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일군 `메이드 인 코리아 ERP`… 아시아 넘버원 이룰 것"

삼성전자·KIST 등서 SW현장 경험… '패키지SW' 미래가능성 판단에 창업가 도전 결심
ERP 첫 버전 개발부터 전과정 진두지휘… 매출 500억~1500억 기업시장 경쟁력 독보적
2014년 클라우드 서비스 첫선 SaaS 고객 150곳 확보… 내년 산업별 ERP 7개 출시 예정
품질 중시 日서 실패 끝 가능성 확인… 미얀마·싱가포르 등 한자 문화권시장 입지 다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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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일군 `메이드 인 코리아 ERP`… 아시아 넘버원 이룰 것"
권영범 영림원소프트랩 대표

사진 = 박동욱기자 fufus@


D파이오니어를 만나다

⑥ 권영범 영림원소프트랩 대표



애초에 남이 시키는 것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신이 나는 성미였다. 아무도 해보지 않았고 본인조차 경험이 없는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곤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끝까지 매달려 성공시켰다. 그런 자유분방함과 고집은 국내 대표 기업용 SW(소프트웨어) 회사 탄생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ERP 한 분야만 파고들어 국내 시장을 지켜온 권영범 영림원소프트랩 대표 이야기다.

권 대표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SW가 좋아서 스스로 SW엔지니어의 길을 선택했다. 대학졸업 후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에 입사해 SW를 독학으로 배운 후 바로 재능을 발휘했다. 이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시스템공학센터와 큐닉스데이타시스템을 거치며 83년 전국체전 전산화, 대한페인트잉크 메인프레임 다운사이징 등 고난도 프로젝트를 실무 지휘하며 실력을 알렸다.

그러던 그는 패키지SW만이 갈 길이란 확신 하에 1993년 영림원소프트랩을 창업했다. 당시 개념조차 없던 ERP 개발에 뛰어들어 1997년 국산 ERP를 내놨다. 현재 60여개 정부·공공기관, 1840여 개 기업, 100여 개 해외 기업 등 2000여 개 고객이 제품을 쓰고 있다. 올해 27년을 맞은 회사는 295명의 직원을 두고, 작년 37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권 대표는 "치열한 SW 현장에서 40년간 몸으로 버텨야 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ERP'를 우뚝 세웠다는 보람이 크다"면서 "남은 기간 클라우드 ERP 아시아 넘버원 기업이 되고, 100년 기업의 문화와 저력을 다지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대담 =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SW 불모지로 꼽히는 한국에서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SW 분야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하다.

"자랄 때부터 누가 시키는 일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실패 가능성과 위험이 있더라도 그래야 보람을 느꼈다. 나와 비슷한 기질의 어머니가 그런 성격을 파악하고 틀에 가두지 않는 교육을 해주셨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하드웨어는 좀체 안 맞았다. 졸업 때까지 전자회로의 저항값 읽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SW는 적성에 맞았다.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에서 독학으로 포트란 프로그래밍 공부를 했다. 그 후 중앙정보부 전산화 프로젝트에 투입됐는데 거기서 소질을 발견했다. 회사 사수가 시스템 에러 때문에 힘들어 할 때 내가 잡아주기도 했다."

-잘 다니던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KIST로 옮겼는데.

"당시 2차 오일쇼크가 터졌는데 회사가 상여금 대신 세탁기나 냉장고를 주면서 팔아서 쓰라고 했다. 판매한 제품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 유학을 준비했는데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유학은커녕 레스토랑에 취직해 1년 간 매니저로 일하다 나중에는 주방장까지 겸했다. 그러다 '한국 IT의 대부'로 불리는 성기수 소장이 이끌던 KIST 시스템공학센터에 시험을 보고 들어갔다. 일찍 퇴근하고 통근버스로 편안하게 다니는 친구들을 보고 들어가면 '만고땡'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SW 초창기의 시행착오를 몸으로 때우며 해결해야 했다. 당시 KIST는 교육센터까지 두고 기술과 인재에 투자하고 있었다. 내가 소속된 곳은 MIS(경영정보시스템)그룹으로, SW 개발과 교육을 함께 했다. 거기서 SW 현장을 제대로 경험했다."

-83년 전국체전 전산화 프로젝트를 지휘했는데.

