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일상적 영역 문화유산 부재… 빈약한 `국가 문화` 내실 다져야

조선, 해상무역 등 전략 구사 안해
국제 정세서 큰 존재감 못 드러내
한반도, 고립된 지리적 조건 유지
외부집단 교류없어 사고방식도 정체
韓, BTS·오징어 게임 인기에 취해
문화적 저변 문제 고민 깊이 못해
일상으로부터 문제 해답 제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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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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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일상적 영역 문화유산 부재… 빈약한 `국가 문화` 내실 다져야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과 그녀의 저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 수록된 삽화 (출처: 위키피디아)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일상적 영역 문화유산 부재… 빈약한 `국가 문화` 내실 다져야
서울 이문동 골목 커피집에 붙은 '일상'이라는 문구. 현대적 삶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젊은 세대들의 '소확행'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인테리어다. (필자 촬영)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일상적 영역 문화유산 부재… 빈약한 `국가 문화` 내실 다져야
윤지환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⑥ 북방 이해를 위한 지리적 사고 - 북방과의 연결성 회복(8)


문화로 세계인을 기쁘게 하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소망은 사실 필자에게는 역사 속 인물의 공허한 메아리로 여겨졌다. 십수 년 전만 해도 필자는 우리의 가요와 영화를 우물 안 개구리의 수준으로 여겨왔지만 이제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발전과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에 남아있는 세계시민 의식의 결여는 한국인의 잠재력과 역량을 꽃피우는 과정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적 개방성과 포용적 의식을 함양하는 일은 한반도의 고립된 지리적 토양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부터 이뤄져야 한다.

공동기획

한국외국어대학교 HK+ 국가전략사업단

디지털타임스




◇북방으로 올라간 조선인

국체가 지속된 500년간 조선은 국제 정세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동북아시아의 두 이웃인 중국과 일본에 비교했을 때 조선의 경제력과 사회문화적 영향력은 미미했다. 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일단 국토의 크기와 기후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전통사회에서 한반도의 농업생산력은 주변국들보다 턱없이 낮았다. 이에 따라 인구 규모도 중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본과 비교해도 절반에서 1/3가량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보통 이렇게 작은 규모의 국가가 생존을 위해 취하는 전략은 크게 외교적 수완과 지리적 조건의 활용, 그리고 무역을 통한 경제성장 등이 거론된다. 알프스라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무기로 세계대전 중 중립국 지위를 유지했던 스위스나 해상무역을 통해 열강의 반열에 진입했던 네덜란드는 주변의 강대국들 틈에서 효율적인 정책을 구사했던 국가들로 꼽힌다. 개인적으로 평가했을 때 조선은 앞서 언급했던 세 가지 중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전략을 구사하지 않았다. 그나마 내세울 만한 중국과의 조공 관계는 그 당시 대륙과 인접한 국가라면 보편적으로 선택했던 지정학적 안전망으로서 조선만의 독특하고 기발한 외교 정책은 아니었다.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를 지배했던 성리학적 세계관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시각을 배제함으로써 조선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역동성을 훼손했다.

