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기술패권시대 과기자문회의 중요성

송민령 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KAIST 뇌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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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0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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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기술패권시대 과기자문회의 중요성
송민령 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KAIST 뇌공학박사

역사 시간에 배운 뮌헨 회담, 베르사유 조약 등의 국가 조약은 영토 분쟁이 관련되어 있었고 그래서인지 회담장에는 종종 군인들이 동석했다. 지난 한미정상회담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핵심의제는 영토분쟁이 아닌 반도체, 백신, 전기차, 배터리 등으로 과학기술과 관련이 깊었다. 군인 대신 기업인들이 동행했으며 우리 기업의 기술력이 협상의 주요 레버리지가 되었다. 과학기술이 국력의 핵심 요소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할수록 과학기술 현장 밖의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이해하기는 어려워졌다. 대부분이 정치, 경제, 행정 전문가인 정책가들만으로는 국가가 어느 과기 분야에 얼마나 투자해야할지, 과기 현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판단하기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현장 과기인들이 직접 정책을 만들기도 어렵다. 과기인들도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정책수단에 대해서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들은 과기 자문을 위한 기구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있다. 1987년 제 9차 헌법 개정을 통해 설립의 초석이 놓인 뒤 1991년에 상설기구로 발족했으니 올해로 출범한 지 꼭 30년이 됐다. 여러 부처에서 다양한 자문기구가 운영되고 있지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함께 헌법이 정한 몇 안 되는 대통령 직속 정책자문 기구다.

과기자문회의는 대통령에 따라 축소되거나 확대되는 등 변화를 겪었지만 과학기술의 중장기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등 활동을 계속해왔다. 출범 초기에는 경제 성장기에 맞게 경제발전과 관련된 기술 이슈의 비중이 컸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국제화 트렌드에 맞춰 국제 협력 이슈가 다수 논의됐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정보화와 냉전 체제의 붕괴,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의 약진 속에 과학기술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과학기술처가 과기부로 승격됐다. 과학기술 정책 종합 조정 체계도 이 때부터 마련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과기부의 위상이 부총리급으로 격상되는 한편 지식재산, 과기인력, 산학연 등의 이슈가 부각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제조업 위기에 맞서 혁신을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에 주목했다. 박근혜 정부 동안에는 과학기술을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바이오 산업을 비롯한 신산업 이슈의 비중이 높았다.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서는 그 전까지 분산되어 있던 심의·조정 기능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일원화하면서 정책·예산심의·대통령자문 기능을 통합한 과학기술 '플래닝타워'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같은 통합은 부처간 장벽을 넘어 범부처 협의를 이끌어내기에 유리하다.

필자는 2019년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년과학기술인 지원을 위한 자문안을 냈다. 현장에서 공무원들을 볼 때는 답답함이 컸는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보니 이전에 생각한 해결책이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현장에서 종종 요구하는 강한 처벌은 학과별, 대학별, 대상별 특색과 이해관계가 너무 달라 제도로 도입하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예산을 할당해서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과도한 저항을 피하면서도 작은 변화나마 이끌어갈 수 있었다.

정책 자료에 쓰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를 대통령 자문에 맞는 국가 스케일로 재구성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지원단과 다른 자문위원들 및 현장 청년과기인의 지지 덕분에 자문안을 낼 수 있었다. 과학잡지 '사이언스'를 만드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는 과기 분야 박사들에게 과기 정책을 체험하는 펠로우십을 운영하는데 왜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국제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탄소중립, 감염병대응, 고령화대응 등을 위한 대전환이 요구되면서 한동안 줄었던 국가주도 연구개발의 필요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 30년 간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을 고심하며 이제 '과학기술 플래닝타워'가 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앞으로도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 애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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