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조영남 대작, 비난받아야 하나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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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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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조영남 대작, 비난받아야 하나
하재근 문화평론가
조영남 복귀 방송이 논란이다. 최근 '뽕숭아학당'에 무려 5년 만에 방송출연했는데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조영남은 2016년에 다른 사람에게 대작시킨 작품을 팔아 1억 5000여만 원을 챙긴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선 유죄에 집행유예가 나왔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 무죄가 나왔다. 누리꾼들은 아무리 법적으로 무죄라 할지라도 대작을 한 것 자체는 확실히 잘못 아니냐며 조영남의 방송출연이 부적절하다고 했다. 조영남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재판 때문에 5년 만에 방송에 나왔다고 농담하듯 말하며 '너희들은 화투 가지고 놀지 마', 이런 식으로 자신의 혐의를 희화화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불편했다는 시청자들이 있다.

조영남의 대작이 사실상 사기라는 판단이 자명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이런 비난이 여전한 것이다. 처음 논란이 터졌을 당시 모든 매체에서 조영남의 사기죄를 기정사실처럼 보도했고, 어떻게 자신이 그리지 않은 작품을 자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수많은 방송 패널들이 준엄하게 질타했다. 대작한 사람이 진짜 미술가라며 '화백'이라고 부르고 조영남은 일개 범죄자 취급했다. 무려 5년이나 활동중단하고 고초를 겪었지만 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그대로다. 앞으로도 조영남은 오명을 쓴 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부당하다. 대작을 사기라고 보기 어렵다. 조영남에게 씌워진 사기범죄자 오명도 부당하고 검찰이 조영남을 기소한 것도 부당하다. 사람들은 미술가가 직접 한 땀 한 땀 예술혼을 불태워 완성한 작품만이 그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건 전통적인 관념이다. 과거에도 조수가 있었기 때문에 100% 작자가 다 그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과거엔 아름답고 조화로운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런 그림을 형상화할 수 있는 미술가의 능력, 재능이 찬탄의 대상이었다. 이런 구도에선 남이 잘 그린 그림을 자기가 그렸다고 속이면 당연히 사기다. 이게 현재까지 통용되는 상식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상식에서 벗어났다. 이젠 누구 손으로 형상화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가가 중요하다. 미술이 사고활동, 즉 철학과 비슷해졌다. 그래서 현대미술 작품은 감각적 감동을 전해주는 전통 미술 작품과 달리 괴상할 때가 많다. 감동은커녕 불쾌감을 초래하거나 쓰레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장에서 찍어 마트에서 파는 공산품을 사서는, 그게 자기 미술품이라고 주장해도 되는 게 현대미술이다.

단, 그게 자기 생각이어야 한다. 남의 생각을 도용해선 안 된다. 조영남의 화투 그림이 남의 생각이라면 문제다. 그게 조영남의 생각이 맞는다면 작업할 때 누구의 손이 활용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현대미술에 반대할 수 있다. 현대미술이 사기라고 해도 된다. 다만 그런 논의는 공론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건 미술철학의 논의 주제다. 그런데 한국에선 검찰이 나섰다. 황당하다. 미술의 작업방식을 검찰이 정해주겠다는 말인가? '다음 중 미술가의 작업형태로 올바르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인가? 검찰의 만용이다.

물론 현대미술의 특징이 그렇다고 해서 전통 미술적 특징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두 가지가 공존한다. 그러니까 예술은 다양한 관점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단 하나의 정답을 강요했다. 비예술적이다.

만약 조영남이 전통적으로 작업하다 고소당하고 뒤늦게 현대미술가 행세를 했다면 문제인데, 조영남이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자신이 현대미술 팝아트 작가라고 이야기한 기사가 있다. 미술 관련 저서에서도 팝아트를 이야기하고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양말짝'도 예술이라고 했다. 현대미술 작가로서의 분명한 자의식이 있는 것이다. 조영남은 1973년에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미술에 천착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연예인이 유명세로 돈을 벌기 위해 대작 작가를 이용해 사기를 쳤다'고 치부하는 건 무리다.

조영남 대작과 관련된 논란으로 우리나라의 미술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다음 중 인상파가 아닌 화가를 고르시오.' 이런 교육이나 하니까 현대미술의 예술담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조영남은 원래 한 명의 아트테이너 정도로 분류돼 조용히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회적 질타를 당하고 사법적 고초까지 겪으면서, 당대의 상식과 불화해 고난을 당한 아방가르드로 역사에 남게 됐다. 검찰이 조영남 얼굴에 금칠을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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