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임영웅 음방 1위, `별의 순간`이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103/2021032402102269660002[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임영웅 음방 1위, `별의 순간`이다")
이렇게 외부 효과 없이 노래 자체의 힘으로 1위에 올랐던 트로트곡은 장윤정의 '어머나'였다. '쇼! 음악중심'의 전신인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2005년 2월에 1위를 차지했다. 당시 트로트 가수로서는 김수희의 '애모' 이후 12년 만의 음악방송 1위였다. 그리고 16년이 흐른 후 임영웅이 1위에 오른 것이다. 이러니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KBS '가요톱텐' 시절엔 투표인단에 의한 엽서 투표를 통해 트로트 곡의 1위가 종종 나타났었다. 하지만 음악방송 순위가 디지털 음원 성적 중심으로 재편된 후엔 사실상 트로트는 음악방송에서 배제되다시피 했다. 유튜브 조회수, 소셜미디어 호응도 등까지 반영되자 트로트는 더욱 순위 진입이 힘들어졌다. 게다가 각종 투표에서도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임영웅은 이러한 판을 뒤흔들었다.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발매 직후 음원 가온차트에서 디지털차트, 다운로드차트, BGM차트, 벨소리차트, 컬러링차트 등 5개 부문을 휩쓸어 5관왕에 올랐다. 팬덤이 격돌하는 투표에서도 아이돌의 강력한 팬덤을 압도했다. 사전 투표인 글로벌 투표에선 임영웅이 1000점을 획득한 반면, 로제는 467점에 그쳤다. 방송 중에 진행된 실시간 문자 투표에서도 임영웅이 1000점을 획득했는데, 로제는 31점이었다.
로제는 세계 최고 걸그룹인 블랙핑크 멤버로 이번 신곡도 세계적 히트곡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조회수가 발매 일주일 만에 1억 회를 넘어섰다. 이런 국제 스타 아이돌 팬덤과 트로트 팬덤이 음악프로그램에서 투표로 정면승부를 벌이는 광경은 비현실적이고, 대결 상대가 됐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의미 있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심지어 임영웅 팬덤이 압도하기까지 한 것이다.
유튜브 조회수는 국내 성인가요 스타가 한류스타를 따라갈 수 없다. 한류스타는 국제적으로 클릭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로제는 앨범을 냈지만 임영웅은 싱글 음원만 출시했다. 즉, 동영상 조회수와 음반 성적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음원 성적과 팬덤의 우세로 1위에 오른 것이다. 트로트가 음원 성적과 팬덤에서 아이돌 스타를 압도했다는 점도 역사적 사건이다.
트로트라는 음악의 관점에서 보면, 임영웅을 비롯한 '미스터트롯' 트롯맨들의 음악도 역사적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6년 전 1위에 올랐던 장윤정도 역사적 변화의 주인공이었다. 90년대 댄스음악의 대두로 침체에 빠졌던 트로트를 뉴트로트로 부흥시킨 대표적 인물이다. 그때 트로트가 댄스음악과 섞이면서 더 밝아지고, 더 젊어졌다. 박현빈, 홍진영 등이 가세해 신세대 트로트 붐을 형성했다.
그후 다시 침체에 빠진 트로트를 부흥시킨 것이 임영웅과 트롯맨들이다. 이번엔 단순히 댄스음악과 섞이는 차원이 아니라 트로트 음악의 지평이 대대적으로 확장됐다. 임영웅과 트롯맨들의 음악은 전통적인 트로트와 확연히 달랐다. 발라드부터 시작해 다양한 요소들이 트로트와 섞였다. 특히 임영웅은 장르가 임영웅이라고 할 정도로 폭넓은 음악성을 선보였다. '미스터트롯' 이후 세 곡을 발표했는데, 그중 작년의 두 곡은 모두 트로트곡이 아니었다.
이런 특징들로 인해 임영웅과 트롯맨들의 음악은 기존 트로트 음악보다 더 고급스럽고 풍부하다는 느낌을 준다. 바로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국민적 인기가 나타난 것이다. 임영웅 팬들 중엔 원래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았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까지 팬덤으로 흡수하며 트로트의 저변이 확대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16년 전에 장윤정이 트로트 변화를 주도하며 음악방송 1위에 올랐는데, 지금 임영웅이 또다른 변화를 주도하며 1위에 오른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도 지난 주말 '쇼! 음악중심'의 무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