"성기수 소장이 필생의 프로젝트로 기획해 대회 6~7개월 전부터 제안했지만 과학기술처가 불과 3개월 전에 추진 결정을 내렸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쓰인 솔루션을 거액에 사오는 대신 우리 기술로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였지만 경험도 없었고 시간도 촉박했다. 전산시스템이 준비 안 됐다고 대회를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3년 차인 내가 팀장을 맡고 팀원 15명이 개발했는데 3달 내내 하루 15시간 넘게 일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팀원들은 옥상으로, 숲으로 숨어 들어가 잠을 자고, 밤마다 그들을 찾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전국체전이 올림픽보다 어려운 게 점수제인 데다 종목마다 신기록 등 각종 가산점수가 있다 보니 계산이 복잡했다. 일반부만 있는 올림픽과 달리 고등부, 대학부까지 있었다. 당시 컴퓨터가 어마어마하게 비쌌는데, 프로젝트를 위해 구입한 600MB 디스크 가격이 3000만원이었다. 지금 돈으로 2~3억은 될 것이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개발을 해냈다. 중앙에 메인프레임을 두고 각 경기현장에 미니컴퓨터를 설치한 후 경기결과를 미니컴퓨터에 입력해 메인프레임으로 전송하도록 했다. 경기가 치러지는 6일간 총 11시간밖에 못 잤다. 프로젝트를 잘 해낸 덕분에 이후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 IT시스템 설계까지 맡았다."

-회사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KIST를 나와 큐닉스데이타시스템 SW사업부장으로 일하면서 SI 경험을 쌓았다. 국내 최초로 IBM 메인프레임을 클라이언트 서버로 다운사이징한 대한페인트잉크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클라이언트 서버 방식을 채택하지 않으면 사업을 안 맡겠다고 버텨서 고객이 수용했다. 1년 6개월간 전력을 기울인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실력이 알려지면서 기업들이 먼저 찾아왔다. 일본 NTT 선로관리 전산화 사업을 하면서 일본 기업의 설계결함을 찾아주기도 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SI는 할 일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페인트잉크 사업 종료 후 92년말 회식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IT업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다음해 초 회사 옆에 국선도장이 생겼다. 한달간 해보니 주량이 두배로 늘고, 두달간 하니 체력이 확 좋아졌다. 국선도장에서 명상 끝에 패키지SW에 답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큐닉스에서 '평생비서 오!K', 'K실록' 등 패키지 SW 설계·개발 경험도 있었다. 93년 4월 회사를 나와 5월 회사를 창업했다."

-비교적 늦은 40살에 창업에 도전했는데.

"남들보다 창업이 늦은 편이다. 당시 유통회사들이 PC에 패키지SW를 끼워팔기 시작하면서 패키지SW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패키지SW에서 승부를 보겠다며 회사를 세웠는데 문을 닫게 생겼다. 여름휴가도 못 가고 고민을 거듭했다.

시스템 다운사이징 실력이 있으니 SI로는 먹고살 수 있었다. 당시 SK해운 다운사이징 사업을 두고 7개 회사가 경쟁했는데 8번째로 참여해 사업을 따냈다. 대한페인트잉크 사례를 보고 온 SK해운 관계자들이 제안가에서 한 푼도 안 깎고 프로젝트를 맡겼다. 정해진 기간보다 2달 먼저 끝내서 수익성도 매우 좋았다. 그런데 역시 SI는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 후 전 직원을 모아놓고 'SI는 갈 길이 아닌 거 같다. 패키지SW 기술과 다운사이징 사업 경험을 결합해서 제대로 된 패키지SW 하나 만들자'고 했다. ERP라는 명칭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우리가 먼저 시작한 거다. 그러다 1996년 ERP라는 이름으로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 기업 중 삼성전자가 앞서 도입했다. 우리도 2년간 개발 끝에 97년 제품을 내놨다."

-이름 없는 기업이 비싼 기업용 SW를 파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5000만원 짜리 패키지SW를 파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급사례를 확보하는 게 큰 일이었다. 첫 고객에게 책임 지고 잘 쓰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5000만원 제품인데 추가 개발까지 거의 2억원 어치 일을 해줬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이래선 회사가 버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추가개발 불가원칙을 세웠다. 고객 추가개발을 요구하면 안 사도 된다며 배짱으로 버텼다. 먹고 사는 것은 SI로 버텼다. 그 전략이 주효했다. 그때 만약 계속 추가개발을 해 줬으면 지금의 영림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2000년 인터넷 호황기에 투자를 받으면서 SI를 중단했다. ERP를 판매하되 추가개발은 최소화했다. 당시 영업사원들을 말리느라 바빴다. 추가개발을 하면 인건비 수익이 늘어나지만 사람이 많이 투입돼야 하니 장기적으로는 독이 된다.

