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 차장
![[현장리포트] 美대선까지 번진 배터리 집안싸움](http://contents.dt.co.kr/images/202011/2020110302101132781001[1].jpg "[현장리포트] 美대선까지 번진 배터리 집안싸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분쟁에 관여치 말아야 한다(Trump Should Stay Out of Korean Dispute)'는 제목의 글이 보였다. 전체 맥락은 기업 간 소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작문 형식이었고, 원론적으로는 옳은 말이었다.
하지만 현지 유력 언론사에 그것도 기고문 형식으로, 그 나라 대권 주자의 정치적 멘트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워 보였다. 헐리우드 스타 앤 해서웨이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했다고 홍콩 누리꾼들이 비난하기까지 하는 시대다. 유명 연예인이 자국 대선 후보를 응원했다고 외국에서 욕먹는 세상이다.
본 의도가 아니더라도 기업 임원이라면 정치적 '선'을 지키는 데 더 조심했어야 했다. 자연인으로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조직의 이익을 생각했다면 조금은 신중해야 했다.
한편 생각해 본다. 오죽했으면 저랬을까.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결말이 오는 12월 10일로 연기되면서 양사 간 피로도는 극에 달하고 있다.
양 사 간 법적 다툼은 3년째 진행 중이다. LG화학은 앞서 지난 2017년 10월과 2019년 4월 등 두 차례에 걸쳐 SK이노베이션 측에 '영업비밀·기술 등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를 중단해달라'며 내용증명 공문을 발송했고, 2019년 초에는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을 상대로 제기한 전직금지가처분소송에서 최종 승소하기도 했다. 이후 양 사는 치열하게 다퉜다. 서로 국익을 주장하며 여론전을 펼쳤고, 심지어 양사 총수까지 나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이다.심지어 협상을 위해 정부까지 나섰지만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ITC의 결정 지연에 난타전이 계속되니, 이제는 소위 '누가 먼저 때렸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최근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에 온갖 루머가 난무하고, 외신이 이를 대서특필할 지경이다. 결국 서로 흠집만 남는 '상처 뿐인 승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사실 가장 무서운 적은 중국인데 말이다.
중국 업체들이 한국 배터리 인재 영입을 위해 '돈 보따리'를 풀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2015년부터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최근에는 유럽업체까지 영입전에 나섰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한국 배터리의 경쟁력이 강하다는 것을 반증하지만, 수년 전까지 존재감이 없었던 중국이 세계 1위까지 급성장한 것을 보면 '자중지란에 어부지리'를 내줄 까 걱정이다.
전기차용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로 주목받기 시작한 지금, 이번 공방은 '배터리 코리아'를 위한 성장통일 수도 있다. 지적재산권도, 생태계 조성도 하나 뺄 것 없이 중요하다. 선의의 경쟁자도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그 경쟁은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배터리 시장을 지켜본 지 벌써 8년 째,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K-배터리 산업을 키우기 위해 소모적인 공방보다 그 다음을 준비하면 어떨지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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