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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지리각각]`국경 맞댄 유럽` 극동러시아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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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지리각각]`국경 맞댄 유럽` 극동러시아가 기다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지난 16일 스위스 제네바 회담은 앞으로 전개될 국제 지정학적 구도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반군 지원, 미국과 유럽을 겨냥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의혹 등에서 이견을 보였지만 실전배치 핵탄두를 1550개 이하로 묶는 등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연장하는 의미 있는 결실을 거뒀다. 무엇보다 관계개선 의지가 있다는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했다는 점은 주목된다.

이에 따라 1985년 역시 제네바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 간 회담 후 냉전 종식을 거쳐 1991년 12월 소련 해체에 이르는 과정에서 목격한 것처럼 미국과 러시아가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차츰 거둬들일 것으로 보인다. 양국이 제네바를 회담 장소로 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제 2014년 러시아 크림반도 병합으로 취해진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대(對)러시아 경제제재의 완화 또는 해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이 입장을 바꿔 러시아를 품은 것은 대(對)중국봉쇄전략을 완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자신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을 미국은 바다와 육지에서 포위망을 짜고 있다. 남은 것이 북쪽의 러시아뿐이었다. 러시아가 참여하면 중국은 완벽히 봉쇄된다. 이는 1971년 핑퐁외교로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떼어내어 20년 후 소련을 해체시킨 전략의 재현이다. 옛날의 소련이 지금의 중국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다.

대중관계는 이미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방향이 정해졌다. 친미반중은 아니더라도 중국과는 거리를 두는 '친미격중'(親美隔中)이다. 대신 러시아와는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한국과 러시아는 한중 관계처럼 역사적 구원(舊怨)이 두텁지 않다. 러시아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천연가스, 석유 등 자원이 풍부하고 러시아는 우리의 ICT 제품, 자동차, 석유화학제품 등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기초과학에 앞서있고 우리는 그것을 상업화하는 응용기술에 능하다. 경제적으로 보완적이어서 윈윈할 수 있는 관계다. 그럼에도 양국은 상대방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왔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북한이라는 걸림돌 때문이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은 한·러 관계에서 상수일 수밖에 없다. 이밖에 한러관계 심화를 가로막았던 게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였다.

이번 미·러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제재가 풀리면 한러 보완적 경제교류는 한층 강화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지금까지는 우주항공, 해양플랜트, 금융 분야에서 러시아 투자에 제약이 있었다. 당장 제제가 완화되지 않는다 해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분야는 러시아 연해주를 포함한 레나강 동쪽의 시베리아, 즉 극동러시아다. 이 지역은 한반도와 이웃한 지역으로서 역사적으로 우리와 연고가 깊고, 우리 동포들이 적잖이 살고 있으며, 지구 기온 상승으로 열리고 있는 북극항로의 연안지역이다. 그리고 이 지역엔 엄청난 천연가스와 석유, 철광석, 석탄 등 자원이 매장돼 있다. 극동러시아로 진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리적 친밀도와 역사적 연고

극동러시아는 비록 북한 땅이지만 우리 국토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극동러시아 중심도시로서 연해주 주도인 블라디보스톡은 우리 땅에서 140km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연해주는 16만㎢로 남한 면적의 1.6배에 달하지만 인구가 190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약 5~6만명의 우리 동포, 즉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연해주 정착을 근대로 한정해 보면 150년의 역사가 있다. 조선과 청은 연해주를 봉금지역으로 묶어 자국민의 이주를 막자는 약속을 하고 비워뒀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의 의사와 무관하게 청과 러시아가 1860년 베이징조약을 맺고 중국이 러시아에 넘겨주면서 조선인 이주도 시작됐다. 1874년 이미 한인촌이 형성돼 있었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는 수많은 우리 독립지사들의 근거지가 됐다. 블라디보스톡은 구한말 이후 항일운동의 전진기지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연해주의 원주민은 우리 조상임을 알 수 있다. 고조선에 이어 고구려, 발해의 강토는 연해주와 그 서쪽 지역인 간도를 포함했다.

잊고 있었던 블라디보스톡, 연해주 나아가 극동러시아가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1990년 국교정상화 이후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러시아와 교류가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극동러시아가 관심권에 들어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한러 관계는 진전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 팬데믹 이전 3~4년 전부터 블라디보스톡이 새로운 여행지로 부상하면서 다시 극동러시아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을 섭렵한 한국인들이 참신한 여행지를 찾는 과정에서 블라디보스톡이 눈에 띈 것이다. 팬데믹 발생 전 해인 2019년 해외여행 성수기 7월 4주 동안 G마켓과 옥션 등 이베이코리아에서 판매된 항공권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에서 블라디보스톡은 130%로 해외 어느 여행지보다도 압도적으로 앞섰다. 그 전 해인 2018년에도 전 년 대비 해외항공권 판매실적이 가장 많이 증가했던 지역이 베트남 다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이었다. 그만큼 블라디보스톡, 연해주, 극동러시아는 한국인들에게 친밀한 곳이 됐다.