첫 의미 있는 고객은 98년 계약을 맺은 정식품이다. 내가 직접 PM(프로젝트매니저)을 맡았다. 99년 롯데제과 사업도 내가 PM을 맡아 수행했다. 롯데제과가 성공적이니 이후 롯데칠성음료도 우리 솔루션을 도입했다."

-27년 간 많은 것을 이뤘다. 창업 당시 꿈을 이뤘나.

"1단계 목표는 이뤘다. 고객이 2000곳이 넘고 파트너가 20곳 이상이다. 우리가 강한 게 매출 500억~1500억원 사이 기업 시장인데, 이 영역에서는 거의 경쟁상대가 없다. 공공시장에서도 지난해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된 12개 ERP 입찰 프로젝트 중 11개를 수주했다. 수주율 92%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업무 문화와 프로세스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제대로 된 ERP의 핵심은 업무 프로세스 통합이다. ERP 안에서 단위 업무들이 연결되고 통합돼야 어느 조직에서 어떤 성과를 내는지가 데이터로 잡힌다. 장부 적듯이 기록하는 수준인 ERP는 그게 안된다. 영업현장의 수주부터 생산의뢰, 출하의뢰가 다 연결되고, 각 단계에서 발생한 비용과 투입인력, 작업규모가 다 잡혀야 한다. 그래야 어떤 품목을 만드는 데 어디서 어떤 비용이 들어가고, 어디에서 판매이익이 나왔는지 분석이 가능하다. 품목별 원가와 거래처별 손익이 나와야 경영의 어느 지점에 문제가 있는지, 잘 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ERP가 기업 핵심 정보 인프라인 것은 바로 프로세스 통합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AI와 빅데이터 분석도 제대로 된 데이터가 있어야 가능하다. 기업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정보가 필수다. 그런 점에서 제대로 된 ERP야말로 기업의 합리적 경영과 의사결정의 근간이다."

-창업자이자 CEO로서 주로 어떤 역할에 집중해 왔나.

"창업 후 20년간 CEO와 CTO(최고기술책임자) 역할을 병행했다. ERP 첫 버전부터 버전 5까지 PM을 맡아 개발을 지휘했다. 3000개 정도 되는 ERP 화면 하나하나를 보며, 항목 하나까지 짚어가며 함께 개발하고 보완하는 고된 작업이다. 8개 팀으로 나눠 개발하면서 1팀이 2주일에 한번씩 리뷰를 하는데 PM인 나는 일주일에 4개 팀씩 리뷰를 했다. 4~5년 주기로 제품을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러다 7년 전 CTO 역할은 그만뒀다. 더 젊고 똑똑한 이들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솔루션을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제 기술에 대한 디테일한 전략 대신 인간에 대한 이해와 문화에 집중하고 있다."

-본인을 스스로 CCO라고 지칭하는데.

"지금 회사 내 역할은 한 마디로 CCO(최고문화책임자)다. 창업자인 내가 은퇴해도 탄탄한 기업문화를 토대로 지속되는 회사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100년을 기준으로 보면 27살은 청년이다. 사람으로 쳐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기다. 특히 2017년부터 작년까지 만 3년간 외부활동을 일체 접고 은둔하며 직원들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휴대폰까지 사용 정지시키고, 매주 2차례 직원들과 만났다. 오후 3시에 시작해 6시까지 1부 간담회를 하고, 2부로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면서 여러 주제에 대해 마음을 나눴다. 팀이나 연령대별로 한번에 15~20명씩, 3년간 200번을 만났다."

-직원들이 대표와의 대화에 어려워하지는 않았나.

