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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 조롱같은 추모…`독재자`마저 선택적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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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넘도록 '전두환·노태우' 뜨거운 감자로
盧 서거에 與 "역사의 죄인" 野 "과오 못 덮어"
여권, 盧 국가장 결정해놓고 혼선 노출도
"功過 평가도 말라" 이중잣대 全 논란 여파
'北 독재자·전범에 서거 표현' 기준은 뭐였나
[한기호의 정치박박] 조롱같은 추모…`독재자`마저 선택적 분노?
제20대 국회 시절이던 지난 2016년 6월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대상 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송영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당대표)이 유일호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이끌어낼 방안이 남북관계 해결 말고는 이제 없다"며 "부총리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이 경제를 모르니까 서석준, 김재익 같은 제대로 된 경제관료를 세워서 일을 시켰다"고 말한 대목이 실려 있다.국회 회의록 갈무리

뜻하지 않게 지난 열흘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1979년 12월12일 신군부 군사쿠데타를 주도하고 그 5달 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계엄군 유혈진압 원죄를 안아 온 두 인물이다. 거액 비자금 조성 혐의까지 아울러 1995년 구속과 재판을 거쳐 각각 무기징역·중형이 확정됐으나 1997년 제15대 대선후보들의 사면론 주도와 12월22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사면 조치로 풀려난 뒤 전직 대통령 예우조치도 박탈된 채 정계의 뒷편으로 퇴장했었다. 그런데 약 24년 만인 요즘 정치권은 새삼스럽게 '독재자' 규탄에 열띤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제3자들끼리 역사적 공과(功過)를 논할 자격을 재단하는 모습마저 보여 위화감이 적지 않다.

최근 사례부터 들자면 20년간 칩거와 와병생활을 이어온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지난 26일 오후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여권의 반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용빈 대변인 브리핑 첫머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영욕(영예와 치욕)'의 삶을 내려놓고 오늘(26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했다. 뒤이은 문장에선 "노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진압에 가담한 '역사의 죄인'이다"며 "부족한 정통성을 공안통치와 3당 야합으로 벗어나고자 했던 독재자"라고 규정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브리핑 제목과 부합하는 문장 구성인지 의문이 들었다.

"다만 재임 기간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중국 수교 수립 등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부 평가가 뒤따랐지만, 문재인 정권과 여당의 관심사인 대북·대중 교류에 한정된 것으로 읽힌다. 이튿날(27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葬) 발표 총대를 맨 뒤 청와대가 전한 문재인 대통령 입장도 여당 입장에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평가 사례로 더한 수준이었다.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등 국제스포츠대회에 북한 수뇌부와의 접촉·교류 기회 등 의미를 부여해온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대북 입장을 고려했을 것이고, 대선 국면에서 '국민 통합'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권의 추모는 한층 희한하게 흘러갔다. 김 총리는 국가장 발표 당시 "국민들과 함께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으나,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노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뒤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코 그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진 못할 거다"고도 했다. 5·18 단체와 범여(汎與) 좌파정당들에선 청와대의 국가장 결정 비판이 잇따랐고, 민주당 지역 정가에서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용섭 광주시장과 광주시의회 김용집 의장은 정부 결정을 수용한다면서도 "5월 영령과 광주시민의 뜻을 받들어 국기의 조기 게양과 분향소 설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철희 정무수석이 28일 "본인(노 전 대통령)이 '용서를 구한다'는 유언도 남겼고 유족들이 그동안 5·18을 찾아 사과 하는 모습도 보였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국가장이나 국립묘지 안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불 끄기에 나섰다. 전 전 대통령이 거론된 것은 그가 노 전 대통령과 60년 지기·육사 동기이자 쿠데타 주역으로서 나란히 심판 받은 전력도 있겠지만, 지난 19일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문가에 권한 위임하는 정치'를 강조한다며 "군사쿠데타와 5·18 잘못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분들이 많다"는 평가를 내놔 일으킨 논란의 영향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26일 노 전 대통령 서거 계기 첫 논평에 "고인은 후보 시절인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였고, 그리하여 직선제 하에서 대통령에 선출됐다"면서도 "민간인 학살 개입 등의 과오(過誤)는 어떠한 이유로도 덮어질 수 없다"고 강조한 것도 맥락상 정치적 고려와 무관치 않다.

'전두환 논란'으로 시점을 다소 돌이키자면 광주 5·18의 정치적 종주권을 앞세워 온 민주당 진영에선 송영길 당대표가 윤 전 총장에 전체주의 독재 전형인 히틀러와 스탈린, 친일파 이완용을 투영시키는 등 거센 비판을 보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윤 전 총장의 광주 방문 사과 예고에 "정치쇼 무대로 내 줄 생각이 없다"고 벽을 쳤다. 야권 내 동조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국민의힘 대권경쟁자 중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천박한 인식'이라고 논했고,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의 경우 한술 더 떠 "어디 전두환이 공과를 평가할 인물이냐"며 대선 하차를 요구했다. 야당 대변인 일원은 "전두환은 대통령이라기보단 그냥 범죄자"라고 거들기도 했다. 이런 공세들에 되새겨보고 싶은 몇몇 장면이 있다.


5년 전인 2016년 6월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속기록을 보면 송 대표는 당시 야당 의원으로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경제를 모르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끌려다니는 경제부처가 돼선 대한민국 경제회복의 기미를 찾기 어렵다"며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이 경제를 모르니까 서석준(경제부총리), 김재익(경제수석) 같은 제대로 된 경제관료를 세워서 일을 시켰다"고 추어올린 바 있다. 이 시장은 지난 2018년 광주시장 선거국면 여권 내에서 떠오른 '전두환 청와대' 사정수석비서실 근무 경력 논란을 털지 못한 인물이다. 원 전 지사는 2007년 1월 한나라당 대선주자로서 구속에서 풀려난 지 만 10년도 안 된 전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올렸었다.
홍 의원은 2017년 자유한국당의 대선 패배 직후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국면이던 6월28일 경북에서 "주사파 정권이 가장 상징적인 지역으로 내년 대구시장을 뺏으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며 "제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의 '뒤를 잇는' 대구·경북(TK)의 희망이 되겠다"고 연설했다. 유 전 의원은 2004년 10월7일자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노무현 정부의 이헌재 경제부총리에게 소신 행정을 요구하며 "전두환 대통령은 자기가 경제 모르고 무식하니까 경제는 김재익한테 맡겨서 80년대 안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덕택에 우리가 80년대를 먹고 살았다. 그것은 좌파든 우파든 부인 못하는 사실"이라고 단언한 것으로 나온다.

노 전 대통령 추모 정국에 떠오르는 장면도 있다. 지난 2011년 12월29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선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사(急死) 소식이 전해졌을 때 정치권·언론에서 불거진 '김정일 서거' 표현 논란이다. 민주당 전신인 민주통합당은 당일 긴급 최고위원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急逝)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입장'을 내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에 조의를 표한다"고 했다. 급서는 '갑자기 서거(逝去)했다'는 사실상 높임말이다. 민주당은 또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에 북한사회의 안정과 한반도 평화 조성 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한다"며 "남북기본합의서와 6·15 공동선언, 10·4선언의 정신과 취지"를 강조했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6·25 남침의 전범(戰犯)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북한 김일성 주석의 직계 독재자, 천안함·연평도 가해세력 대한 과(過)는 한줄도 들어가지 않았다. 모호한 '정치적 입장'과 '남북 간 특수관계'를 앞세우면 독재자, 범죄자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는 게 정상일까. 단죄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일관된 기준부터 세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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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2월19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에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은 긴급최고위원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에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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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8일 서울광장에 고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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