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핼러윈을 탓하기 전에](http://contents.dt.co.kr/images/202011/20201104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핼러윈을 탓하기 전에")
그럼에도 핼러윈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을 막지 못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 이태원 일부 거리는 인파에 떠밀려 이동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클럽이 문을 닫자 젊은이들은 일반 술집으로 몰려들었다. 부산에서도 클럽과 감성주점 폐쇄 풍선효과로 실내포차 등의 주점에서 무질서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핼러윈이 무엇이길래 이 땅의 젊은이들이 감염의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열광하는 걸까?
원래 고대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이었다. 켈트족 문화에선 10월 31일이 그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때 유령이 출몰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악령이 해치지 못하도록 스스로 악령처럼 무섭게 분장하고 제를 올렸다. 이것이 축제로 변형돼 인기를 끌자 로마 기독교가 받아들여 핼러윈으로 발전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 이민자들이 당시 북아메리카 대륙에 흔했던 호박으로 악령 모양 등불을 만들었다. 이것이 '잭의 랜턴'(Jack-O-Lanterns)으로 핼러윈의 상징이 됐다.
신생국가여서 자체 명절이 없던 미국에서 핼러윈은 모든 이민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들이 무섭게 분장하고 이웃집에 찾아가 'Trick-or-Treat'이라고 외치며 사탕을 얻는 문화도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에 클럽 문화가 태동하면서 핼러윈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2000년대에 성행한 영어유치원과 영어사교육 업체들이 핼러윈을 챙기면서 더 보편적으로 퍼져갔다. 이때부터 영어와 서구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이 많아졌고, 조기유학 갔던 젊은이들이 대거 돌아온 것도 핼러윈 열풍에 일조했다. 연예인들이 핼러윈 분장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것도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마침 B급문화가 펴져가던 시절이었다. 핼러윈 분장은 그런 B급 유희 코드하고 맞아떨어졌다. 21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클럽문화와 이태원, 홍대 등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 문화에서도 핼러윈은 중요한 그들만의 파티 기념일로 자리매김했다. SNS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습을 찍어 공유하는 인증샷 문화가 번성했는데, 핼러윈 분장 사진이 그런 인증샷에도 제격이었다. 처음엔 악령 분장이었지만 점점 분장 그 자체의 의미가 강해져 캐릭터 분장으로 진화했다. 키덜트 캐릭터 유희 문화하고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유통업계, 클럽업계의 마케팅까지 겹쳤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핼러윈은 트렌드를 중시하는 젊은이들에게 놓칠 수 없는 신종 명절이 되었다. 해마다 핼러윈이 되면 이태원과 홍대 앞은 인파로 가득했다. 그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파티를 즐기면서 핼러윈 무질서와 일탈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 날은 핫플레이스의 경찰 출동 횟수가 평소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 명절 이상으로 서양 기념일에 열광하는 것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 명절이 요즘 젊은이들 유희문화와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명절은 농업공동체 사회에 기반한 세시풍습 또는 조상과 연결된 것들이 많다. 젊은이들이 흥을 발산시킬 만한 계기가 우리 전통에선 부족한 것이다. 한 마디로 '미친 척'하고 놀 만한 날이 없다.
핼러윈은 얼굴 분장이나 가면으로 평소와 다른 모습이 되거나 아예 익명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일상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졌다. 평소에 억눌려 지냈던 젊은이들이 이날만은 마음껏 일탈을 즐기며 맺힌 것을 풀었다. 그러다 보니 과도한 음주, 무질서로 이어진 것이다. 엽기분장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일탈 에너지가 이번엔 코로나19 방역 무시로 나타난 것이다. 평소의 자제심을 버리고 폭주하는 심리를 이용한 핼러윈 상술도 나타났다. 바가지요금이다. 아이들의 분장 비용이 점점 과대해지면서 부모에게 '등골브레이커'의 날이 되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유희 욕구를 서양 기념일이 아닌 우리 내부에서 해소할 방안은 없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핼러윈을 신종 기념일로 인정하더라도 과도한 일탈을 막을 길에 대해선 논의해야 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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