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한기호의 정치박박] 오얏나무 아래서만 갓끈 매는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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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북=친일' 딱지 김원웅 8·15 막말辭, 박수 친 文
"이재명 이해" 황교익 공사長 낙마…"전문성" 빈말
野선 1·2차 녹취 파문 이준석, 진실공방 태도 돌변
불편한 침묵, 지록위마…방치된 오해가 정설 된다
[한기호의 정치박박] 오얏나무 아래서만 갓끈 매는 정치판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사전녹화 된 김원웅(왼쪽 두 번째) 광복회장의 기념사 영상을 본 직후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이란 옛말이 있다.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자두)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뜻이다. 둘 중 전자는 오이를 도둑질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것으로, 후자의 경우 갓으로 가린 채 자두를 훔치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 '오해를 살 행동을 삼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최근 여야 정치권에선 일반인들보다 훨씬 조심해도 모자랄 판에 '오해를 사려고 작정한 듯한' 행동의 연속이어서 새삼 떠올랐다. 누구든 진정 오해를 샀다면 육하원칙에 맞는 해명과 수습이 뒤따라야 하는 게 '상식'이지만,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적 잣대를 적용 받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그 상식을 건너 뛴다. 정치인 행동의 '의도'는 당장의 '레토릭'보다 유도되는 '결과'를 통해 유추하는 쪽이 정확하다. 그 점에서 상식과 괴리된 행동을 수습하지 않는 정치인에게 굳이 오해라는 '면죄부'를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겨우 취한다는 수습 방식이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식의 국민(윗사람) 기만이라면 더욱 그렇다.

광복회 회장 김원웅 씨의 '보수 친일몰이' 8·15 기념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윤허' 아래, 정부 주관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버젓이 재생됐다. 김 씨는 "국민들은 친일을 뿌리에 둔 역대 정권을 무너뜨리고 또 무너뜨렸다"며 "친일 내각이었던 이승만 정권은 4·19로 무너뜨렸고 박정희 반민족 정권은 자체 붕괴됐으며 전두환 정권은 6월 항쟁에 무릎 꿇었고 박근혜 정권은 촛불 혁명으로 탄핵됐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초대 이승만 정부부터 시작해 반북(反北)·반공(反공산주의) 성향이 뚜렷한 정권만 특정해 친일 딱지를 붙인 셈이다. 김 씨는 지난해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친일파와 결탁했다거나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를 친일 인사로 규정하는 등 일방 주장을 폈고, 2년 전 기념사에선 '일본의 경제보복 대처'를 거론하며 "문 대통령께 격려의 힘찬 박수를 부탁드린다"고 한 바 있다.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을 회원으로 하는 공법단체 광복회는 정관 제9조에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반대하는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회원 자격부터 논란인 회장에 의해 깡그리 무시됐다.

김 씨는 지난 6월말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 영상에서 일제 패망 직후 한반도 남·북에 진주한 미·소 양군을 두고 지금의 동맹이 된 미군에만 '점령군' 딱지를 붙이고, 북한군의 6·25 남침 허가 주체였던 소련(소비에트연방)의 붉은군대는 '해방군'으로 추어올린 것으로 드러나 파장을 일으킨 적도 있다. 그러고도 정부 공식 행사장에 버젓이 재등장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문 대통령이 그런 김 씨의 기념사 영상이 끝난 뒤 박수로 화답했다는 점이다. '1948년 8월15일 건국' 기념일 제정을 주장하면 "대한민국 법통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조선총독부에 있다고 믿는 세력"이라는 '아무말'까지 담긴 기념사 영상은 현 정부와 협의를 거친 결과물이었음이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탁현민 의전비서관의 영상 사전 참관 의혹을 소극적으로 부인했을 뿐이다. 경축사로는 "한일 간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던 문 대통령이 김 씨의 주장에 동조하는지 야권이 캐물었지만, 청와대는 선 긋기조차 안 했다. 지난 21대 총선 맞이 반일(反日) '죽창가' 흥행을 노렸던,' 친공(親共)' 정부가 김 씨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보면 그건 '오해'일까.

여권 내부에선 '황교익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 사건이 일주일 가까이 리스크로 부상했다. 음식평론가라는 황교익 씨는 일찍이 방송 활동과 함께 친문(親문재인), 친민주당 성향 인물로 유명세를 떨쳐왔다. 그런 그가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인사권을 지닌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된 것으로 지난 13일 확인됐다. 종전의 공사 사장 공모 때보다 훨씬 완화된 채용 규정이 황 씨에게 첫 적용된 정황도 제기됐다. 더불어 황 씨는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이 지사에게 불거진 '형수 쌍욕' 논란에 대해 "이재명을 이해하자"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 민주당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 보은 인사 논란을 불렀다.

