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眞價`](http://contents.dt.co.kr/images/202004/20200429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眞價`")
세계적인 과학지 '사이언스'는 미국에서 대감염 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이렇게 보도했다. "유럽이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도 유럽 국가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끔찍한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 시스템은 '희망의 징후'이자 '본받아야 할 모델'이다."
국제적인 감염병 사태에 대한 대응은 보통 서구 선진국이 주도할 거라고 여겨져왔다. 아시아는 문제를 발생시키기만 하고 해결하지는 못하는 곳으로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그려졌다. 그런데 지금 유럽과 미국이 오히려 감염 확산에 무기력하고, 한국이 '희망의 징후'이자 '본받아야 할 모델'로 부각된 것이다.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영국 BBC도 한국 대응이 다른 나라의 '롤모델'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의 슈피겔은 첫 환자가 생긴 후 미국은 시간을 낭비한 반면 한국은 빠르게 대응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기민함에 대비되는 미국의 늑장 대처는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국 매체들이 연일 한국을 조명했다. 감염병 문제에 관심이 많은 빌게이츠도 한국이 모델이라고 했다.
감염병 대응의 기술적 우수성만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 자체의 우수성도 부각된다. 독일의 슈피겔은 한국을 연이어 조명하는 가운데 '한국의 투명성'이 돋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 파이스는 '한국은 실제로 투명하고, 명확하고, 적절하게 이 위기에 대응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정부가 모든 정보를 국내외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신뢰성 있고 책임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타임지도 한국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주목했다.
그런 투명성은 민주주의에 의해 발현된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진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는 '중국의 강압적 방식이 아닌 민주주의 국가 한국의 대처에 주목해야 한다'고 썼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선거를 치르기로 한 한국 정부의 결정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불(beacon of democracy)로서 한국의 위상을 부각하고 있다'고 썼다.
한국은 아시아 민주주의뿐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의 등불이 되고 있다. 인구 4000만 이상 되는 중급 이상의 국가 가운데 코로나19 대감염 사태를 당하고도 조기 통제에 성공한 건 중국과 한국 둘 뿐이다. 중국은 과격한 지역봉쇄, 정보통제 등으로 대응함으로써 은폐조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어느 지역도 봉쇄하지 않고, 국민 외출금지나 이동금지도 없고, 심지어 해외 출입국까지 일정 부분 허용했다. 즉 시민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감염병을 통제한 것이다.
선진국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전통적인 선진국들은 지역봉쇄, 외출금지 또는 이동금지, 국경폐쇄 등을 하면서도 감염병 폭발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이 민주주의의 등불이 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이 민주주의가 감염병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취지의 칼럼을 실었다. 프랑스의 한 TV뉴스에선 한국의 대응이 '기적'이라고 표현됐다.
서구 매체들이 이런 보도들을 연일 내놓으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 한국의 위상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경제학자 탈레스 테이셰이라는 "한국은 열린 민주주의 국가로 뚜렷하게 인식됐다. 투명하고 안전하며 건강한 곳이란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베긴-사다트 전략연구센터(BESA)는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에서 소프트파워를 보여줬다고 했다. 한국이 일류국가라는 인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재기, 폭력, 혼란이 난무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차분한 한국사회 모습도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선진국에 비해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런 우리의 자아상도 변화한다. 국가적 자존감이 고양되는 것이다. 해외동포들도 자부심을 전해온다. 한국을 바라보는 대내외적 시선의 질적인 변화, 아직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건 아니지만 현시점까지만 보면 가히 역사적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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