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성소수자 혐오가 사태 키웠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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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1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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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성소수자 혐오가 사태 키웠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래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순간이 닥쳤다.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이다. 지금까지 가장 위험했던 사건은 대구 신천지 교회 집단감염 사태였다. 그런데 그때는 예배 출석자 명단과 교인 명단이 있었다. 신천지 측에서 이 명단을 숨기거나 부정확하게 제출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상당수의 접촉자들을 방역당국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이태원 클럽 감염사태에선 접촉자들이 오리무중이라는 게 문제다. 황금연휴 기간에 이태원 업소를 다녀간 사람들 중 약 3000명 정도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이 현재 어디에서 누구와 접촉하는지 알 수 없다. 이 거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위험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기간에 클럽영업을 이어가면서 명단 관리 및 업장 내 거리두기 관리도 부실하게 한 업소 측에 일차적으로 문제가 있다. 엄중한 시기에 클럽을 찾은 사람들도 물론 문제다. 여기에 언론이 가세해 사태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업소 이름과 문제의 시간대만 보도하면 될 일이었다. 그 보도를 보고 그 시간대에 해당 업소를 다녀간 사람들이 방역당국에 신고해 검사받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 언론이 일을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버렸다.

업소 이름만 보도한 것이 아니라, '게이클럽'이라며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업소라는 설명까지 덧붙인 것이다. 방역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정보다. 감염자가 활동한 장소와 시간이 의미 있는 정보인데, 무의미한 성적 지향성 설명까지 추가했다. 이 성적 지향성 정보는 방역 차원에선 무의미하지만 사회적으론 엄청난 폭발력이 있는 민감한 이슈다. 보도가 나오자 인터넷은 삽시간에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으로 뒤덮였다. 이태원 업소 방문자들이 모두 성소수자로 낙인찍히는 분위기가 됐다. 그러자 방역당국에 신고해야 할 사람들이 꽁꽁 숨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3000여 명 연락두절이라는 우리 코로나19 방역 사상 최악의 불확실성이 닥쳤다.

성소수자 낙인에 앞장 선 대중도 문제다. 성소수자 클럽을 방문했다고 모두 성소수자인 건 아니다. 호기심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도 그런 클럽을 찾아갈 수 있다. 여럿이 함께 찾았는데 일행 중에 일부만 성소수자인 경우도 있다.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누리꾼들은 이태원 클럽 방문자들을 모두 성소수자로 몰았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방문자들에게 숨으라고 강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집단적인 분노와 혐오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은 이슈라면 애초에 언론이 조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일부 언론은 조심하기는커녕, 그렇게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에 기사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앞뒤 안 가리고 성소수자 이슈를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공분이 폭발하자 이것을 상업적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다른 매체들도 잇따라 성소수자 프레임으로 보도를 내보냈다.

게다가 사태를 왜곡 과장하기까지 했다. 애초에 확진자는 주점과 클럽 여러 곳을 방문했지만 일부 매체들은 '클럽 5곳'이라며 클럽만 방문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클럽이 주점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공분의 대상이 되므로 이 또한 기사 마케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보도 때문에 모든 방문지가 클럽으로 오인됐다. 이미 이태원 클럽은 성소수자만의 집결지로 도매금으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자 일반 주점에서 접촉한 사람이라도, 이태원 접촉자라면 모두 '성소수자 클럽에서 향락을 즐긴 성소수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그래서 이태원 관련자들이 결사적으로 숨어버리게 된 것이다.

기사 클릭수만 노리는 무책임한 언론과 앞뒤 안 가리고 성소수자 혐오를 터뜨린 대중이 이인삼각으로 사태를 최악으로 몰아간 셈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기간에 클럽을 찾은 사람들만큼이나 우리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세계가 격찬하던 우리 방역의 위상에도 흠집이 났다. 해외 일각에서 우리의 추적 방역이 인권침해라고 비난해도 다수는 방역에 필요한 절차라며 한국을 옹호했다. 그런데 이번에 성소수자 프레임이 짜이면서 감염자 추적이 아닌 성소수자 추적이 되게 생겼다. 인터넷에서 나타난 성소수자 낙인찍기도 문제다. 한국 방역과 한국사회의 수준이 평가절하될 빌미가 됐다. 무개념 클럽 방문자뿐만이 아니라, 언론과 누리꾼이 모두 우리 위상을 깎아내린 셈이다. 좀더 차분하고 합리적인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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