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정경부 기자
![[DT현장] 더 내려놓을 국회의원 특권 없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005/2020052602102269044001[1].jpg "[DT현장] 더 내려놓을 국회의원 특권 없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19대 대선으로 이뤄진 10년 만의 정권교체, 여야 자리를 바꿔 앉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미래통합당(옛 자유한국당)은 새롭게 부여받은 역할을 낯설어했다. 야당을 설득해 국정을 이끌어가야 하는 여당은 여당답지 못했고,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야당은 야당답지 못했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20대 국회는 그러나 많은 일을 해내지는 못했다. 법안 처리율은 30%대에 머물렀고, 1만5000여건이 넘는 법안이 폐기물 신세가 됐다. 20대 국회 4년 동안 그 '다사다난' 중에서 과연 국민을 위한 일은 얼마나 있었을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회사무처가 국민 1만5880명과 전문가 82명을 대상으로 '20대 국회가 가장 잘 한 입법'이라는 주제의 설문조사(1분야 2표 복수응답)를 진행했다. 20대 국회에서 처리한 8500여개(5월14일 기준) 입법 중 상임위원회(전문위원실) 추천, '입법 및 정책개발 시상' 우수 법률 등을 취합해 △정치행정 △경제산업 △사회문화환경 3개 분야 32개 입법을 후보로 선정해 국민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은 20대 국회 처리 법안 중에서 국민들은 정치사회분야에서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52.3%)와 음주운전 처벌 강화법(34.4%),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법(24.3%)을, 경제산업분야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37.7%), 금융소비자보호법(30.8%), 건축물 안전 강화법(30.0%)을, 사회문화환경분야에서는 근로시간단축법(34.5%), 디지털성폭력 방지법(29.4%), 감정노동자보호법(21.9%)을 가장 잘 한 법안으로 꼽았다.
국민들이 좋은 점수를 준 법안들의 면면을 보면 국민들이 바라는 법의 역할이 무엇인지 손에 잡히듯 다가온다. 국민을 '보호'하라는 명령이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법은 일명 '윤창호법'으로 불렸던 법이다.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20대 청년 고(故) 윤창호씨와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음주운전 사고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 처벌 양형기준은 '징역 1년 이상'에서 최소 '3년 이상',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제조물 징벌적손해배상책임법(제조물책임법 개정)은 2011년 수면위로 드러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입법이다. 가습기 살균제나 라돈침대와 같이 소비자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제조물은 사업자가 그 손해의 최대 3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제조물 안전사고의 피해자 보호와 예방 기능을 담았다. 디지털성폭력 방지법은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으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디지털성폭력을 막는데 집중한 법안이다. 처벌 기준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통신사업자에도 디지털성폭력 관련 영상물 등이 유포되거나 확산하지 않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직접적인 보호·예방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더라도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법이나 건축물 안전강화법, 근로시간단축법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법은 화재·사고 등 위험도가 높은 소방공무원 직군을 국가직으로 바꿈으로써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소방공무원을 보호하고, 안정적으로 화재진압 장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취지다. 궁극적으로는 화재·사고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강화한다는 이중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근로시간단축법'(근로기준법 개정)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해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고 과로의 위험을 낮추는 내용이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법'은 법이 국회의원을 과잉 보호하고, 국회가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방탄국회가 되는 것을 막는 법안이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제한하는 체포동의안 자동표결법(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정해진 기간 내에 처리되지 않는 경우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국회의원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국회의원수당법 개정)·국회의원 민방위훈련 편입(민방위기본법 개정) 등을 포함한 법안이다. 전체 설문대상 입법 중 유일하게 참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좋은 입법으로 선택한 법안이기도 하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법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법이 바라봐야 할 지향점은 특권계층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주는 기준선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 주도 하에 입법 활동 결과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구하고 발표한 것은 이번 설문조사가 처음이라고 한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당선인들은 저마다 1호 법안을 무엇으로 할지 부푼 꿈을 안고 있다. 당 차원에서는 민주당이 '일하는 국회법', 통합당은 경제활성화 법안을 1호 법안으로 준비하고 있다. 부디 1호 법안부터 21대 국회가 끝날 때의 마지막 법안까지 국민들의 바람과 기대에 부응하는 법안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본다.
김미경 정경부 기자 the13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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