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무엇이 조주빈을 만들었나](http://contents.dt.co.kr/images/202004/2020040802102269660001[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무엇이 조주빈을 만들었나")
인격을 짓밟은 엄청난 범죄 사태의 범인들이 잡혔어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철저히 보호 받은 것이다. 만약 조주빈 검거가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와치맨과 켈리는 아무도 모르게 형기를 마치고 조용히 세상으로 복귀했을 것이다. 켈리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그래서 2심까지 가게 된 것인데, 검찰은 항소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2심에서 형이 감경될 가능성이 있다. 조주빈 검거로 국민 공분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검찰은 켈리와 와치맨에 대해 전면 재수사에 나서겠다고 한다. 결국 선고도 연기됐다. 와치맨과 켈리에 대한 우리 검경과 1심 재판부의 태도를 보면,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를 얼마나 경시해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조주빈 이외의 범죄자들이 여전히 개인정보 보호를 받는 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와치맨, 켈리 뿐 아니라 로리대장태범을 비롯해 몇몇 범죄방 운영자들이 거론되는데 모두 인터넷 닉네임들이다. 이들은 남의 개인정보를 유포한 악질 범죄자들이다. 이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이미 인터넷에 개인정보가 유출됐기 때문에 평생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정작 유포 범죄자들은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 받으며 짧은 형기만 마치면 당당하게 사회로 복귀해왔던 것이다. 이러니 디지털 성범죄 범죄자들이 두려움을 모르고 공권력을 비웃으며 범죄행각을 벌여, 조주빈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디지털 성범죄에 관대한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사건이다. 한국인 손 모씨가 운영자였는데 구속돼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4월 27일에 출소한다. 이 손 모씨를 미국이 인도해달라고 요청했었다. 자신들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손 모씨 사이트에 1회 접속해 아동 영상을 1회 다운받은 사용자가 징역 5년 10개월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한국에선 운영자에게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미국에서 보기엔 턱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그래서 자기들이 처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작년 초엔 와치맨 피해자가 신고했지만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성착취 대화방 공범들도 알고 있다. 조주빈 사태가 터진 지금도 대화방 공범들은 텔레그램이나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 대화방에 모여 범행을 이어간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 수사당국이 자신을 잡을 리도 없고 설사 잡혀도 형이 가벼울 거라며 자신감을 표출한다고 한다. 이렇게 두려움이 없으니 날로 대담해지고 악랄해진다. 스토킹, 개인정보, 사회복무요원 문제도 있다. 조주빈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노예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사회복무요원이 개인정보를 빼내 제공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조주빈이 가족 신상까지 제시하자 공포에 떨며 지배당했다. 과거부터 일부 사회복무요원이 연예인 개인정보를 유출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개인정보 문제에 경각심이 있었다면 사회복무요원 관리 시스템을 정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당국은 사회복무요원이 공무원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는 걸 방치했고 오늘의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게다가 조주빈 하수인 노릇을 했던 한 사회복무요원은, 근무하던 병원에서 개인정보를 빼내 여성을 장기간 협박해 스토킹으로 징역 1년 2개월 형을 살았다. 그런데 출소하고 나서 또 사회복무요원이 돼 개인정보 유출에 나선 것이다. 협박당했던 여성은 이 사회복무요원이 두려워 주소지와 주민번호까지 바꿨지만 사회복무요원이 바뀐 개인정보까지 알아내 또다시 협박했다. 우리 당국이 스토킹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디지털 성범죄, 개인정보, 스토킹 등에 둔감했던 우리 시스템이 n번방 괴물들을 양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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