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중국 애국주의 광풍, 선 넘는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12/20201202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중국 애국주의 광풍, 선 넘는다")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문제제기일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과 중국은 서로 총을 겨눴던 적군이었다. 중공군은 침략군일 뿐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전쟁 희생자를 기릴 때 적군의 희생을 기리는 경우는 없다. 적군을 기리면 적을 공격한 우리 애국자가 범죄자가 된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하며 국가적 차원에서 크게 기념하는데, 그때 미군과 한국군의 희생을 같이 기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물론 아니다. 철저하게 중공군의 희생만 기린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인과 한국인들이 중국에게 '왜 우리 희생을 무시하느냐'고 따진 적이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국 일부 누리꾼들은 막무가내로 방탄소년단이 중국을 무시했다면서 공격했다. 동서고금에 듣도 보도 못한 '막가파' 논리다. 이걸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받아서 더 키우고, 심지어 대형 택배 회사에서 방탄소년단 관련 상품 배송을 거부하면서 애국주의에 편승하기도 했다. 한 대학에서 방탄소년단 관련 강의를 삭제하라는 압력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러한 공세를 진화하려는 듯한 입장을 취했지만 중국 내 애국주의 신드롬은 계속 이어졌다.
바로 이어 터진 사건은 한복 논란이다. 중국 게임사가 최근 출시한 게임 안에 한복 의상이 있었다. 중국 일부 누리꾼들이 '한복은 중국의 전통 의상인데 게임사가 이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중국 내 여론이 악화되자 해당 게임사는 "중국 기업으로서 우리의 입장은 항상 조국(중국)과 일치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면서, 한국 누리꾼들이 한복 문제로 비판한 것을 문제 삼고 '국가의 존엄성을 수호한다'며 한국 서비스를 중단해버렸다.
자국 시장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중국 안에서 게임 주소비자들인 젊은 남성 누리꾼들이 애국주의 광풍을 보이니, 그에 호응하는 것이 한국 시장을 잃는 것보다 이익이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 상품 배송을 거부한 택배 회사도 역시 이런 애국주의 마케팅을 택한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했다가 중국으로 돌아갔거나 돌아갈 예정인 중화권 아이돌도 이런 애국주의 마케팅에 나선다. 중국의 국가존엄성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SNS에 밝히는 것이다. 그런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중국 누리꾼들의 공격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런 애국주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중국의 일부 10·20대 누리꾼들이다. 주로 동부 연안 대도시가 아닌 내륙 지대 거주자들이라고 알려졌다. 이들은 중국이 급속히 경제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부심을 키웠고, 중국이 세계 최강최고라는 내용의 중화사상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렇게 해서 애국주의가 커졌는데, 동부 연안 대도시 젊은이들은 서구문화를 많이 접하며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을 갖추지만 내륙 젊은이들 사이에선 그런 브레이크 없이 맹목적 애국주의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런 애국주의를 이용하려는 중국 정부의 행태도 문제다. 요즘 미국과 무역전쟁이 터지자 반미애국주의를 고취해 자국민을 다잡으려 했다. 방탄소년단 수상소감 사건도, 중국이 항미원조전쟁 기념 열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가운데 벌어진 것이었다. 이런 애국주의가 광풍으로 번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야말로 '막가파'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 한복을 중국 것이라고 우기는 게 대표적이다. 역사 전문가가 아닌 일반 누리꾼들이 한복을 자기들 전통의상인 '한푸'의 일종이라거나 또는 중국 내 소수민족의 옷이기 때문에 중국문화의 일부라는 식으로 억지 주장을 일삼는다. 그들의 수가 많고 목소리가 크니 거기에 영합하는 중국 기업들이 나타나서 일이 더욱 커진다.
이런 황당 애국주의를 방치하면 한중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사적으로 제국의 강점은 바로 '관대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일부 애국주의 누리꾼들이 보이는 모습은 편협함의 극치다. 대국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주위 나라들의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자해 애국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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