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 일방적 계약 취소 급증
"보관비 줄이게 도착 늦춰달라"
배송 맡긴 화주 요청 '이례적'
글로벌 공급망 붕괴 서막 우려
"보관비 줄이게 도착 늦춰달라"
배송 맡긴 화주 요청 '이례적'
글로벌 공급망 붕괴 서막 우려
<연합뉴스>
[디지털타임스 김양혁·김동준 기자] 600억원 규모의 옷을 '땡처리'할 판이다. 미국 바이어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하면서다. 국내 A는 일단 옷을 실은 배의 미국 항 도착을 최대한 늦추도록 조치했다.
물품을 싣고 바다 위를 떠가는 대형 선박들, 소위 '슬로 스티머'들이 늘어 나고 있다.
A사와 같이 물품 배송을 맡긴 화주들이 선사에 '슬로 스티밍(저속운항)'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이전의 시대, 선사들이 비용 등을 절감하기 위한 '자발적 슬로 스티머'가 많았다면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 판로에 차질이 생긴 화주들이 되레 이를 적극 요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공급망(GVC) 붕괴의 서막"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9일 외신과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선사 옵션에 해당하던 슬로우스티밍을 화주들이 원하고 있다. 슬로우스티밍은 하나의 항로에 여러 척의 배를 투입해 운항 속도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애초 슬로우스티밍은 국제유가가 세 자릿수 상승률을 그리던 지난 2007년과 환경규제 강화 대응에 활용돼왔다. 배를 저속으로 운항하면서 유류비, 온실가스 등을 절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車)로 치면 연료를 최대한 아끼면서 멀리 가는 '연비 운전'을 하는 식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화주 측이 배송을 늦춰달라고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사들이 효율적인 선박 운항을 위해 슬로우스티밍을 주로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화주 측에서 요청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했다.
이는 코로나19로 상품 판로에 이상이 생긴 여파다. 화주 입장에선 물품 보관비 등을 지불하는 것보다 선박을 천천히 움직여 배송을 늦추는 게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이득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동차, 섬유 등의 산업부문에선 물품을 원치 않는다는 거래처도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 물품 납기를 연기한 것은 나은 상황이다. 미국 콜스 백화점은 국내 업체와 계약한 1억6000만 달러(약 2000억원) 규모의 의류 주문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 중 이미 만들어 둔 의류만 4900만 달러 규모에 달한다. 최대 8개월 이후 인수하겠다고 통보한 2700만 달러의 의류 역시 가져갈지 미지수다.
이달 들어서만 미국 주요 백화점인 니만 마커스, 스테이지 스토어스에 이어 JC페니까지 파산 신청을 했다. 기존 대규모 수주 계약서들이 줄줄이 '백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국제 질서에서는 세계화가 대세였지만, 코로나19 이후 탈(脫)세계화 쪽으로 급속히 기울어지고 있다"며 "그만큼 세계 경제가 식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김양혁·김동준기자 mj@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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