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칼럼] 역사의 제단에 침 뱉을 일 하지 말라

박양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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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 칼럼] 역사의 제단에 침 뱉을 일 하지 말라
박양수 수석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평소 화법을 보면 하나의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자신의 일인 데도 마치 딴 사람 일인 것처럼 딴청을 피우고, 거리를 두는 것이다. 세간에선 '제3자 화법'이라고 부른다. 혹자는 '핵심 본질 두루뭉술 피해가기'라고 한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제1회 청년의날 기념식이 압권이자 백미였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청년들의 분노를 듣는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 같은 불공정의 사례들의 본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불거진 '인천국제공항(인국공) 사태'를 거론했다. "하나의 공정이 다른 불공정을 낳는다"며 "공정이 촛불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고 했다. '공정'이란 단어를 37번이나 언급했다. 중계방송을 보던 중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대통령 자신이 불공정을 만든 장본인이란 걸 정녕 몰라서 하는 말일까.

문 정권의 불공정 사례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드루킹 사건' '조국 사태' '윤미향의 회계 비리 의혹'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군 휴가 특혜의혹'에 이어 최근 불거진 '이스타항공 미스터리'까지 차고도 넘친다. 사건 하나 하나가 국가 법 질서와 기강, 국민의 도덕의식을 뒤집어 놓을 만큼 초(超) 태풍급이다. 가관인 건 사건 당사자들이 멀쩡하게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들이 현 집권층에 대해 분노하고 좌절하는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불공정, 부정의 사건이 규명되고 단죄되지 못한 채 묻히고 있다는 허탈함 때문이다.

희망의 반대말은 좌절이 아니라 죽음이다. 희망이 없는 삶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희망 고문'처럼 '희망 타살'이라 하겠다. 요즘 젊은이들이 정부에 좌절한다는 건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한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라이트 형제가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비행에 도전했던 건 언젠가는 인류가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란 믿음과 희망이 있어서였다. 국민이 원하는 건 정부가 거저 주는 재난지원금이 아니다. 힘들더라도 자력으로 벌어 먹을 수 있길 바란다. 기업인은 오늘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내일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기에 투자하고, 인재도 뽑는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성공에 대한 보장이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선 이런 전통적 믿음이 모두 깨져 버렸다. 사회비리와 불공정을 목격한 청년들은 '용'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와 붕어로 살아야 하는 처지임을 문득 깨닫는다. 노조가 득세하는 세상에 기업인들은 언제 해외로 공장을 옮겨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강남에 사는 집을 포기하지 못하는 청와대 고위층과 국회의원을 보면서 집 한 칸 마련하겠다는 희망마저 걷어차인 무주택자는 서럽기만 하다.

문 정권에서 보이는 두 번째 패턴은 사건 당사자들의 뻔뻔함이다. 이들은 사건이 터지면 일단 부인한 뒤, 어용 패널과 요설가들을 동원해 음모론을 퍼트린다. 조국이 그랬고 윤미향, 추미애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음 단계는 '검찰 개혁' '토착 왜구 척결' 등 사건 자체를 압도할 더 강력한 프레임을 던진다. 윤석열 검찰총장, 이용수 할머니, 당직 사병 등이 그 희생양이 됐다. 이들은 마치 각종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박테리아처럼 자신을 적대시한다고 생각되는 외부 세력에 대한 저항력을 더욱 키워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작 문 정권이 망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집권 후 이전 정권의 구(舊) 적폐를 청산했을진 모르나 정작 자신들이 더 큰 신(新) 적폐를 쌓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아무리 강력한 권력이라도 십 년을 가지 못한다. 오만과 독선으로 권세를 누린 주역들은 비참한 말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한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 저항으로 자진 하야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은 모두 감옥 신세를 면치 못했고,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가장 비참했던 건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다. 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가 검찰개혁 등 권력기관 재편에 집착하는 것도 노 대통령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이유에서일까. 어쩌면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검찰개혁'의 어두운 본질일지도 모른다.

사상 최악의 독재자였던 독일 나치당의 히틀러는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동의 속에 탄생했다. 국민 의 절반인 49%가 나치를 지지했다. 하지만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의 영향이 몰아닥치자, 국민의 불안 심리를 파고들어 유대인을 적으로 돌리고 나치당을 절대 권력화하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는 현 정권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늘 열심히 지지할지는 몰라도, 역사의 제단 앞에 신발이 아니라 침 뱉는 국민이 없지 말란 법도 없다.

박양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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