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칼럼] `농사짓는 대통령` 공정이 문제다

박양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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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 칼럼] `농사짓는 대통령` 공정이 문제다
박양수 수석논설위원

1960년대 홍콩에선 부패가 극도로 만연했다. 그 때 유행했던 말이 있다. 부패한 정부기관이나 공공조직에 몸담은 사람들 사이에서 돌던 유행어다. 그들은 부패에 적극 가담하는 선택을 '달리는 버스에 탄다'고 했고, 방관자가 되는 걸 '버스와 함께 달린다'고 표현했다. 부패를 보고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버스 앞을 막아선다'고 비유했다. 당시 세 번째 선택은 거의 소용 없는 분위기였다.

요즘 'LH투기'로 몸살을 앓는 한국의 실태가 그 때의 홍콩 모습과 다를 바 없다. LH 사건이 곪아터지기 전인 지난해 7월 내부 자정의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개발토지 정보를 이용한 투기 행위'를 고발하는 내부 제보가 접수된 것이다. 제보자는 구체적인 투기행위와 차명거래 이름, 주소까지 명시했다. 하지만 LH는 규정을 들먹이며 이를 묵살했다. 달리는 버스를 멈추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위 아래를 가릴 것 없이 심각한 도덕적 불감증에 오염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모 직원이 "투기는 LH만의 혜택이자 복지다" "꼬우면 LH로 이직하라"라는 글로 성난 민심에 고춧가루까지 뿌려댄 뻔뻔함은 왠지 이 정권에선 낯이 익다.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이라면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에게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엄격한 도덕 기준을 세우고,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LH의 경우처럼 그들은 권한을 이용해 조직 내부의 고급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는 신분이다. LH 직원들이 "왜 우리는 투자를 하면 안 돼냐"고 따지고 든 것도 "그럼 너희는 깨끗하냐"는 의미로 들린다.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는 본인은 물론 가족, 친척이 정부 관련 사업을 하거나 정부 정책으로 혜택 받을 수 있는 기업 지분을 소유해선 안된다. '특혜'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조국펀드'가 논란이 된 것도 그래서다. '조국 펀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친척이 투자한 사모펀드다. 조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앞둔 지난 2019년 8월 이 펀드가 논란이 되자 "처와 자식 명의로 된 펀드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쓰도록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는 '보여주기식 쇼'라는 지적에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을 잠시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저의 실천"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약속은 아직도 깜깜 무소식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냐, 아니냐는 공직자의 '이해상충'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달렸다. 국회의원이 자신이 소유한 기업에 영향을 미칠 법안에 투표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투표할 게 뻔한 데도 말이다. 과거 러시아, 폴란드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선 이런 문제가 심각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은 공직에 있는 동안 자신의 부를 부풀리는 게 범죄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중국에선 관료들이 공공과 민간 부문의 지위를 겸하는 전통이 있다. 이런 전통이 고질적인 부정부패의 고리가 될 개연성이 높다. 유럽연합 내 대부분 국가들은 그와는 달랐다. 공직자에게 재직 기간 중 그들의 재정적 이해관계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보고 내용과 위반 시 처벌 조항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딱 하나다. 개인의 사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해선 안 된다는 '이해상충'의 문제다.

LH 땅투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경남 양산의 문재인 대통령 사저 부지 문제로 향했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일반인이 농지를 취득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건 농업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 농사를 짓겠다며 농지를 취득하자마자 대지로 전용해 저택을 짓는 건 보통사람의 눈엔 '특혜'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런 의혹 제기에 대통령은 "좀스럽고 민망하다"고 한다. "투기는 혜택"이라는 LH 직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진정성 없는 조 전 장관의 언행과 뭐가 다를까.

부패한 지도자는 국민을 타락시킨다. 또한 국민을 분열시켜 특정 집단의 정치적 권한을 증진시킨다. 분열된 사회에선 사회적 불안정 뿐만 아니라 부패가 쌓여간다. 이런 사회에선 정치인들이 일종의 민중주의적 정치이념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권력 독점을 위해 돈을 뿌리며 소수 계층을 매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거짓이 거짓을, 부패가 부패를 낳는 법이다.

박양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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