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국가R&D혁신법 `연구혁명` 부싯돌 돼야

이재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변호사·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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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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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국가R&D혁신법 `연구혁명` 부싯돌 돼야
이재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변호사·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춘추전국시대는 '극도의 혼란기'를 비유할 때 쓰인다. 국가R&D규정도 어찌 보면 춘추전국시대와 같았다. 부처별·사업별로 100여 개의 고시·훈령·규정 등 행정규칙이 시행돼 관리체계가 복잡하고 상이하다 보니 연구자들의 불편과 부담이 컸다. 국가R&D규정의 춘추전국시대는 지난 5월 20일 국회를 통과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으로 통일됐다. 연구개발 통합법 제정 시도가 불발된 지 20년 만이다. 이제부터 국가R&D과제에 관한 프로세스는 혁신법 제정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신법 제정 이전에는 R&D 혁신의 방향성과 철학, 국가R&D과제 관리에 관한 종합적 기준을 담은 기본법이 사실상 없었다. 2001년 통합법이 아니라 과학기술기본법의 대통령령인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으로 시작한 R&D과제 공통규정만으로는 각 부처와 사업별로 R&D과제 관리규정을 운영하는 상황을 개선하고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연구환경을 조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혁신법 제정으로 이제 '기획-선정-수행-평가-보상-행정'의 국가R&D과제 수행 전 단계에서 연구자 중심으로 혁신이 이뤄진다. 연구자의 자율·창의를 확대하는 동시에, 각 부처의 개별 국가R&D 관리규정을 일원화한다. 모든 국가R&D과제에 적용되는 원칙과 기준을 확립해 우리나라 최초의 R&D규정 천하통일시대를 열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R&D과제 수행과정 전반의 비효율과 불필요한 부담이 제거된다.

혁신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R&D사업의 추진에 관해 다른 법률보다 혁신법의 내용을 우선 적용하고, 각 부처는 소관 국가R&D사업 추진에 필요한 법령 및 법령에서 위임한 사항과,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정한 훈령·고시·지침 등을 제정·개정·폐지할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와 협의해야 한다. 부처별·사업별로 다른 국가R&D과제 관리기준과 원칙을 통일하고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모호한 규정 적용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각 부처는 국가R&D 관련 법령 등이나 각종 시책을 운영하되, 이에 대한 연구기관이나 연구자의 민원사항을 처리하는 경우 혁신법의 목적과 입법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 누구든지 각 부처의 R&D제도에 대해 개선을 제안할 수도 있다. 또한, 각 부처는 연구관리전문기관별·연구기관별 내부규정을 개선하도록 권고할 수 있게 돼, 개별 연구기관별로 운영하는 규정이 현실과 맞지 않아 연구자를 불편하게 하는 문제가 빠르게 개선될 수 있다.

셋째, 국가R&D과제는 예측 가능하면서도 수요를 고려한 공모 추진이 원칙으로, 신규 과제 추진 등에 있어 사전예고를 통해 과제 기획과 수행의 내실화를 추구한다. 연구자들은 통합정보시스템을 통해 단일 창구에서 R&D과제 정보를 열람하고, 미리 연구진을 구성하고 연구계획을 구상해 초기 과제 수행 준비를 탄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존 연 단위 획일적인 R&D과제 평가에서 벗어나 과제별 특성에 따른 연구개발주기를 '단계'로 설정 가능하고, R&D과제의 추진목적·성격 등을 고려해 연구개발비 지급 횟수, 시기, 지급 조건·방법 등을 정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연구자의 자유로운 R&D 수행과 우수한 성과 창출이 기대된다.

넷째, 연구기관이나 연구자는 국가R&D과제 참여제한 등의 제재처분에 대해 이의가 있는 경우 먼저 해당 부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연구자 권익보호·연구 부정방지 및 제재처분의 적절성 검토 등을 위해 과기정통부장관 소속으로 설치한 위원회의 조정을 거칠 수 있다. 제재처분 심사 시 연구자에게 소명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행정소송 외에 선택할 수 있는 구제절차로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혁신법은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내년 1월 1일 법 시행에 맞춰 시행령을 준비하려면 6개월은 길지 않다. 혁신법 시행령에는 각 부처 R&D과제 관리에 공통 적용되는 세부사항들이 기술될 것이다. 부처별·사업별 특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는 경우 별도 규정을 두는 예외도 허용 가능하겠으나, 부처별 특성을 반영하는 사항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입법 취지 중 하나인 규정 간소화를 위해서다. 그만큼 연구현장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법 운영 시에는 입법 취지가 왜곡되지 않고 현장에 전달되도록 지속적인 현장 의견수렴과 모니터링도 필수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개별 부처-연구기관·연구자로 구성되는 국가R&D 주체 간 유기적인 협업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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