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연예계 덮친 코로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012/20201216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연예계 덮친 코로나")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연예계는 취약 부문으로 지목됐지만 최근까지 큰 사건이 터지지 않았는데 이건 의외의 일이었다. 과거 신종플루가 유행할 당시에 아이돌들이 잇따라 확진되면서 연예계의 취약한 실태가 알려졌다. 활동 중인 연예인들은 매우 바쁘게 스케줄을 소화하기 때문에 면역력이 저하된 경우가 많다. 타인과의 거리 두기 또한 힘들다. 연예인들의 일이 보통 카메라 앞에서 마스크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호흡기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스태프들과 식사할 일도 많고, 분장할 때도 마스크를 쓸 수 없다. 그리고 연예인들의 일이 대체로 수많은 관계자들이 관여하는 집단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댄스가수는 댄스팀과 함께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춤을 춰야 한다. 마이크 잡고 큰소리 칠 일도 많다.
이래서 코로나19 초기부터 연예계가 취약 부문으로 지목됐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별일이 터지지 않았고 그래서 얼마 전엔 대규모 콘서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올 것이 온 느낌이다. 한 콘서트에서 확진자가 등장했고, 아이돌 스타들과 트로트 스타가 잇따라 감염되며 충격파를 안겼다. 이찬원 단 한 명의 확진으로부터 수많은 연예인들의 자가격리가 이어진 것을 보며 연예계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된 부문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터졌는데도 방송가에 아직 경각심이 부족하다. 최근까지 한 프로그램은 방청객이 있는 상태에서 녹화를 진행했다. 아무리 방청객들이 마스크를 썼다고 하지만 다중이 모이는 것 자체에 위험성이 있고, 같은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진행하는 연예인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였다. 방청객들이 환성이나 구호를 외치기도 했는데 그렇게 흥분하다 보면 마스크가 코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도 많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이런 집단 녹화를 진행한 것은 위험할 수밖에 없고, 시청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000명을 넘나들며 3단계 봉쇄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적 위기, 재난 상황인 것이다. 이럴 땐 모든 국민이 위기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 방송가는 취약 부문이라는 점에서 강하게 긴장해야 하는데, 더 나아가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특수 부문이라는 점에서도 더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방송에서 느슨한 모습이 나타나면 시청자의 경각심도 해이해진다.
연예인들이 나오는 쇼예능 뿐만 아니라 전문패널들이 함께 하는 시사프로그램이나 교양토크쇼 등도 문제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중국 방송사의 진행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방송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됐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거대한 인구규모에 비추어보면 당시 확진자 수가 현재 세계 상황처럼 많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한에서 거리가 매우 먼 베이징의 방송사에서 마스크를 쓰고 방송했다. 그때 우리나라 방송사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보는 시각으로 그 광경을 국내에 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마스크 쓴 진행자의 모습은 방역에 최선을 다 하는 모범적인 방송의 모습이었다. 그런 방송을 보며 국민들은 더욱 비상한 위기감을 가지고 방역에 임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방송가도 비상한 위기감으로 국민 앞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방송화면이 국민에게 보내는 비언어적 메시지는 매우 크다. 방송내용이 위기를 알리는 것이라도 시각적으로 평시와 같으면 위기가 체감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마스크 쓴 모습 같은 것으로 시각적 충격이 주어지면, 방송내용 이상의 위기감이 고취될 수 있다. 지금껏 하지 않았던 봉쇄까지 논의되는 상황이라면 방송가도 현재와는 다른 대응을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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