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변방 극복 `동북아 중심`표현 전면에… 북방의 꿈 또 다른 시작

한반도 통일땐 세력간 연쇄반응 필연
당시 美주도 일방적인 동맹재편 시도
노무현정부 동북아 균형자 상상 키워
한미동맹과 양립불가로 논란 불러와
국민에 자긍심·주체의식 자극 계기
韓외교 지금까지 '중심' 향한 도전
'중심지향' 국가전략으로 지속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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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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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변방 극복 `동북아 중심`표현 전면에… 북방의 꿈 또 다른 시작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변방 극복 `동북아 중심`표현 전면에… 북방의 꿈 또 다른 시작
정기웅 부단장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

통일한반도를 향한 한 걸음… 북방문화와 脈을 잇다

②유라시아 주도권과 신북방정책 (4)


노태우 정부 시기 태동해 김영삼 정부 동안의 일시적 후퇴를 거쳐 김대중 정부 시기에 되살아난 북방정책은 현상유지와 현상파괴라는 매우 모순된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 성격의 공존은 북방정책의 복합적 정체성과 결합하여 정부의 전략적 선택에 혼선을 초래하거나 이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다. 무슨 말인가?

먼저 외교·안보정책으로서의 북방정책은 현상유지적 성격을 갖는다. 외교적 수단을 활용해 일국의 안보를 보장받고자 할 때 많은 경우 세력균형정책을 추진하게 되는데, 세력균형은 본질적으로 현상을 변경시키기 보다는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성격을 갖는다. 즉 현상의 변화 없이 현재의 힘의 분포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안전을 보장받는데 유리하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동기획

한국외국어대학교 HK+ 국가전략사업단

디지털타임스




외교·안보정책으로서의 북방정책은 공산권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안전을 보장받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다음, 통일정책으로서의 북방정책은 현상파괴적 성격을 갖는다.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어낸다면, 이는 동북아 세력균형에 대한 직접적 변화의 요소로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남북한의 통일은 인구가 8000만에 이르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강력한 군사력을 겸비한 새로운 강대국이 동북아에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기준 전세계에서 인구가 8000만을 넘는 국가는 19개국이며, 이 중 동북아에 위치한 국가는 중국과 일본 두 나라 뿐이다. 그 밖의 아시아 국가로는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이 있다.) 이는 동북아 세력구도 변화 촉발의 원인으로 작동할 것이며, 필연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즉 남북한의 통일은 비단 한반도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들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나아가서는 아시아와 세계전체의 세력균형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결정적 사건으로서 존재한다.

