에 나선다.

조중우의교를 통해 관광차량과 화물차량의 행렬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유엔의 대북제재가 있지만 조중우의교를 통한 북한과의 교류는 여전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왕복 8차선 신압록강대교는 북한 쪽 연결 부분이 마무리되지 않아 현재까지 개통되지 않고 있지만 중단됐던 압록강 하류 황금평 경제개발구의 추진이 가시화되면서 단둥은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경의 강, 압록강은 단절과 경계보다는 무심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람과 물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유유히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멈추지 않듯 역사의 흐름도 멈추지 않는다. 압록강 하류 단둥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결코 북-중간의 관계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곧 남북교류와 한반도의 미래가 될 수 있음으로 그 변화의 흐름을 잘 살피면서 교류협력의 미래를 구상해야 할 것이다.

랴오닝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랴오닝성 정부는 '랴오닝 일대일로 종합실험구 건설 총체 방안' 전문에서 "단둥을 관문으로 한반도 내륙으로 연결 한다" 고 명시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인프라 투자 등을 통한 중국의 해외 경제영토 확장)가 한반도로 확장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단동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보도이다. 랴오닝성 정부는 이 문건에서 단둥∼평양∼서울∼부산을 철도와 도로, 통신망으로 상호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일대일로를 태평양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부산까지 뻗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 신의주와 단둥 사이 압록강의 섬 황금평에 있는 북-중 경제구, 단둥의 북-중 호시(互市)무역구를 단둥 내 중점 개발 개방 실험구와 함께 대북 경제협력의 중요한 지지대로 만들겠다고도 명시했다. 중앙정부가 적절한 시기에 단둥 특구를 건설하도록 노력하고 랴오닝성 선양, 다롄, 단둥 공항과 북한 및 러시아 극동 도시 간 항공편 운항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단둥 호시무역구를 국가 간 온라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지원한다는 계획도 공개해 북-중 간 전자상거래가 현실화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일대일로를 한반도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은 랴오닝성을 허브로 하고 중국 한국 북한 일본 러시아 몽골이 협력하는 '동북아경제회랑'건설과 함께 추진된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 개발을 랴오닝성을 중심으로 중국이 주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를 위해 랴 오닝성 정부는 단둥∼훈춘∼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되는 철도 건설과 단둥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연결되는 해상 통로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횡으로는 북-중 접경지역을 따라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고, 종으로는 중국과 한반도를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의 동북아 관문의 지위가 두드러지는 시기를 2030년으로 명시하므로 2030년까지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단둥은 랴오닝성 연해 지역 대외개방전략인 '5점 1선(五點一線)'의 구성 지역으로, 랴오닝성의 대외 개방을 담당할 창구로서 그 위상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연설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와 대비시킨 '동북아경제권'을 주창하여 이 지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단둥에는 대다수의 중국인(한족)외에 교역과 취업 등의 경제활동을 위해 거주하는 조선족, 한국인, 북한 사람, 북한 화교 등 여러 부류의 민족 집단이 공존한다. 이들은 북·중 국경 조약의 특징에 근거하여 압록강을 공유한다. 단둥과 신의주 사이에는 양 국가의 국경이 있고, 양쪽의 강변에 서서 대화를 할 수 없는 압록강의 강폭이 존재 하지만 그들은 서로 만나고 또 교류하고 있다. 단둥 사람과 신의주 사람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압록강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들에게 압록강은 양 국가를 연결하는 경제적 삶의 수단이 되고 있다. 단둥 사람의 삶의 영역이 국경으로 제한 당하거나 단절되기 보다는 국경 너머의 북한 사람과 교류하고 공유한다.

한편 단둥 사람은 압록강이 조·중 공동수역이기 때문에 홍수가 날 경우 강의 폭이 넓어지는 현상을 빗대어 "압록강에는 국경이 없다."라고 말한다. 압록강은 비록 국경이지만, 교류를 방해하는 국경의 의미는 희박하다. 압록강은 양 국가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공유 지역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단둥과 신의주에는 국경이 있지만, 국경이라는 존재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 제약으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단둥 사람은 북·중 국경을 "국가 간에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선' 일뿐이다. 우리는 이웃과 친구로 지낸다."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이러한 일상적인 교류에 대해서, 북한과 중국 양쪽 모두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하지는 않았다. 국가의 시선으로 보면, 그들의 만남과 교류는 비공식적 혹은 불법의 잣대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만남과 교류는 국가의 잣대를 떠난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다.

한반도와 오랜 역사와 문화의 맥을 함께하고 있고 생각만으로 애잔한 공간이 단둥이다. 이곳의 '랴오닝 일대일로 종합실험구 건설 총체 방안'에서 "단둥을 관문으로 한반도 내륙으로 연결 한다"는 정책이 단둥의 장밋빛 미래가 될지 아니면 혼돈의 시간과 공간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