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선진국의 `코로나 민낯`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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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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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선진국의 `코로나 민낯`
하재근 문화평론가
산업화 후발주자인 우리는 언제나 일본과 서구 선진국을 모델로 삼아왔다. 그들의 제도와 문화가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뒤를 따랐고, 그들보다 못한 우리의 역량과 시민의식을 자책하면서 자격지심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난 선진국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을 깨고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에 성공했으며 안전과 위생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일본만 해도 그렇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크루즈선 안에 있는 승객들을 그냥 방치했다. 우리 같았으면 즉각 승객과 승무원들을 검사해서 증상에 따른 조치를 취했을 텐데, 일본 당국은 검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크루즈선에서 내린 승객들에 대한 자가격리 등의 관리 조치도 없어서, 거의 방치에 가까운 상태에서 추가 확진자들이 나왔다. 우한에서 수송해간 자국민에 대해서도 우리와 같은 격리 조치를 취하지 않은 가운데 확진자들이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일본 국내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검사를 거의 안 했다는 점이다. 검사량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어서,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사실상 방치한다는 의혹도 나왔다. CNN도 일본의 확진자 수가 적은 건 검사량이 적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하며, 일본내 감염자 수가 사실은 1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일본 대학 교수의 주장을 전했다.

이렇게 코로나19 검사에 소극적인 이유가 올림픽 개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그렇다면 너무나 무책임한 행태다. 올림픽 개최라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에 코로나19를 퍼뜨려도 상관없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자국민과 외국인을 모두 위험에 빠뜨리는 이런 모습이, 우리가 알던 선진국 일본이 맞는가?

우리에게 대표적인 선진국인 미국도 그렇다. 코로나19가 들불처럼 확산되는데도 미국 역시 검사에 소극적이었다. 한국의 승차검사(드라이브스루) 등 적극적인 방역에 찬사가 쏟아져도 미국 당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계 대유행이 가시화되고서야 뒤늦게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초기의 대처과정 없이 갑자기 휴교령 등 강경한 조치가 발동되자 미국 사회에 패닉이 초래됐다.

산업혁명과 민주주의의 진원지인 유럽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는 총리가 적극적인 검사를 가로막으며, 무증상자를 제외하고 소극적으로만 검사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총리는 이탈리아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병의 확산을 방치한 것이었다. 그 결과 통제불능일 정도로 코로나19가 창궐했고 결국 의료붕괴 상황으로까지 진전했다. 나라는 코로나19 슈퍼전파국이라는 오명을 썼고, 전 국민 이동 통제라는 초유의 조치가 내려졌다.

이탈리아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걸 뻔히 보면서도 이웃한 유럽 국가들 역시 방역에 소극적이었다. 유럽은 단일 경제권이라서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에 병의 확산이 자명한데도 왜 소극적이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자국 내에서 천 명 이상의 감염자가 나오고서야 각국의 태도가 본격적으로 바뀌었다. 독일의 경우, 메르켈 총리가 기자회견에 나선 것이 확진자 수가 1200명을 넘은 시점이었다. 그전까지 독일 당국은 '손을 자주 씻으라'고 경고하며 의료진에 제공할 마스크를 확보하는 수준의 조치만 취했었다.

뒤늦게 서구 각국의 당국이 비상방역 체제에 돌입했는데, 여기에 협조하지 않는 시민의식도 문제다. 군중의 집결을 막기 위해 유럽 축구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렀더니 축구팬들이 경기장 밖에 모여 뜨겁게 응원했다. 프랑스 파리에선 3월 15일부터 상점의 영업이 금지되자, 전날 밤에 시민들이 주점으로 몰려나와 유흥을 즐겼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정부의 권고를 어기고 평소처럼 외출한 사람들이 문제라는 보도가 나왔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해도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서구권 국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사재기 광풍도 놀랍다. 휴지 등의 생필품을 닥치는 대로 사재기해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정도다. 호주에선 휴지 때문에 칼부림까지 벌어졌다. 마스크 사재기 정도의 문제만 있는 우리와 다른 것이다. 프랑스에선 방역마스크를 시민들이 안 쓰려고 하지만, 쓰려고 해도 가격이 장당 만 원 이상씩하고 그나마도 구할 길이 막막하다고 한다. 우리가 흠모했던 선진국의 허상이 깨지며 코로나19가 우리 자신의 역량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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