이 두 가지 모순적 성격의 공존으로 말미암아 북방정책의 추진자는 정책 추진과 관련한 근원적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우리는 과연 현상변경을 원하는가?"이다. 통일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현상변경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우리는 과연 통일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될 수 있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그렇다'라고 한다면, 다음의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현상을 변경할 것이며, 이 속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개념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은 냉전 종식에 따른 환경 변화의 유동성이 극대화되던 시기였다. 동북아에 있어서의 양극체제가 붕괴된 후 미국이 유일한 절대패권의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중·일·러의 4강이 새로운 균형을 구축하기 위한 탐색과 신호보내기를 지속하는 가운데 작용(action)과 반작용(reaction)속의 유동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동북아의 세력균형(혹은 안정)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균형자로서의 미국'의 존재였다. 미국은 다른 3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큰 국력을 갖고 있었던 까닭에 균형유지를 위한 실질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었으며, 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안정시키는 것이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장 꺼리는 시나리오는 아시아 지역에 강력한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대아시아전략은 19세기 말 영국이 '영광스러운 고립(splendid isolation)'의 기치 아래 유럽의 균형자(balancer) 역할을 담당했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영국이 유럽대륙에서 벗어난 상태에 있으면서 유럽국가들 사이에 강력한 절대패권의 등장을 견제하는 균형자의 역할을 했던 것처럼, 미국은 동북아에서 절대패권의 등장을 견제하는 균형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한국외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미국의 균형자 역할은 한국의 생존을 위해 절대 필요한 조건이었다. 한국의 상대적 국력과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할 때 동북아에서의 절대패권의 등장, 즉 헤게모니 체제의 성립은 한국에게 치명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필수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이 동북아의 다른 강대국이 아닌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이 온통 선의(善意)로 가득한 '자비로운 패권(benevolent hegemon)'이라서가 아니라 19세기 영국이 유럽대륙과 영토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것처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정반대에 위치한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상의 변경(한반도의 통일)을 꾀하고자 한다면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을 감안한 새로운 관계설정이 필요하다. 균형자로서의 미국의 역할을 부인한다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의 창출이나 행위자의 등장이 필요하다. 약소국으로서 스스로가 운명의 결정자가 되기 힘들다는 피동적 체계구속성에 오래도록 사로잡혀 있던 한국으로서는 스스로가 그와 같은 균형자의 역할을 떠맡는다는 발상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합적인 국력의 성장과 시기적 상황 변화, 특히 당시 미국이 주도하고 있던 일방적 동맹 재편의 시도는 한국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동북아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상상하게 하였고, 발전과 함께 획득한 자신감은 상상을 현실화시킴으로써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의 역할을 스스로 자임하고 나서도록 만들었다. '동북아 균형자론'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2005년의 일이지만, 노무현 정부는 출범과 함께 '동북아 중심국가'를 표방함으로써 '동북아 균형자'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변방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의존의 역사를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습니다.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중심국가로 웅비할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 왔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살려 나가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동북아 중심국가'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사실 '동북아 중심국가'는 취임사에 등장하기 전까지 몇 번의 부침이 있었다.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세계화 바람과 함께 '세계중심국가'를 표방하였고, 김대중 정부 말기에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가 등장하였다. '동북아 중심국가'에서 '중심'이라는 용어가 주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취임사 이후에도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 등으로 변이되어 사용된 많은 경우들을 찾을 수 있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제는 스스로 '중심' 국가임을 표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오래 전 신라 선덕여왕이 '사방 9개국(1층부터 차례대로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적, 예맥)을 제압하여 그 조공을 받는 나라'를 표방하면서 황룡사 9층 목탑을 창건한 바 있고, 고려시대에는 '금국정벌론'과 '서경천도론'을 주장한 묘청의 난이 북방으로의 비전을 앞세운 바 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환구단을 설치함으로써 '천자의 나라'를 표방하였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말하고 있듯이 "오랜 세월… 변방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중심을 꿈꾸었던, 그러나 실질적 힘의 부족으로 그것을 현실화 하는 데에는 실패했던 사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변방의식'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우리가 '중심'임을 야심차게 주장했던 것이다. 일본의 와다 하루키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2년 후인 2005년 2월 기고를 통하여 동북아 중심국가론을 "한국에 맡겨진 역사적 사명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의의 표명이며 국민에 대한 제언"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중심'의 주장은 야심찼으나 현실은 모호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심'에 대한 해석을 놓고 다양한 견해들이 경쟁하였다. "물류중심, R&D중심, 금융중심 이라고 할 때의 중심은 허브(hub) 개념에 가깝지만, 변방의 역사를 극복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어(core) 혹은 센터(center)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 "도시차원에서는 허브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국가차원에서는 코어나 허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주장, "일본이 한 때 사용했으나 더 이상 쓰지 않는 '아시아태평양 중심국가' 혹은 '교량국가(bridging country)와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주장 등이 서로 충돌하였고, "세계화로 인해 '평평해진' 세상 속에서 중심국가라는 명분이 자리 잡을 기반 자체가 바뀌고 있다"라는 주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2021년 지금은 또 다시 지정학적 중요성과 지역적 독특성이 강조되고 있으나 노무현 정부 시기는 세계화의 진전이 극에 달해 있었던 까닭에 "변방의 역사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새로운 중심의 건설로 표현하기 보다는 '중심과 변방'이라는 차별적 구조 자체를 파괴하고 모두가 중심적 수준에 도달하여 중심이 따로 없는 구조를 창출해 내는 것," 즉 토머스 프리드먼이 주장한 "평평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 또한 많은 지지를 이끌어 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체계적 상황의 변화에 대한 피동적 반응으로서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주장, 그리고 '동북아 균형자론'과 한·미 동맹은 양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주장 등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중심국가' 개념은 국민의 자긍심과 주체의식을 자극하였으며,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고, 행동의 변화는 운명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동북아 중심국가' 탄생 이후 우리는 변방의 역사를 극복한 '중심'의 역사를 전면에 내세우게 되었고, 한국과 한국외교는 지금도 '중심'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북방에의 꿈은 이러한 '중심 지향'의 또 다른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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