사농공상에 기반한 성리학적 계급관계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통한 사유재산 축적과 조선 사회의 기술 발전을 저해했다. 원천적으로 잉여 산물의 축적이 봉쇄된 조선 사회는 자연재해와 기근에 취약했다. 17세기 소빙하기로 인해 도래한 경신대기근은 당시 조선의 1,200만 인구 중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아사하거나 전염병으로 죽는 등 이웃 중국과 일본보다 궤멸적인 인명 피해를 불러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선 정부는 청나라 및 주변국으로부터의 곡물 수입을 망설이는 등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일반 백성은 물론이고 한양의 사대부들과 궁궐의 왕족마저 극심한 식량 부족과 전염병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7세기의 기근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는 결국 대규모의 유랑민을 발생시켰으며 이들 중 일부가 만주 등 북방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청나라와의 국경 분쟁을 불러일으켰다. 기상이변과 기근, 그리고 국가적 역량의 부족으로부터 시작된 백성들의 떠돌이 생활은 결국 민간에 의한 북방 개척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비록 19세기 청나라와의 간도문제를 촉발한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조선인들의 개척 정신은 대단했다. 본질적으로 열대작물인 벼를 추운 북방 지역에 재배하는 시도는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었으나 조선인들은 필사적인 개간 노력을 통해 벼농사에 성공했다. 청나라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았던 토지를 중심으로 경작지를 넓혀갔던 조선인들은 조선 정부로부터의 간섭과 계급 제도로부터 자유로웠다. 이는 자유로운 잉여 작물의 산출과 사유재산 축적으로 이어졌으며 북방의 조선인은 한반도에 남은 조선인들과는 사뭇 다른 삶의 태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만주와 한반도의 조선인 사이에서 발견됐던 근면함과 주체성의 차이에 놀라워했다. 비숍이 목격했던 조선의 백성들은 아침 일찍 농사 일과를 끝내면 해가 질 때까지 낮잠이나 잡담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반면 만주의 조선인은 종일 이어진 근면한 노동을 통해 재산을 축적했으며 부농 집단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으로 비숍은 조선을 지배한 성리학적 계급관계와 부패한 탐관오리의 수탈을 꼽았다. 제도적 관습과 유교적 검소함의 강제로 인해 사유재산의 축적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던 조선의 산업 생태계는 구조적으로 침체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성리학적 질서와 관습적 병폐로부터 자유로웠던 만주 지역에서 조선인은 생전 처음 재산 축적의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으며 이는 한반도에 팽배했던 노예근성을 근절하고 주체적 삶의 의지를 발휘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폐쇄적 지리가 불러온 원리주의적 병폐

조선 시대에 이어 여전히 한반도는 북한이라는 폐쇄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 집단으로 인해 대륙으로부터 고립된 지리적 조건을 유지하고 있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차원에서 외부 집단과의 교류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은 한반도 사람들의 사고방식마저도 정체되거나 고립된 상황으로 몰아간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흘러들어온 외국의 철학 체계나 이데올로기는 더욱 원리주의적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는 외부 세력과의 일상적 교류가 부진한 상황에서 한반도에 정착한 사상이 변태적 진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적 세계관도 이와 마찬가지의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어떠한 학문적 이상향이나 가치도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성리학의 발원지였던 중국마저도 조선만큼 유교적 관습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지는 않았다. 죽은 왕족의 제례 절차에서 상복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첨예한 대립이 벌어졌던 예송논쟁은 조선의 유교적 관습이 국가적 에너지를 갉아먹은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비록 혹자는 이의 본질이 단순한 예절 논쟁이 아닌 효종의 정통성과 관련한 정파 싸움의 차원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성리학적 절차 문제로 인해 국력 소진이 지속되었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지리적 폐쇄성이 이데올로기의 고립과 변태적 진화로 이어지는 과정은 비단 조선만이 아닌 현재의 한반도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지에 정착한 공산주의는 평등이라는 비현실적 가치 추구의 모순을 거듭하다 1990년대 이후 대부분 무너졌지만, 북한은 주체사상과의 결합을 통해 폐쇄적인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비록 현재의 북한이 과연 순수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지는 논외의 사항이지만 말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도 정신적 가치의 폐쇄적이고 갈라파고스적인 진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국만의 독특한 사회 현상으로 인식되는 종교적 원리주의와 올바름에 대한 맹목적 집착, 공정과 상생 및 정의로 포장된 사회주의 가치의 침투는 정신적 가치의 본질적 논의는 빠진 채 형식에만 치중하는 변태적 진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데올로기적 이상향을 추구하는 과정은 현실에의 적용과 타협을 통해 완성된다. 세상을 보다 이롭게 하고자 하는 철학 사상이 현실을 외면한 채 오히려 실제적 삶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사상의 실천적 방향성에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상에 빠진 잣대가 삶의 절대적 기준으로 군림할 때 빠질 수 있는 병폐를 우리는 조선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 청나라의 대륙 문물을 접한 조선인이 당시의 정치 담론에 주도권을 쥐었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불행히도 조선의 국운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외국과의 제한된 교류에서 성리학적 세계관에 빠졌던 조선의 정치인들은 청나라와 일본의 발전된 모습을 목격하고도 애써 오랑캐의 천박한 문화라며 정신승리적인 행태를 보여줬다. 이렇듯 나와 다른 존재와의 교류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속되는 지리적 고립은 생각의 폐쇄성과도 연결된다.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는 문화적 검열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한 시민 독재의 흐름은 외부와의 일상적 교류가 단절된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에서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리적 폐쇄성은 의식적 차원에서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자세를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외부 세력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조선 사신의 오판과 부정적 평가에서 잘 반영된다. 이로 인한 결과는 일본의 침입에 대한 초기 대응의 실패와 국토의 유린으로 연결되었다.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외부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무관심은 북방 정책과 같은 장기적 외교의 방향성을 흩트리고 이의 본질적 성과를 기대치 못하도록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한민국 외교 정책이 처해있는 국제적 고립과 세계열강으로부터의 외면은 이러한 지리적 폐쇄성을 극복하려는 의식적 노력의 부재와 국내 정치인들의 이상향만을 좇는 행태로부터 비롯된 결과이다. 세계 시민의식의 계발과 북방 지역과의 협력을 통한 동반 성장의 추구는 결국 수박겉핥기식의 외국 체험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의 해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지리적 탐사의 사고방식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일상적 차원에서의 지리적 관심과 문화발전

