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블랙페이스 논란과 선진국](http://contents.dt.co.kr/images/202008/20200819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블랙페이스 논란과 선진국")
하지만 단순 묘사도 충분히 문제가 된다. 얼굴을 검게 칠하는 것이 '블랙페이스'라고 불리며 서구에서 대표적인 흑인차별 코드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행위 자체가 그렇게 규정되고, 많은 흑인들이 거기에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그런 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 걸그룹 마마무도 블랙페이스 논란에 휘말렸었다. 콘서트에서 브루노 마스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 얼굴색까지 분장한 것이 해외팬들 사이에서 문제가 됐다. 결국 마마무 측에서 블랙페이스에 대해 사과하고 해당 퍼포먼스를 공연 레퍼토리에서 삭제했다.
이런 논란을 요즘엔 문화적 전유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문화적 전유는 기본적으로 '다른 문화집단의 문화를 이해나 존중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을 뜻하는데, 그 문화권 사람을 배제하거나 여러 차별적 표현 등을 포괄적으로 일컫기도 한다. 가나의 장례 행사팀 문화나 브루노 마스의 콘텐츠를 가져다 쓰면서 흑인에 대한 존중 없이 블랙페이스 표현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블랙페이스라고 단순하게 규정해버리면 우리는 억울하다. 블랙페이스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미국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참혹하게 차별하면서, 전통 악극에선 백인 배우가 흑인 분장을 하고 흑인을 조롱했다. 그런 배경에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하는 것이 흑인 차별이라고 60년대 흑인 민권 운동 시기에 규정된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흑인을 노예로 부린 적도 없고, 흑인을 조롱하는 전통악극도 없다. 한국은 제국주의 열강에 침략당했던 나라고, 동양인은 차별을 많이 당하는 인종이기도 하다. 그런 우리에게 미국 백인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똑같이 들이대며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또, 미국 등 서구권에선 블랙페이스 문제가 일반화돼서 이게 차별이라는 걸 대부분 인지한다. 이런 속에서 그 행위를 하면 의도적 조롱이라는 걸 모두 알 수 있다. 반면에 한국인은 블랙페이스가 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얼굴에 검은 칠을 해도 조롱의 의도가 없을 수 있다. 실제로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들은 오히려 흑인을 존중하는 의미로 검은 칠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맥락과 배경이 다른데 무조건 블랙페이스라고 비난하는 건 문제가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코드는 도리 없이 우리도 신경써야 한다. 우리에게 비하의 의도가 없다 해도 많은 해외인들이 그것을 비하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과거엔 한국에서 어떤 표현이 나오든 국제적 관심이 없었다. 이젠 아니다. 문화적 전유 또는 차별 비하 논란은 주로 후진국이 선진국에게 제기한다. 그래서 미국과 서구 백인들이 언제나 표적이었다. 한국도 미국 대중문화산업계에 의해 폄하된 적이 있다. 한국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한국의 콘텐츠도 마치 미국 콘텐츠처럼 주목 받기 시작했다.
바로 그래서 노라조가 얼마 전 무려 10년 전 노래인 '카레' 때문에 인도인들에게 사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신경 쓰지 않았었지만 이젠 문제가 된 것이다. 블랙핑크는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의 바닥에 놓인 소품이 힌두교 신상처럼 보일 수 있다는 지적에 즉시 사과하고 삭제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폄하코드나 각 문화권별 금기 같은 것에 무신경하다면 앞으로 더 많은 논란이 터질 것이다.
미국 대중문화산업계는 세계에 콘텐츠를 팔아오면서 문화권별 금기 사항에 대해 데이터베이스를 쌓아왔다. 워낙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판은 무시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무시할 정도의 국력도 아니면서 블랙페이스도 모를 정도로 학습이 부족한 상태다. 숱한 차별과 가해의 역사 속에서 차별 표현에 대한 예민함을 길러온 서구권과 달리, 우린 침략과 차별을 당했던 역사라 우리의 차별 표현에 대해서 둔감하다. 한국의 위상이 급상승했기 때문에 이젠 그래선 안 된다. 차별 문제에 예민해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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