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월간 객석 발행인
![[포럼] 코로나 이겨낸 `교향악축제`](http://contents.dt.co.kr/images/202105/2021051202102369073001[1].jpg "[포럼] 코로나 이겨낸 `교향악축제`")
올해의 교향악축제는 대부분 만석이더군요. 코로나 방역 때문에 한 자리 건너 앉기를 시행하다보니 공연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지요. 개막 공연을 맡은 금난새와 성남시향은 지휘자 특유의 자상하고 유머러스한 해설로 즐거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도 청중이 좋아할 법한 작품과 연출력을 선보였습니다.
하프시코드(김광현/원주시향, 안종도 협연)가 축제 역사상 처음으로 협연악기로 나왔고, 경기필하모닉(마시모 자네티 지휘)의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에선 관악 단원들이 합창석으로 등장해 웅장한 음향효과와 함께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주었습니다. 군포 프라임필은 하차투리안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준성이 객원지휘를 맡아 그의 시그니처 곡인 하차투리안의 교향곡 2번으로 우리 귀를 즐겁게 했지요.
우리가 "공연 보러 간다"라는 말을 사용하듯이 음악은 청각의 예술이기도 하지만, 공연장에서 눈으로 보며 새롭게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더군요. 어떤 단원들은 긴 턱시도 슈트에 하얀 와이셔츠, 보타이까지 착용했는가 하면, 어떤 단원은 평범한 수트에 검정 넥타이만 맨 경우도 있었습니다. 같은 검정색 구두라도 어느 단원은 반짝이는 유광의 검정색을, 또 다른 단원들은 무광택 구두를 신어 취향들도 제각각이었구요.
여성단원들이 입는 블라우스 모양도 멀리서 보면 유니폼 같지만, 하나씩 보면 자신의 개성이 반영된 옷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군요. 보면대도 대부분 악단의 현악 단원들이 2인 1조가 되어 하나를 놓고 쓰는 반면, 서울시향은 1인 1개를 사용하더군요. 절정의 연주력을 쏟아내어야 할 때도 그 자세들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엉덩이를 의자에 더욱 밀착시키는가 하면, 누군가는 거의 끝에 걸터앉기도 하죠.
'객석'은 4월호 커버스토리로 교향악축제에 출연하는 21개 오케스트라의 22명(코리안심포니는 2명의 악장을 보유) 악장들 인터뷰를 다뤘는데요, 공연장에서 만났던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객석' 덕분에 각 악단의 악장들 모습을 처음으로 눈여겨봤다고 해서 더 기뻤습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이었던 점은 음악가들이 지닌 서비스 정신의 큰 변화였다고 할까요. 축제는 축제답게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려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저 역시 생각해왔었는데요, 최수열과 부산시향의 협연자였던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앙코르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는 순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 익숙하고, 누구나 다 아는 이 곡을 무대에서 듣는 것은 진짜 처음이었거든요. 덕분에 관객들도 더 자유롭게 즐기는 교향악축제가 되었지요. 오랜 펜데믹으로 어두웠던 세상을 밝게 만들어준 음악의 힘이 작용했던 것은 물론입니다.
뜻깊은 공연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4월 17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참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였는데요, 이 악단은 정기 연주회 수익만큼은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전액 기부하자는 좋은 뜻으로 2018년 창단되었습니다. 전 경기필 상임지휘자 구자범은 물론 협연자, 젊은 단원 70여명이 무보수로 3년째 정기공연을 이어가며 가난한 시각, 청각 장애인 등에게 수술비를 마련해주는 자선활동을 소리 없이 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3회 정기연주회는 협연자가 인기 있어서 그런지 표가 하루만에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누구냐고요?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인데요, 알고보면 그녀의 흔쾌한 출연 뒤엔 또 하나의 감동스토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녀 자신이 바로 태어날 때부터 왼쪽 귀가 잘 안 들리는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8살 때 바이올린과 사랑에 빠졌던 그녀는 15세 때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2위 입상했지만 20대 초반 턱관절 수술 후유증으로 몇 년을 쉬어야 했던 뼈아픈 시기를 보내야만 했었죠. 그녀에 의하면 '사는 것에 대한 일말의 미련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때'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첫사랑 같았던 부르흐의 협주곡을 통해 다시 음악에 대한 열정에 빠져들었다고 하네요. 그래서일까요? 참필하모닉의 이번 연주회에서 스스로의 인생곡이기도 한 그 곡을 연주하는 한수진의 모습이 참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단원들 중에는 아직 학생인 신분도 꽤 있지만 인생의 가장 바쁜 시기를 좋은 뜻을 담은, 좋은 음악에 바치는 모습들도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고요.
그날 마지막으로 연주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처럼 화려하게 비상하려는 젊은 음악가들의 꿈! 그것은 바로 음악의 힘으로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살리려는 선한 열정이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음악이야말로 우리 삶을 더 풍성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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