시선의 스케일을 조금 더 좁혀 우리는 일상적 차원에서 발견되는 지리적 무관심과 문화발전의 계기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유튜브에 범람하는 '국뽕' 콘텐츠들은 현재 자국에 대한 국민들의 대단한 자부심을 반영한다. 1992년 세계적 보이밴드 '뉴키즈온더블록(New Kids on the Block, NKOTB)'의 내한공연에 열광하면서 28년 뒤 한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달성하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리라고 예상한 소녀팬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급격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로벌 사회에서 문화적 주류로 발돋움하지 못한 '8-90년대의 한국인들에게 지금 경험하고 있는 성과들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방불케하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현주소를 냉정한 눈으로 돌아봐야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 한국은 BTS와 오징어게임의 인기에 취해 한국의 문화적 저변 문제를 깊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 분명 대중문화 상품이 한국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상승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는 자연스럽게 한국으로의 방문으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지난 2012년 세계 음악시장을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강남'이라는 지명은 세계인들에게 깊이 각인된 채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로 회자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CNN과 NBC방송은 강남의 여러 거리와 여행 정보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강남구청은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을 연상시킬 수 있는 조각상을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앞에 설치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노래와 함께 형성된 국제적 지명도와 장소 정체성을 관내에 연착륙 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정작 강남을 방문한 많은 외국인들은 노래를 통해 마음속에 품었던 해당 지역의 이미지와 실제 장소적 성격과의 괴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상 대중문화 상품 외에 해외 방문객들에게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는 일상적 영역에서의 문화유산이 부재하다는 현실은 우리의 문화적 내실이 생각보다 빈약한 상태로 머물러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일상적 영역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비중있게 여기며 살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요즘 SNS를 즐기는 젊은 세대들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대표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누리는 삶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이는 소소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한 존재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이렇듯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일상적 영역을 어떻게 꾸려가느냐는 개인의 존재와 집단적 사회가 나아가야 할 커다란 방향을 설정하고 그들의 궁극적 운명까지도 결정짓게 한다.

일상적 영역이 가지는 심오함은 문화를 다루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그동안 표준화된 산업 체제 속에서 일정한 규격에 따라 조직되어 왔다. 특히 한국은 빈곤을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급격한 산업화를 겪게 되었고 그에 따라 국민들의 삶은 일상적 문화라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방향으로 영위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일상 속 문화에 대한 갈증은 대중문화 산업의 화려함이 빈자리를 메워주었으며 지금까지는 대외적으로 그럴듯한 성과까지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겉은 화려하고 속은 크게 내세울 것 없는 문화적 형태가 일상 공간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이는 한국 전체의 문화적 색채와 내공을 희미하게 만드는 현상을 낳게 하였다. 아마도 외국인들이 한국 관광에서 느끼는 공허함은 이로부터 비롯되는 감정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가 우리의 일상에 존재한다면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것도 일상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소재가 되는 것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그것이 과거로부터 전해졌든 현대적 환경에서 형성되었든, 우리의 일상 영역에서 가깝게 접근하도록 하는 지리적 실천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요한 작업은 문화유산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제공하는 것과 현대적 일상의 삶에서 적용 가능한 문화유산의 범주를 설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일상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대중문화의 엘리트성과 일상 문화의 간극을 메우고 전반적인 국가 문화의 내실을 다지는 작업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 색채를 분명히 하는 목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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