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레토릭과 다른 中의 현실주의적 행동전략 … 국제정치 `화이부동` 강조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中, 한국전쟁때 美 38선 넘자 파병
퇴각하자 現 전선 방어 명령 내려
적합성 아닌 결과의 논리 따라 행동
바이든도 홍콩문제 인권 강조하지만
美 경제적 이익 압도할지는 미지수
韓, 중국 말·행태 면밀한 독해 필요
이해땐 對中 외교 협상력 배가될 것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레토릭과 다른 中의 현실주의적 행동전략 … 국제정치 `화이부동` 강조
중국이 늘 주장하는 주권 수호 이미지. 출처=바이두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레토릭과 다른 中의 현실주의적 행동전략 … 국제정치 `화이부동` 강조
박홍서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④ 북방과 한반도 안보 - 중국의 안보행태는 특이한가?(3)


중국에 대한 대표적인 선입견 중의 하나는 중국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다르다'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중국을 서구 근대국가의 도식적 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왕조가 바뀌고 통일과 분열을 경험했지만, 중국이라는 큰 줄기가 변함없다는 것이다. 중국 연구가 루시안 파이(Lucian Pye)는 중국을 "근대국가를 가장한 문명국가"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중국 특수론자들은 현재 중국의 행태 역시 독특하다고 강조한다. 다른 국가와 동일한 상황에서도 중국은 다르게 행동한다는 논리다. 중국 스스로도 자신의 독특성을 강조한다. 국제정치를 말하며 '화이부동'을 강조하고, 경제발전을 말하며 '중국적 특색'을 강조한다.

공동기획

한국외국어대학교 HK+ 국가전략사업단

디지털타임스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이론에 따르면, 국가들은 효용과 비용에 따라 행동하는 합리적 주체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러한 주류 이론의 논리와 부합하지 않는 행위자가 된다. 중국은 결과에 대한 합리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정체성이나 문화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즉, 중국은 '결과의 논리' 아니라 '적합성의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

국제정치학의 '전략문화' 이론은 이런 방식의 설명과 맞닿아 있다. 중국의 대외행태는 세력균형과 같은 현실주의적 공리가 아니라 중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할 때 비로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적국에 비해 전력이 약한 상황에서도 공세적 방어를 펼친다거나, 중국이 패권국으로 부상하더라도 힘보다는 유교적인 조화를 통해 타국을 다룬다는 논리다. 중국의 안보 행태는 정말 독특한가?

◇레토릭과 실제는 별개의 문제= 일상 생활에서와 같이 국제정치에서도 말과 행동은 구분되어야 한다. 한 국가의 정치적 수사와 그 국가가 실제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경우도 그렇다. 중국의 말과 행동이 부합하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 판단은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중국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할 때 드러날 것이다. 일상적으로 윤리를 강조한다고 도덕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물질적 이익이 심각히 훼손되는 상황에서도 신념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그 행위자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전쟁 등 안보위기 상황은 그런 결정적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말과 행동이 그렇게 부합했다고 할 수는 없다. 봉건시기 한중관계는 유가적 규범에 따른 자발적 위계관계였다. 동아시아에서 조공질서가 제도화된 명청 시기 조선과 중국은 서로 '사대자소(事大字小)'의 규범을 강조했다. 조선은 중국을 상국으로 섬기고 중국은 조선을 자식처럼 잘 보살펴야 한다는 원리였다. 일상적인 한중관계 역시 이런 규범에 충실한 듯 보였다. 조선은 성실하게 조공을 바쳤고, 중국은 책봉을 내려 조선 정권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었다. 조선 임금에게 상제의 아들인 중국 황제의 책봉은 하늘로부터 권력을 인증받았다는 증명서였다.

그러나 이런 규범적이고 의례적인 한중관계의 논리가 안보위기 상황에서도 작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국과 조선은 철저하게 현실주의 논리에 따라 행동했다.


예를 들어, 규범대로라면 임진왜란 당시 명은 즉시 원병을 보내 조선을 구원했어야 한다. 절대절명의 위험에 빠진 자식을 외면할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명은 왜군의 빠른 북상을 두고 조선과 일본의 담합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사신을 보내 그 진위를 정탐할 정도였다. 결국, 의심이 풀리고 왜군이 평양까지 진군하자 명은 비로소 원병을 보냈다.
명의 파병 역시 지정학적 계산에 따른 전략적 행동이었다. 완충지대인 한반도 북부까지 왜군이 장악할 경우 명의 국가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기 때문이었다. 명군의 행태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의 행태가 유사하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전쟁 시기에도 중국은 미군이 38선을 넘자 애초 관망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파병을 결정하였다. 봉건 중국과 사회주의 중국이 이질적인 행위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행동을 했다면, 그 원인은 각 행위자들의 독특성이 아니라, 명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처한 동일한 환경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정학이라는 구조의 문제이다.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레토릭과 다른 中의 현실주의적 행동전략 … 국제정치 `화이부동` 강조
왜명 강화비는 임진왜란때 명과 일본이 용산에서 강화회담을 벌인 기념비이다. 강화회담 후 왜군은 남쪽으로 퇴각하고 명군은 그들을 조선군 공격으로부터 보호했다.

군사개입 이후의 상황 역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은 비슷했다. 명군은 평양성 전투 승리 왜군이 남쪽으로 철수하자 소극적 전술로 일관했다. 왜군과 협상을 벌여 철수하는 왜군을 조선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까지 했다. 왜군을 뒤쫓는 조선군을 잡아다 곤장을 칠 정도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미군이 38선 이남으로 퇴각하자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는 미군을 추격하기 보다는 현 전선의 방어 명령을 내렸다. 이런 중국의 행태를 두고 16세기 선조 정권과 20세기 김일성 정권은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명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4백여년의 시차를 두고 중국군의 행태가 놀라울 정도로 같았던 배경에는 한반도 북부지역의 확보라는 지정학적 이유가 있었을 뿐이다. 중국은 적합성의 논리가 아니라 결과의 논리에 따라 움직였다.