"반응이 좋았다. 회사 성장전략 같은 얘기를 하면 직원들이 지루해 한다. 대화주제는 분기마다 정해서 하고, 지정독서나 자유독서를 통해 읽은 책에 대해 느낀 점을 요약해와 발표하기도 했다. 한해 동안 어떤 발전적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계획표를 내고 관련 주제로 대화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얘기를 하고, 남의 얘기를 듣는 훈련을 하는 거다. 회사에 20대 중반부터 70대까지 있다. 나이 차이가 2~3년만 나도 세대차가 있다고 하는데, 대화가 안 되면 회사에서 큰 에너지를 낭비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3년 간의 대화로 얻은 게 많다. 혼자 독불장군같이 일하는 게 아니라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게 무엇보다 큰 소득이다. 그 결실이 작년 회사 실적으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문화적으로 다져진 저력과 에너지가 사업현장에서 발휘된 것이다."

-올해도 대화는 계속 이어갈 생각인가.

"올해는 방식을 약간 바꾸려 한다. 하반기에 연령대별로 10명 정도씩 팀을 구성해 외부로 나가서 일주일에 2번, 30차례 정도 오후부터 저녁까지 진행할 생각이다. 회사를 벗어나면 더 자유롭고 오픈된 분위기에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몇가지 난해한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고 싶다. 예를 들어 몸과 마음, 정신, 영혼의 차원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같은 주제다. 경험과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서, 뻔한 답이나 대화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주제를 놓고 생각에 집중할 자극을 주고자 한다."

-조직 운영과 경영에도 영림원만의 스타일이 있는지.

"5년 전 회사 전체를 팀장 없는 팀 조직으로 만들었다. 임원이나 팀장의 의사결정과 평가 권한을 없앤 자율조직을 도입한 게 특징이다. 대신 팀 단위로 연간목표를 정해서 평가를 받고, 의사결정도 함께 한다. 책임도 팀이 함께 지고, 평가결과에 따라 팀 단위로 인센티브가 정해진다.

각 팀에 코치가 있지만 결재나 결정 권한이 없고, 임원은 감독이란 명칭을 부여했다. 감독은 사람을 확보하고 조직에 변화를 가할 권한이 있다. 중요한 몇 가지 결재도 하는데 웬만한 결정은 팀에서 한다. 제도 도입 후 반대하는 일부 임원과 직원이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해보니 오히려 조직이 더 잘 돌아간다.

개인평가는 성과가 아니라 회사의 핵심가치에 부합한 행동을 하느냐로만 하려 한다. '영웨이'라고 회사의 핵심가치를 정의했는데, '신뢰를 바탕으로 목적을 중시하며 주도적 삶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세부 실행항목도 있다. 이를 기준으로 태도와 행동만 평가하려 한다. 같은 팀이 아니라도 누구나 매달 잘한 사람을 적어내는 식이다. 결국 좋은 자세가 개인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성과로도 나타난다. 주변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노력을 통해 삶이 발전적으로 바뀌게 된다고 믿는다."



-최근 회사 성과와 분위기가 좋은데.

"지난해 창업 이래 최고 성과를 냈다. 380억원 매출에 이익이 40억원 이상 났다. 전반적으로 다 잘 했다. 수주가 많다 보니 회사가 풀가동 중이다. 올해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인데, 문제 없을 것으로 본다. 상장 심사 통과 여부가 상반기 내에 나오면 코로나19 등 여러 상황을 봐서 시기를 결정하려 한다. 상장으로 회사는 더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게 될 것이다. 100년 기업으로 가는 단초이기도 하다."

-국내 어떤 SW기업보다 클라우드 전환에 빨랐는데.

"남들보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일찍 시작해 현재 SaaS 고객이 150곳이다. 매출비중은 10%가 약간 안 된다. 2014년 클라우드 서비스를 처음 내놨다가 다시 1년 정도 보완했다. 클라우드의 강점이 사람의 개입이 적은 건데 그 부분이 부족해 보였다. 사람의 투입을 최소화하도록 콘텐츠를 보강했다. 이후 2015년 다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ERP 고객들의 컨설팅 수요를 고려해 우리가 직접 비즈니스를 하는 것 대신 파트너 체계로 바꿨다. 기존 방식 ERP 도입 시에는 상주 컨설팅을 했는데, 클라우드 고객에는 방문 컨설팅을 제공한다. 분명히 더 저렴하고 장점이 많은데 생각보다 국내 기업들의 채택 속도는 느리다.

