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태 디지털뉴스부 차장
![[DT현장] 호주는 한국과 달랐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12/2020120302102269607001[1].jpg "[DT현장] 호주는 한국과 달랐다")
다시 들어봐도 모욕적이다.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독립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 한마디에 돌아온 중국의 섬뜩한 반응이었다. 지금껏 호주와 중국과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 대선으로,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법치 파괴로 온갖 뉴스가 차고 넘쳤던 사이, 대체 호주와 중국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국굴기(大國堀起)가 아니라 백주대낮 '행패'를 부리는 중국에게서 '호주판 사드보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중국의 호주 때리기는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 정상들과 통화를 하며 코로나19 기원을 국제 조사하자는 방안을 지지하면서 중국의 대대적인 보복이 시작됐다. 지난 5월엔 호주의 4개 도축장에서 생산된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호주산 보리에 고율의 관세폭탄을 투하했다. 인적 교류에도 칼을 댔다. 중국 자국민에게 사실상 호주 유학과 관광을 금지했다. 또 호주산 와인을 비롯한 최소 7개 품목에 대해선 수입금지에 가까운 조치를 내렸다.
사실 호주의 치명적 약점은 호주경제가 중국에 종속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없으면 단 며칠도 버티기 힘들다. 실제 호주는 중국 굴기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수를 누렸다. 한국의 대중수출 의존도는 올해 26.7% 수준이다. 호주는 한국보다 더 높은 30%다. 호주의 대중무역 규모는 대미무역 규모보다 다섯배나 더 크다.
호주는 미국보다 7년 앞선 1972년에 중국과 수교했다. 광물자원과 농산품을 수출하고 중국은 공산품을 수출하는 상호호혜적 관계를 꾸려왔으며, 2015년에는 자유무역협정(FTA)도 맺었다. 한때 파리만 날렸던 호주의 철 원광석 산지는 2000년대 초반 중국 시장을 배경으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중국은 철도,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시설 확충을 위해 엄청난 양의 호주 원광석을 빨아들였다. 광산업은 사상최고의 호황을 누리며 호주 경기를 이끌었다. 호주는 굴기 중인 중국의 후광을 입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호주의 10대 수출품목인 관광산업과 교육산업도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130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호주를 방문해 15조 원을 썼다. 17만 명에 달하는 중국 유학생들의 돈주머니도 호주 대학을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호주와 중국과의 관계가 더 크게 뒤틀린 것은 중국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면서부터다. 호주도 5G 시장에서 화웨이를 배제하자 화웨이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1억 달러의 연구개발 투자를 중단하고 호주 내 직원을 1000명에서 200명 미만으로 줄였다. 차이나머니를 앞세운 보복이다.
우리에겐 꽤나 익숙한 장면이다. 중국은 2016년 7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국 배치 확정 이후 사드 운영 주체인 미국이 아닌 한국만 무섭게 때렸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중국 현지에서 공사 중단과 영업 중지라는 융단폭격을 당했다. 중국 단체 관광객도 사라졌다. '미들파워'인 한국이 그보다 힘센 중국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소위 '종주국 환상'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호주의 대응 방식은 우리와 달랐다. 모리슨 총리는 중국의 압박에 "우리 가치관을 강제로 팔아버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며 스파이 활동 혐의를 받는 중국인 학자들의 비자를 취소했다. 호주는 또 미국과 함께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인도 일본과 함께 '쿼드' 4개국이 인도양에서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기 위한 대규모 해상 합동군사훈련도 실시했다.
미국에서 바이든 행정부 출현이 가시화되면서 세계질서가 재편될 조짐이다. 사드 사태는 언제든 다시금 폭발할 이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댈 수 있다는 몽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영국과 미국이 시작하고 발전시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보다 더 나은 제도를 중국이 만들 수 있을까. 미중 사이 형식적 균형외교론은 한국을 더욱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호주의 대응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김광태 디지털뉴스부 차장 kt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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