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양측 증거·서류 서로 공개
핵심 피해증거 확보 가능한 제도
도입땐 분쟁 조기해결 기여할듯
핵심 피해증거 확보 가능한 제도
도입땐 분쟁 조기해결 기여할듯
지난 2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이차전지 영업비밀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대기업의 특허소송이 한국이 아닌 제3국인 미국에서 진행된 것을 두고 업계에선 의아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ITC와 연방법원에 특허소송을 제기한 결정적인 이유가 국내에서는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韓 특허침해 시 증거확보 어려워…시간·비용 과다 '소요'= 디스커버리 제도는 미국 민사소송에 적용되는 증거조사절차로, 소송 당사자가 소송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획득하고, 보전하기 위해 서로 각종 정보와 문서 등을 교환하는 절차를 일컫는다. 만약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정모욕죄, 상대방 주장의 인정간주 등 강력한 제재가 뒤따른다.
해외에서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일본 등이 디스커버리 제도와 같은 강력한 증거확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디스커버리 제도와 같은 증거확보 수단이 미흡해 특허 침해를 입었더라도 피해 입증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특허침해에 따르는 증거 대부분을 특허 침해자가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송 과정에서 자본과 인력 등에 취약한 중소·벤처기업, 스타트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대기업 등 우월한 지위에 있는 침해자에 비해 증거 및 정보 불평등 현상이 심화될 수 밖에 없어 스스로 피해 입증을 책임져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특허 침해업체들은 공판 전에 상대 측이 무슨 증거와 증인을 제출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반박할 만한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지난 2016년부터 자료제출명령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정작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명령불복에 따른 제재 부족, 절차지연 방지 수단의 미비로 증거확보에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탄력받는 'K-디스커버리'…하반기 법제화 추진= LG화학-SK이노베이션 소송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힘이 실리고 있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될 경우, 분쟁해결의 효율성이 확보되는 것 뿐만 아니라 특허침해 입증부담이 완화되고 결과적으로 분쟁을 조기에 종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LG화학-SK이노베이션 소송에서 드러났듯, 국내에서 증거 확보가 어려워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데 따르는 막대한 소송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실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미국에서 진행한 영업비밀·특허 소송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주무부처인 특허청은 하반기중에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특허법 개정안을 마련해 의원입법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특허청은 미국 등 해외 주요국의 재판 전 증거개시제도와 기업, 법조계 등의 의견을 검토해 우리 제도와 잘 융합되면서 과다한 비용과 시간 소모 없이 효과적으로 특허침해에 따른 손해액 산정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제도도입에 착수했다. 특허청 내부에서는 자료목록제출 등 현행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과 독일의 '전문가 증거조사', 영국의 '자료목록·자료교환' 등을 접목해 국내 실정에 맞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최재식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박사는 "국내에서도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는 오랜 기간 동안 이뤄졌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이미 도입한 징벌적 배상제도와 손해배상액 현실화 법안 등과 함께 지식재산을 강력히 보호하고,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지식재산 시장활성화에 기여하는 제도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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