◆지구 기온 상승으로 열리는 광활한 경작지

작년 6월 20일 시베리아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한 곳인 베르호얀스크 기온은 섭씨 38도까지 올라갔다. 1885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았다. WMO(세계기상기구) 등 많은 기상관측연구소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시베리아 평균 기온이 2050년까지 3~5도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구동토층이 해빙이 되면 병원균이 대기로 뿜어 나오고 건조해지는 등 많은 문제점을 낳지만, 농작물 생육에는 긍정적이다. 그에 따라 적어도 연해주와 사할린주 등 극동러시아 남쪽 지역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한국 자본이 연해주에서 대규모 농사를 짓고 있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자원개발의 현대농장은 우스리스크 항카호수 부근 약 2만ha의 농지를 확보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 주로 콩과 옥수수를 제배하고 있지만 기온이 올라가면 벼농사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한말에는 우리 조상들이 연해주에 벼농사를 도입해 지은 적도 있다. 현대농장은 그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다 최근 들어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연해주는 해외곡물 생산기지로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특히 평야지대고 넓어 조방적 기계농업을 할 수 있다. 연해주는 현재 개간 가능한 땅의 20% 정도만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를 농토로 만들면 남한 전체 경작지(175만ha)보다도 넓은 200만ha 이상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해주에는 인구가 적고 러시아인 중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한국 자본이 대규모 기업농으로 진출할 여지가 높다는 점이다. 러시아정부가 극동러시아의 중국화를 막기 위해 중국인 유입을 철저히 막고 있는 반면, 한국인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점도 연해주에 관심을 가질 만한 유인이다.

◆상호보완적 경제 구조로 윈윈

한국과 러시아는 경제구조가 거의 완벽한 상호보완적이다. 러시아는 동시베리아에 천연가스, 석유, 구리, 니켈, 철광석, 석탄 등을 많이 갖고 있지만 그것을 활용하거나 가공할 산업시설은 거의 없다. 한국은 그와 거꾸로다. 교류의 물꼬만 트면 서로가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교류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은 북핵과 미국의 경제제재 등 대외 여건 때문이었다. 북핵은 어쩔 수 없더라도 미국의 제재는 완화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리스크를 줄이며 투자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중에서도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들여오는 프로젝트는 매력적이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하다 중단된 협상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 BP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 세계 천연가스의 23.7%를 보유하고 있다. 시베리아에는 한국이 200년간 쓸 수 있는 10조㎥의 천연가스와 석유 등이 매장돼 있다고 한다. 서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는 러시아는 사할린과 야쿠츠크 생산센터의 천연가스를 한국과 일본에 수출하고 싶어 한다. 중국은 이미 파이프라인을 작년부터 공급받고 있다. 일본은 아베 총리 때 협상을 하다가 북방4개 섬 문제로 중단됐다. 러시아로서는 한국이 최적의 수출대상국이다. 북핵이란 장애로 인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북한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의 통과수수료 지급은 미국과 UN의 대북제재 위반이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이 발상의 전환을 하면 서로의 필요에 의해 북한통과 파이프라인 건설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봉쇄 전략에 러시아의 역할이 얼마나 긴요하고 북한이 얼마만큼 핵협상에 진정성을 보이느냐에 따라 미국이 용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IHS 마킷 부회장이자 국제에너지 전문가인 대니얼 예긴은 저서 '뉴맵'에서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적 세력 다툼은 국가간 관계를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변화시킬 것이라며 에너지를 지렛대 삼아 미국의 중국 견제는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프라인을 깔 수 없다면 LNG운송선을 통한 수출입도 가능할 것이다.

천연가스 수출입이 시간이 걸린다면, 북극항로는 당장 할 수 있다. 북극항로는 대한해협-캄차카반도 남단-베링해협-북극해-유럽으로 이어지는 항로다. 현재는 결빙 때문에 여름 한 철만 이용 가능한데, 2030년이 되면 12개월 운앙이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극항로는 말래카해협을 지나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적도항로보다 동북아시아와 유럽까지 거리를 30%(5000km) 단축시킨다. 비용은 25% 절감된다고 한다.

북극항로를 새로운 기회로 보고 적극 개발할 것을 주장하는 김태유 서울대 공대 명예교수는 최근 저서 '한국의 시간'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물동량이 급증하고 있어 적도항로로는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한국형 북극항로 전용선을 개발하면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배의 안전과 비용을 감안해 항로는 연안에 가까워야 하고, 북극항로의 대부분이 러시아 연안에 속하므로 러시아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했다. 아울러 북극항로가 상시화되면 부수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봤다. 김 교수는 "시베리아 동토의 때묻지 않은 이색적인 풍광은 여행과 관광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세상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딱 맞는 새로운 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구에서 인간의 미답지로 남아 있는 지역이 별로 없는데, 동시베리아가 그 중 하나다. 추코트카주, 연해주, 사하공화국 등 9개 러시아 지방으로 구성된 극동러시아는 면적이 630만㎢로 호주 대륙보다 조금 작지만 인구는 630만명밖에 살지 않는다. 원시상태로 남아있는 이 지역이 혹한의 시베리아를 거침없이 주파해 한반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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