19세기말 조선에 대한 청의 행태도 다르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조공관계의 규범으로 포장했지만, 조선문제에 대한 청의 행태는 매우 현실적이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서구 열강은 청에 문제해결을 요청했다. 조선의 종주국이니 나서서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은 "조선이 비록 우리의 속방이지만 전통적으로 외교와 내치는 자주였다"라는 속국자주의 논리를 들며 개입을 회피했다. 청은 자국의 행태를 중화질서의 독특한 규범으로 포장했지만, 그것은 조선문제로 인한 자국의 부담을 경감하려는 합리적 행태였을 뿐이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즉각적으로 개입해 군란의 배후였던 대원군을 납치해 갔던 사실 역시 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청은 상국으로서 조선의 혼란을 외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청의 외교를 총괄하던 리홍장은 일본과의 충돌을 차단하기 위해 대원군을 납치했다고 훗날 증언하기도 했다. 청은 대원군 정권을 붕괴시키면서까지도 안정적인 대일 관계를 견지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화질서의 관념적 규범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특이한 것은 실제가 아닌 말= 현재도 중국의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자국의 발전을 소위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채색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지적처럼 중국의 발전은 1970년대부터 확산된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발전의 중국 버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중국의 발전은 사실 중국적 특색의 자본주의가 되는 것이다.

정치 안보 측면에서도 중국의 레토릭과 실제 행태는 구분돼야 한다. 중국이 말하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보자. 중국은 동맹을 냉전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면서 한국을 비롯해 수십여 개 국가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전략적 동반자관계는 동맹 당사국처럼 상호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구동존이(求同存異) 정신에 기초해 갈등문제는 제쳐두고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공동 번영에 초점을 맞추자는 논리이다.

그러나 중국의 실제 외교 행태가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규범과 부합한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행태는 이를 보여준다. 중국은 사드가 중국의 안보이익을 훼손한다며 한국에 대한 무역제재와 한한령을 발동했다. 사드가 설령 미국의 대중 견제전략의 일환이라고 하더라도,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주권국가 한국의 결정이었다는 측면에서 중국의 반발은 주권 존중이라는 자신의 일관된 주장과 부합하지 않았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제재가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공식화할 경우 WTO 등에 의해 제소당할 위험성을 줄이려는 의도이거나, 한한령을 통해 중국 내 관련 산업을 육성하려는 의도 등 여러 가지 배경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과 행동의 괴리를 최소화하려는 일종의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사실, 국제정치에서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표면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그것이 실제와 부합하는지는 늘 회의적이다. 인권외교를 구호로 집권한 카터 정권이 5·18의 유혈진압에 동의했다는 사실은 그 불일치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소련과의 '신냉전'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카터는 반공이 민주주의 가치보다 중요하다고까지 발언했다. 1993년 집권한 클린턴 역시 다르지 않았다. 클린턴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국의 6·4 천안문 사건을 거론하며 부시 정권의 유화적 태도를 비판했다. 클린턴은 임기 초반 실제로 중국의 인권문제와 최혜국대우를 연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취임 2년이 채 못돼 연계 정책을 전격적으로 철회했다. 클린턴은 그 이유를 '미국의 이익'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했다. 물론 그것은 경제적 이유였다. 중국 시장에서 얻는 미국의 경제이익은 중국의 인권 문제를 압도했던 것이다. 인권은 레토릭으로만 존재했다.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행태는 최소한 그랬다.

현재도 다르다 볼 수 없다. 트럼프 정권에 이어 바이든 정권도 중국의 신장이나 홍콩 문제를 거론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중국 시장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압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상황변화에 따라 클린턴 정권처럼 한순간에 정책변환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라리 그때나 지금이나 '너희 미국의 인권상황이나 챙겨라'라는 중국의 비아냥이 오히려 솔직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인권을 둘러싼 현재의 미중 갈등에서 일종의 기시감을 느낀다면, 1990년대 초 인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 때문일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크래스너는 국제정치의 핵심 규범인 주권을 '조직화된 위선'이라고 규정한다. 원칙대로라면 국가들은 각각 최고권력을 갖고 있으므로 모든 국가는 평등해야만 한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실제는 주권규범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국가간 힘의 분포에 따라 국제정치가 주조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아편전쟁 이후 소위 '민족적 굴욕기' 백년을 거친 중국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국가 주권을 강조하지만, 중국 역시도 그런 레토릭과 실제 행태는 괴리된다. 결국 중국이 생산하는 말은 중화질서 속에서도 현재의 주권질서 속에서도 정치적 담론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실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전술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국 전략은 무엇보다 이런 중국의 행태에 대한 면밀한 독해가 필요하다. 중국이 생산·유통하는 담론의 의미와 기능을 정확히 독해할 때 그만큼 대중국 외교의 협상력이 배가될 것이다. 즉, 한국이 미국의 대중견제 전략의 선봉대가 되는 상황을 중국이 민감하게 간주한다면, 한국은 일관되게 주권국가로서 한국의 독자성을 중국 측에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주권 국가로서 자국 안보를 방어할 권리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시키는 전략이다. 전시작전권 환수나 한국형 무기체계의 개발 등은 이러한 레토릭을 뒷받침해주는 실제 행태가 될 것이다. 중국은 미국 무기인 사드배치에 반발할 수는 있지만, 한국의 자체적인 미사일 개발에는 반발할 수 없다.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스스로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중국의 말과 행태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