이재명 캠프 현근택 대변인은 황 씨의 '맛 기행' 행적을 들어 "관광과 홍보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고 엄호했다. 그러나 황 씨는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 측근 인사가 "일본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에 맞는 분"이라고 꼬집자 "청문회 전까지는 오로지 이낙연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 데 집중하겠다"며 '입씨름 전문'임을 과시했다. 이에 더해 19일 이 지사가 도내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첫날이던 지난 6월17일 유튜브 채널 '황교익 TV' 촬영에 나서 사이 좋게 '떡볶이 먹방'을 강행한 사실까지 논란이 됐다. 이재명 캠프에서의 이견 표출 직후, 황 씨는 20일 오전 급거 내정자 자리를 내려놓았다. 전문성이 아닌 정파적 이해가 작용한 인사였다고 보는 게 과연 '오해'일까.


야권은 '대선 경선버스'가 출발하기도 전에 당대표가 특정 대선주자 때리기를 이어온 것도 모자라 탈(脫)상식의 연속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휴가(9일~13일)를 마치고 16일 최고위원회의로 당무에 복귀하기 직전, 윤 전 총장과의 12일자 일대일 통화 녹취록을 일부 기자들에게 만들어 돌렸다는 의혹에 직면했다. 캠프 소속 신지호 전 의원의 '탄핵' 거론에 사과하라는 자신의 SNS 공개 압박 끝에 윤 전 총장이 전화했지만 '직접 사과 발언이 없었다'고 불만을 드러낸 취지로 알려졌다. 이는 당대표실 실무자들이 만든 녹취록이 언론에 포착되면서 제1야당 대표의 무단 녹취 및 유포 논란으로 번졌다. '실무진 실수'로 녹취록이 만들어졌다는 당대표실 관계자 초기 해명과 그저 '녹취도 녹취록 전달도 없었다'는 이 대표 해명이 뒤섞이면서 혼란을 키웠다. 그 직후인 17일엔 원희룡 전 제주지사로부터 이 대표가 일주일 전(10일)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을 두고 "곧 정리된다"고 말했다는 구두 폭로가 나왔다. 그런데 이 대표 본인이 당일 밤 음성인식 AI를 이용한 '부분 녹취록'을 SNS에 공개하면서 '2차 녹취록 파문'으로 비화했다.
이 대표는 원 전 지사가 지목한 것으로 추정되는 '저거 곧 정리된다'가 윤 전 총장이 아닌 양측의 갈등 관계를 가리켰다고 적극 해명하면서도 "혹시나 헛된 기대 때문에 해당 대화의 앞뒤 내용은 궁금해하지 말아달라"는 희한한 대국민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그러나 이튿날(18일) 폭로 내용을 단언하며 "오후 6시까지 녹음파일 전체를 공개하라"는 원 전 지사의 요구엔 "딱하다" "대응할 생각이 없다"고 일관했다. '토론배틀'을 브랜드 삼고 SNS 글 직접 공유, 실시간 논쟁도 불사하던 기존 태도에서 돌변했다.

19일 최고위 모두발언까지 연속으로 건너 뛴 이 대표는 취재진과의 문답 역시 회피했다. 그 사이 경선준비위원회의 1차 컷오프 여론조사 '역선택 방지 조항' 미적용 결정, 서병수 경준위원장의 "이 대표를 흔들지 말라"는 대내 언사로 '경준위 월권·공정성 시비'가 고조됐다. 지도부가 향후 경선절차 '불개입'을 선언하라는 일부 주자의 요구도 나왔다. 덩달아 이 대표가 6·11 전당대회로 당권을 쥐기 불과 석달 전 "당대표 될 거다" "대통령 만들 사람은 유승민" "안철수 서울시장에 윤석열 대통령 되면 지구 뜬다" 등 발언을 한 데 대한 의혹 역시 높아지고 있다.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의 세부 협상 내용까지 공개하며 "합당 예스냐 노냐"라고 공개 추궁하던 기세로 이 대표가 속 시원히 해명하지 않으면, 각종 '오해'가 오해가 아니게 될 것 같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

[한기호의 정치박박] 오얏나무 아래서만 갓끈 매는 정치판
이준석(가운데)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발언을 생략한 채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기호의 정치박박] 오얏나무 아래서만 갓끈 매는 정치판
지난 13일 경기도 산하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 사실이 확인된 친여(親與) 성향 음식칼럼니스트 황교익 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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