클라우드에서 겨냥한 것은 완전 기성복 같은 솔루션으로 가는 거다. 국내도 중요하지만 해외시장에 나가려면 이 방식이 필수다. 규모가 커져야 힘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만큼 계속 투자하고 있다. 퍼블릭 클라우드 기업 중 MS와 협력 중인데 잘한 선택이라고 판단한다. 플랫폼을 다원화하면 기술이 분산되고 내부 조직도 나눠야 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MS는 오피스 SW를 무기로 기업시장을 꽉 쥐고 있다. 클라우드 PaaS(플랫폼 서비스)에 AI를 기본 탑재하니 우리는 활용해서 애플리케이션을 잘 만들면 된다. 산업별 특화 업무 프로세스를 ERP 패키지에 아예 담는 작업도 완성 단계다. 올해 중 산업별 특화모듈 개발을 끝내고 내년에 산업별 ERP 7개를 선보일 계획이다."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일본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는데.

"일본 시장에 2006년부터 7년간 투자했는데 파트너가 파산하는 바람에 두 군데 팔고 접어야 했다. 그 후 똑같은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칼을 간 끝에 클라우드를 무기로 다시 진출했다.

2018년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당시 파산한 파트너사의 임원을 대표로 뽑았다. 지난해 10곳의 파트너를 발굴했다. 5건의 공급계약도 맺었다. 유통, 제조, IT서비스 등으로 산업이 다 다르다. 그런데 그들이 프로그램 코드 한 줄 안 고치고 똑같은 서비스를 쓰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한 SW를 일본에서, 그것도 산업분야도 각각인 기업이 100% 그대로 쓴다는 것은 품질을 중시하는 일본 시장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건 되겠다는 확신이 든다. 최근 새로 계약을 맺은 파트너사 회장이 우리 솔루션 시연을 보고 나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아쉽다며, 우린 뭘 했느냐는 자괴감 섞인 얘기를 하더라."

-일본은 까다롭기로 잘 알려진 시장인데.

"비록 실패했지만 과거 7년의 투자 덕분에 다시 준비해서 나갈 수 있었다. 당시 3년이면 완성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일본 업무 프로세스에 맞는 솔루션을 개발해 검증받고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 5년 넘게 걸렸다. 판매를 시작하고도 계약까지 1년이 걸렸다. 그렇게 1년간 2개를 팔았다. 웬만한 중소 SW기업은 투자하기 힘든 시장이다. 앞으로도 일본에서 ERP 사업을 하는 한국 회사는 더 못 나올 것 같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문화와 법제도가 달라서 업무 프로세스가 30% 정도 차이 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새로 개발했다. 클라우드 방식 ERP를 만들면서 전체 업무 프로세스를 100개 정도 단위로 나눠 자유자재로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 다음 목표는 어디인가.

"품질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성과를 얻은 것은 글로벌 시장의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다. 일본과 동남아에서 우선 승부를 볼 생각이다. 내가 CEO로 있는 동안 아시아 중에서도 미얀마, 싱가포르 등 한자 문화권 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질 생각이다. 문화가 아예 다른 시장에서 잘 하려면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ERP는 단기에 공격적으로 키울 수 없는 시장이다. 인도네시아에도 3년 전 진출해 2곳에 팔았다. 인도네시아에 맞는 프로세스를 보강하고 파트너를 확보했다. 현지 연락사무소가 있는데 올해 법인으로 전환하려 한다. ERP를 쓰려면 전체 경영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하고, 컨설팅 인력이 필요한 만큼 교육사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아시아시장 클라우드 ERP 1위 기업이 되면 국내 SW와의 동반진출도 모색하겠다. ERP가 경영의 백본이니 결합할 SW가 무궁무진하다. 일본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얻으면 국내 기업들의 세를 규합해서 함께 가겠다."

-대학 때 좌우명이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이었다고 들었는데, 살아온 궤적은 전혀 달라 보인다.

"여유로운 삶을 꿈꿔 왔는데, 막상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몸으로 때우며 버텨야 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ERP'를 우뚝 세운 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 제대로 된 ERP를 가진 나라가 세계적으로 10여 개국밖에 안 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독일·미국·영국·덴마크 등이다. 일본도 신통한 ERP 회사가 없다. 길어야 10년 정도일 CEO 재직 기간 중 탄탄한 문화와 저력을 만드는 게 남은 과제다. 인재를 키우는 것도 기업 본연의 의무다. 매년 20~30명의 신입직원을 뽑아 키우고 있다."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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