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범 내려온다` 이날치 신드롬](http://contents.dt.co.kr/images/202011/2020111802102269660002[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범 내려온다` 이날치 신드롬")
그동안은 빅뱅, 엑소, 이종석, 송중기 등 대형 한류스타를 기용하고 많은 제작비를 들여 한국홍보 광고를 제작해왔다. 이런 방식은 스타의 이름값으로 화제를 일으키지만 팬덤을 넘어 해외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으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날치 밴드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국내외 어디에서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출연료가 한류스타보다 적고, 영상 제작비도 스타 출연 CF보다 훨씬 저예산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이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한류스타 광고보다 더 큰 홍보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선 우리 국악이 재조명되는 중이다.
이날치는 명창 이경숙의 별명이다. 조선 후기 판소리 8대 명창 중의 한 명으로 몸이 날래서 '날치'라고 불렸다는 설이 전해진다. 흥선대원군의 부름으로 어전 공연도 했다고 한다. 1995년 세상을 떠난 김소희 명창이 이날치 소리의 맥을 이었다. 이날치 밴드는 2019년 결성 당시 바로 그 이날치 명창의 이름을 따서 팀명을 지었다.
기존 국악보다 날랜 소리, 즉 현대화된 퓨전 국악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밴드 결성부터 두 명의 베이시스트가 주도했다. 우리 전통악기 연주자가 아닌 서양 전자악기 연주자인 것이다. 이것만 봐도 이날치 밴드의 소리에 서구적 리듬이 섞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밴드에 리드기타가 없고 베이스와 드럼뿐이다. 평키하고 그루브한 현대적 리듬을 구현하고 그 위에 국악을 얹었다.
노래는 전통 판소리의 한 대목을 재구성한 것이다. 우리 소리가 평키한 리듬을 만나 어깨춤을 참을 수 없는 흥을 만들어냈다. 누리꾼들은 '조선의 힙합'이 나타났다며 열광했다. 이날치 밴드는 처음에 '클럽에서 판소리로 떼창을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판소리 클럽 공연 떼창도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히트곡은 '범 내려온다'인데 '1일 1범'이라는 신조어까지 나타났을 정도로 높은 중독성을 자랑한다. 원곡은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으로 별주부 자라가 토끼를 '토선생!'이라고 부르려다 힘이 빠져 '호선생'이라고 부르자, 호랑이가 자신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해 산에서 내려온다는 내용이다.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인데 그것을 경쾌한 리듬으로 풀어내며 역시 우스꽝스러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안무를 결합시켰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것이 요즘 유행하는 B급 콘텐츠의 특징 중 하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도 우스꽝스러운 느낌으로 대히트했다. 한국관광공사는 B급 취향을 목표로 하면서도 만듦새는 허술하지 않은 'B+(B 프리미엄)'급 영상을 만들어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 : 젊은 세대를 통칭)의 관심사에 부응하려 했는데 그게 대박을 친 것이다. 누리꾼들은 모처럼 세금을 잘 썼다며 관광공사에 찬사를 보낸다.
현대적 B급 감각도 물론 중요하지만 핵심은 판소리다. 판소리는 애간장을 녹이는 소리부터 랩을 방불케 하는 흥겨운 소리까지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는 소리예술의 보고다. 그중의 일부를 재가공한 것만으로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마침 서구에선 보다 다양한 문화에 귀를 기울이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이 한국어 노래로 세계 최고 스타가 되고 '기생충'이 한국어 영화로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은 것이다. 그들에게 이날치 밴드의 국악은 경악할 만한 소리의 신세계로 다가갔다. 서구식 음악에만 익숙해진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범 내려온다'와 같은 소리가 신선한 트렌드로 들렸다. 그래서 신드롬이 터진 것이다.
국악의 생명력이 아직도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적 변용을 통해 얼마든지 트렌드의 최전선에 설 수 있다. 서구인들에겐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문화로 충격을 안겨줄 수 있다. 현대적 국악팀인 씽씽 밴드의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도 서구에서 주목받았었다. 관심과 지원만 이어진다면 국악이 미래 문화의 한 젖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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