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기생충` 없는 나라 되길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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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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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기생충` 없는 나라 되길
하재근 문화평론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말을 흔히 한다. 이 말을 제대로 구현한 이가 바로 봉준호 감독이다. 봉 감독의 영화를 서구인들은 '로컬하며 글로벌하다'고 한다.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 같은데 그 속에 국제적인 공감 요소가 있다는 말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인용했는데, 그 말처럼 봉감독은 한국에서의 개인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그려 가장 창의적이며 국제적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그 결정판이 바로 '기생충'이다. 칸영화제에 '기생충'이 출품됐을 당시 각국의 기자들이 서로 자기 나라의 이야기 같다며 공감을 표시했었다.

그 공감이 가장 크게 나타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선 '기생충이 한국의 양극화 문제를 그렸는데, 사실 한국보다 양극화 문제가 더 큰 나라가 미국'이라며 '기생충'에 대한 열광이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에서 상위 1%가 나라 전체 부의 25%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에선 39%를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소득면에선 한국에서 상위 1%가 전체 국민소득의 12%를 벌어들이는 반면 미국에선 20% 이상을 벌어들인다고 했다. 미국의 의회와 부유한 후원자들이 내린 정책 결정 때문이라며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미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했다. 그런 현실에 대한 반감이 '기생충' 신드롬으로 나타났다며 "이 영화가 미국에서 환영받는 것은 많은 미국인이 자신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했다.

특히 '기생충'은 분노와 좌절을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의 파국이 바로 파괴적 분노의 표현이다. 수직적인 계급 질서 속에서 열패감을 느끼던 사람이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귀결은 결국 지하생활자 신세다. '기생충' 주인공의 아들은 아버지를 구출한다며 장밋빛 계획을 세우지만 관객은 알고 있다. 그 계획이 몽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하생활하는 기생충은 그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이러한 분노와 좌절이 표현된 또다른 영화가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조커'였다. 이 작품에선 양극화 속에서 사회안전망까지 축소되자 주인공이 폭동을 주도하는 사회악이 돼버린다. 여기에 미국 관객들의 찬사가 쏟아졌는데, 한국의 '기생충'이 더 적나라하게 계급질서를 그려내자 더 큰 호응이 나타난 것이다.

공감의 정도만 다를 뿐이지 앞에서 언급했듯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공감이 나타났다. 원래부터 계급 또는 신분 질서가 심각한 나라는 '그러려니'하고 살기 때문에 오히려 호응이 적지만, 중산층이 파괴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서구 선진국에서 반응이 컸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적인 현실을 그렸을 뿐인데 이렇게 국제적인 공감이 나타난 것으로, 우리 현실이 얼마나 서구사회 특히 그중에서도 미국사회와 유사한지를 알 수 있다. 미국은 20세기 초까지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였다. 그러다 대공황을 겪은 후 중산층 사회로 변모했다. 미국하면 떠오르는, 자가용을 모는 교외 주택단지의 국민 생활상이 만들어진 것이 바로 1950년대 중산층 형성기였다. 이때부터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양극화가 심화돼 지금까지 그 기조가 이어진다.

우리나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할 정도로 편차가 크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 이후부터 양극화 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에 의한 분노가 커져갔다. 특히 집이 박탈감의 상징이 되었다. 과거엔 허리띠를 졸라매면 집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젠 아니다. 그래서 '기생충'의 아들이 고급주택을 사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망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래부터 집을 못 사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때는 노동하고 저축하면 번듯한 아파트까지 살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박탈감이 더 크다. 그런 정서를 영화에 담자 세계가 공명할 정도로 우리와 외국의 처지가 같아진 것이다. 부디 이번 총선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정치권은 이 공감의 고리를 끊어주길 바란다. 양극화가 축소되고 다시 중산층이 늘어나고 희망이 싹터서, 그런 우리의 현실을 그리면 서구인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한국을 그런 '이상한 나라'로 만들어줄 정치권을 희망한다. 양극화만은 로컬한 게 글로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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